잠/잠시 죽음. 나중에 있을 온전한 죽음을 연습하는 시간. 우리 모두는 3만번의 잠시 죽음을 거쳐 온전한 죽음에 이른다. 두 죽음의 차이는 아침. 온전한 죽음 뒤엔 아침이 없다. 정말 없다. 완전히 없다. 그 귀한 아침을 우린 이불 속에서 뭉그적거리며 날려 버린다.
잡초/긍정의 화신. 잡초는 부러움에게 지지 않기 위해 긍정을 사용한다고 말한다. 자, 잡초의 놀라운 긍정을 그의 목소리 그대로 들어본다. 죽는 날까지 땅바닥에 딱 달라붙어 살아야 하는 나. 그렇다고 내가 우아하게 허공을 가르고 내려와 부드럽게 착지하는 낙엽을 부러워할까. 아니야. 난 부러움에게 지지 않아.
부러워해봤자 손에 쥐어지는 건 없거든. 나는 부러워하는 대신 낙엽의 착지를 살폈어. 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있는지 살폈고, 있다는 것을 알았고, 그 일을 한거야. 세밀하게 관찰하고 세세하게 분석했지. 이제 나는 낙엽이 나뭇가지와 이별하는 순간 착지의 결과를 알 수 있어 . 착지를 잘 준비한 낙엽은 추락을 두려워하지 않아.
눈을 감지 않아. 땅을 응시하며 스타트하지. 내 눈으로 내 착지를 즐기겠다는 자신감. 눈을 뜨고 있으니 엉둥한 곳에 불시착할 리 없지. 수직으로 내려오다 각도를 비트는 순간 예술점수는 결정되지. 그런 순간이 몇 차례인지, 비트는 각도가 얼마나 드라마틱한지에 따라 난이도는 여려등급으로 나뉘지...
장의사/단골이 없다.늘 새로운 손님이 온다. 그를 찾는 손님은 하나같이 고요하다. 그래서 그런지 그도 늘 고요하다. 말들도 죽는다.
저승/길이 멀다. 무거운 몸으로 떠나서는 닿을 수 없다. 이승과 저승 사이에서 떠도는 건 너무 춥다. 너무 외롭다. 출발 전에 준비해야 한다. 욕심과 집착을 배낭 속에 준지하지 않을 준비를.
본전/지갑의 처음 두께. 얇아지면 본전 생각이 난다. 그러나 본전 생각이 났다는 건 이미 늦었다는 뜻이다. 본전 찾겠다고 버둥거리면 지갑은 점점 더 얇아진다. 사람만 추해진다.
불안/내가 너를 믿지 못하니, 너도 나를 믿지 않을 거라는 초조.
비정규직/맨 앞에 붙은 글자는 아닐비(非)가 아니라 슬플 비(悲).
비밀/깊숙한 곳에 감춰둔 다 아는 이야기. 감춘 내용이 치명적일수록 빠르게 누설되고 빠르게 전파된다. 범인은 늘 감춘 자신. 유출의 시작은 늘 이 한마디, 너만 알고 있어.
사망/꿈이 자라지 않는 삶.
사실/진실과는 늘 약간의 거리, 사실이 진실에 닿지 못하는 이유는 두 가지. 게으른 관찰. 섣부른 결론.
상추/모두가 높이에 집착할 때 묵묵히 넓이를 추구한 채소. 밥을 얹을 수 있는 넓이. 고기도 얹을 수 있는 넓이. 된장도 얹을 수 있는 넓이. 밥과 고기와 된장에게 높이를 만들어주고 자신은 아래가 되는 넓이.
새/ 이름이 가볍다. 발음도 가볍다. 몸도 가볍다. 마음도 가볍겠지. 하늘을 날고 싶다면 새처럼 가벼워야 한다. 욕심은 생각보다 무게가 많이 나간다.
새벽/ 어둠끝에 새벽이 있다. 새벽끝에 아침이 있다. 어둠-새벽-아침. 지구가 태어나고 어둠, 새벽, 아침으로 이어지는 이 꾸준한 공식이 흔들린 날은 단 하루도 없었다. 공식은 어둠에게만 적용되는 건 아니다. 고독 끝에도 새벽이 있다. 고통 끝에도 새벽이 있다.
