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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을 공부해서 이치를 깨닫고 그것을 자기 경험 속에서 조금씩 체험해 나가면 사람의 운명이 바뀝니다. 남편이나 아내가 뭐라고 하든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예 알겠습니다" 하고 말해집니다. 금방 잘못될 것 같지만 실제로 그렇게 해보면 아무런 문제도 생기지 않습니다.
내가 옳다는 생각을 움켜쥐고 있을 때는 그렇게 말하면 큰일 나는 줄 아는데, 그 생각을 내려놓으면 괴로움이 없이 살아갈 수 있습니다.
'나'는 이 세계의 일부입니다. 이 무한한 세계 가운데서 '나'라고 하는 것은 티끌같이 작은 존재입니다. 동시에 내가 인식하는 '세계'는 내 마음속에 그려진 세계입니다.
사람의 마음마다 서로 다른 세계를 그리고 있으므로 각자가 그리고 있는 세계는 서로 다른 것입니다. 내가 알지 못하는 것은 없는 것과 같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내가 아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자기가 아는 만큼의 세계, 또 자기 식대로 알고 있는 세계, 이것이 각자의 일체입니다.
그러므로 세계는 내 마음속에 있습니다. 나는 이 세계의 일부이고, 이 세계는 나의 일부입니다. 세계는 한없이 많은 티끌로 구성되어 있어 티끌은 이 세계의 일부이지요.
그런데 하나의 티끌 속에 다시 이 세계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하나의 작은 티끌에 시방세계가 다 포함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리로 나아가는대 신해행중信解行證의 네 가지가 필요합니다.
첫째, 신은 믿음입니다. 수행을 통해 진리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먼저 굳건한 믿음이 기초가 되어야 합니다. 진실한 믿음은 기적을 이루어 냅니다.
둘째, 해 解는 올바른 앎, 밝고 환한 앎을 말합니다. 믿음만 클 뿐 어리석음에 갇혀 있다면 그 믿음은 맹신, 눈이 없는 믿음이며 미신, 어리석은 믿음이 되기 쉬워요, 아무리 성능좋은 자동차를 타고 있다 하더라도 길을 잘못 들거나 운전이 서툴다면 큰 사고를 불러 일으키는 것과 같습니다. 올바른 앎이 있어야 합니다.
믿음만 중요시하고 앎을 가볍게 여기면 맹신이나 미산에 머물게 되고, 반대로 앎만 중시하여 믿음이 엇ㅂ다면 그것은 지식이나 철학이 됩니다. 굳건한 믿음과 올바른 이해가 함께 이루어져야만 그것이 바른 믿음이고 바른 앎이라 할 수 있습니다.
셋쩨, 행行은 실천입니다. 굳건한 믿음과 올바른 앎이 있더라도 실제로 행동하는 실천이 따라야만 합니다.실천없는 앎은 생각속에서만 헤매며 상을 짓는 사량분별思量分別에 불과 합니다.
단순히 내 눈에 보이는 것만 가지고 머리를 굴리는 것을 '사량분별'이라고 표현하는 겁니다.
마지막으로 증證은 진리의 중득입니다. 열심히 일을 하고 나서도 아무 성과를 내지 못하면 그 의미가 축소되는 것처럼 부지런히 실천하면서 깨달음을 중득하지 못하면 큰 이익은 얻지 못합니다.
실천을 통해 진리를 체험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굳건한 믿음과 올바른 이해와 높은 실천과 진리의 체득이 잇어야만 참된 진리라 할 수 있습니다.
안될 수도 있다는 생각은 아예하지 않는 그것이 간절함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기도 할 때 목욕재계하고 음식을 삼가고 부부관계도 삼간 것은 정성을 기울인 간절한 마음을 갖기 위해서지요. 추운 겨울에 목욕재계를 하거나 금식을 하거나 부부가 한방을 쓰지 않아야만 기도가 성취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하는 것은 자신의 소원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자기의 모든 것, 모든 욕구를 내려놓는 간절한 마음이 잇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자기 카르마로부터 해방되면 욕심에서 비롯된 번뇌가 걷히고 마음깊은 곳에 잇는 순수의식이 일어납니다.
순수의식은 깊은 무의식의 세계에 자리합니다.신의 소리라거나 하나님의 계시라거나 신령의 도움이라는 것들은 대부분 마음 깊숙이 자리한 순수의식, 선의지가 의식의 표면으로 올라오는 현상입니다
순수의식이 의식위로 떠오르려면 잡다한 번뇌와 욕심이 사라져야 합니다. 불평과 불만과 미움이 모두 사라지게 됩니다. 무당이 굿을 할 때 도끼날 위에서 맨발로 펄쩍펄쩍 뛰어다녀도 상처 하나 생기지 않는 것은 그가 무의식의 세계에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의식적으로 노력해서는 불가능한 일이지요. 순수 무의식의 상태여야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간절한 마음이란 이토록 중요합니다.
그런데 마음에 탐심貪, 진심嗔, 치심痴의 세가지 독성이 끼어들면 독심이됩니다. 맑고 깨긋한 물에 감로수도 독약이 되어 사람을 해치듯이, 삼독심은 우리를 괴로움에 빠뜨립니다. 삼독심에 물들면 진리를 믿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고 실천하지 않습니다.