선생님/가르치는 사람. 공부를 가르치는 척하면서 세상을 가르치는 사람. 서른 명을 가르치는 척하면서 한 명 한 명을 가르치는 사람. 그냥 가르치는 게 아니라 배우려는 마음이 들게 한 후에 가르치는 사람. 선생은 쉽지만 선생님은 어렵다.
선생/가르치는 사람.
약/질병을 낫게 한다. 상처를 아물게 한다. 그러나 몸과 마음이 같이 아픈 사랑이라는 병에는 약이 없다. 의학이 못나서도 약학이 게을러서도 아니다. 사랑은 나아서는 안 되는 병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역사가 끝나는 마지막 날까지 끙끙 앓아야 할 불치병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양말/ 발 감옥. 그러나 발은 그것이 감옥인 줄 모른다. 아침마다 손에게 나를 감옥속으로 밀어 넣어달라고 부탁한다. 저녁에 잠시 석방되지만 다음날 아침이면 어김없이 다시 수감된다. 발은 이렇게 평생을 양말에 갇혀 산다.
하지만 발은 양말이 나를 보호한다고 믿는다. 보호는 감옥이다. 느슨한 보호는 느슨한 감옥이고 따뜻한 보호는 따뜻한 감옥이다. 빈틈없는 보호는 빈틈없는 감옥이다. 진정 보호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그를 석방해야 한다.
어머니/주다. 받다. 이 당연한 거래 원칙을 무시하는 사람. 받지 않고 주는 사람. 그래서 손해가 막심한 것처럼 보이는 사람. 그러나 이는 착시. 길게보면 그녀 역시 받은 만큼 준다. 어머니에게도 어머니가 있었다.
얼음/ 겨울이 만들고 여름이 사용한다. 오늘 내가 시간을 쏟아 만들어내는 것의 가치를 오늘이 몰라줄 수도 있다.
여자/사람. 세상 모든 문장을 뒤진다. 여자라는 말이 들어간 문장을 다 추린다. 여자를 사람으로 바꾼다. 뜻이 달라지는 문장은 없다. 만약 그런 문장이 있다면 그건 세상에서 가장 조악한 문장.
여행/다시 돌아온다는 전제로 길을 떠나는 것. 떠나서 돌아오지 않는 건 여행이 아니라 이사라 한다.ㄱ ㅡ러나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여행은 자유를 만나러 가는 것이니 여행이라는 말의 뜻도 더 자유롭게 놓아줬으면 좋겠다. 여행. 돌아올 수도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는 떠남.
타협/나는 내 의견 밀어붙이는 일에 실패하는것. 너는 네 의견 밀어붙이는 일에 실패하는것. 둘 다 실패함으로써 둘 다 성공하는것. 내 의견이 죽어 우리 의견이라는 더 큰 모습으로 살아남는것.
커피/눈이 마시는 음ㅇ료. 우리는 입으로 액체를 마시며 동시에 눈으로 그 진한 색깔을 마신다. 커피의 진함속엔 추억, 설렘, 용서, 차분, 응원 같은 것들이 고요히 스며들어 있다. 눈에 띄지 않게 숨어들어 있다. 그래서 우리는 누가 추억을 마시는지.
누가 설렘을 마시는지, 누가 용서를 마시는지 알 수 없다. 각자 다른 이유로 마시는 길은 진함. 이것이 커피의 잔잔한 매력이다. 만약 커피가 투명한 색이었다면 지금처럼 넓게 사랑받지 못했을 것이다.
커피숍/ 건물마다 하나씩.교회를 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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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엔 높은 언덕에 올라 동네를 내려다 보면 십자가가 참 많이 보였다.
지금은 새 건물 설때마다 한 건물 지날때마다 커피숍이다.
아무리 계산을 해보아도 타산이 안맞는다.
커피숍사장이 살아남는길은 커피숍을 접는 일이다.
가을이 왔다.
여름과 가을은 맞닿은 계절임에도 하늘과 땅처럼 아득하다.
여름에 읽던 글을 선듯한 바람이 이는 가을까지 읽고 있다.
영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다.
자꾸만 되돌아가 읽고 있다.
가을바람탓인가 사람탓인가
글들이 내 마음자락을 놓아주지 않는다.
이상하다 . 이책.. 사전이어서 그런가?
눈이 침침하다.
아무래도 손을 봐야 할 것 같다.
하늘은 높기만 한데
이 기막힌 계절에
수많은 일들에 둘러쌓여 엎어졌다 일어났다를 반복한다.
글들이 눈앞에 삼삼하기만 한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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