쥐가 쥐약을 먹듯이 순간적인 쾌락에 빠져서 고통을 자초하지요. 쥐약을 먹은 뒤에 괴롭다고 아무리 아우성을 쳐도 이미 모든 것은 자기의 어리석은 행동에 따른 과보이니 남을 탓할 데가 없습니다.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길은 그 어리석음을 없애는 것뿐입니다.
간절한 마음으로부터 믿음이 나오고 진실이 나오고 지혜가 나옵니다. 그만큼 믿음이 중요한 거예요. 가절한 마음이 굳건한 믿음을 가져오고 기적을 가져옵니다. 기도는 그런 간절한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더한 기적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깨달음입니다.
반야바라밀다는 그 어떤 믿음, 그 믿음으로 가져오는 그 어떤 기적보다도 더 깊은 믿음이고, 더 큰 기적을 가져옵니다. 꿈 속에서 강도에게 쫒기는 사람이 어떤 절대적 존재로부터 보호받았다면 기적입니다.
종교적 행위로 인한 이런 기적과 달리, 개달음은 꿈에서 깨어나 눈을 뜨는 것입니다. 눈을 떠서 꿈이었음을 아는 것입니다. 꿈 속에서 일어난 그 어떤 기적도 꿈에서 깨는 것만 같지는 못하니, 반야바라밀다는 그 어떤 믿음보다 더한 기적을 불러오는 최고의 신비한 믿음입니다.
남편이 내 말을 들어주지 않을 때 그저 답답해하면 괴로움에 빠질 따름이지만 고집하는 남편을 통해 마찬가지로 고집하는 내 모습을 알아차리는 기회로 삼아 내 고집을 놓아버리면 남편을 그대로 두고도 나는 자유를 만긱할 수 있어요. 일체는 다 마음이 짓는 것이라는 걸 확인 할 수 있습니다.
내가 먼저 숙이고 나서 시간이 흐르면 자연히 남편도 나에게 숙이는 때가 옵니다. 이제 상대를 제압함으로써가 아니라 상대에게 고개 숙임으로써 다시 이기는 길이 있다는 공부를 하게 되지요.
그러니 주어지는 일은 무엇이든 다 수행의 소재가 됩니다. 세상을 등지고 아무도 없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야만 수행이 되는게 아닙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 나에게 벌어지는 일들을 과제 삼아 수행해 나가면 됩니다.
그러므로 ' 저 언덕' 은 죽어서 가는 어떤 세계나 타방정토나 미래정토가 아니라 지금 내가 갈 수 있는 세계, 한 생각 돌이키면 도달 할 수 있는 세계, 유심정토唯心淨土입니다.
그런 세계로 나아가고, 그런 세계에 도달하면 참 자유와 진정한 행복을 얻을 수 잇습니다. 또 나의 자유와 행복을 얻는 데에만 머무르지 않고, 중생과 더불어 공생공영하는 세계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 몸과 이 재능을 이용해서 어리석은 중생을 깨우치고, 배고픈 자에게는 양식이 되고 병든 자에게는 양약이 될 수 있습니다.
중생의 고통을 구제하기 위해 보살이 화현化現을 하듯, 부모가 필요한 어린아이에게 그의 엄마로 화현하고 , 아내가 필요한 남편에게는 그의 아내로 화현하며, 자식이 필요한 노인에게 그의 자식으로 화현합시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처한 상황에 따라 나에게 주어지는 역할을 하는 겁니다. 불보살은 천백억 화신이라고 합니다. 헤아릴 수 없는 많은 모습으로 중생앞에 화현합니다.
인연을 따라 한량없는 모습으로 몸을 나툽니다. 가는 티글의 수만큼, 천백억 가지로 몸을 나투어 중생을 구제합니다. 바로 그것이 수행자가 가지는 힘입니다.
그러니 [반야심경]의 가르침을 통해 깨달음의 길로 나아가는 수행에 매진합시다. 정진을 통해서 개달음을 얻은 뒤에는 이 좋은법을 이 세상에 널리 전하고, 고통받는 중생을 구제합니다. 우리가 할 일은 이것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가르침을 담고 있는 마지막 부분이니, 이 구절은 크고 힘찬 목소리로 읽어볼까요?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가세 가세 저 언덕으로 건너가세
저 언덕으로 건너가서 깨달음을 이루세
우리말 반야심경-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관자재보살이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할 때 오온이 공한 것을 비추어 보고 온갖 고통에서 건너느니라 사리자여!
색이 공과 다르지 않고 공이 색과 다르지 않으며
색이 곧 공이요 공이 곧 색이니, 수 상 행 식도 그러하니라 사리자여!
모든 법은 공하여 나지도 멸하지도 않으며
더럽지도 깨끗하지도 않으며 늘지도 줄지도 않느니라
그러므로 공가운데는 색이 없고
수상행식도 없으며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도 없고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도 없으며
눈의 경계도 의식의 경계까지도 없고
무명도 무명이 다함까지도 없으며
늙고 죽음도 늙고 죽음이 다함까지도 없고
고집멸도도 없으며 지혜도 얻음도 없느니라
얻을 것이 없는 까닭에 보살은
반야바라밀다를 의지하므로
마음에 걸림이 없고 걸림이 없으므로 두려움이 없어서
뒤바뀐 헛된 생각을 멀리 떠나 완전한 열반에 들어가며
삼세의 모든 부처님도 반야바라밀다를 의지하므로
최상의 깨달음을 얻느니라
반야바라밀다는 가장 신비하고 밝은 주문이며
위없는 주문이며 무엇과도 견줄수 없는 주문이니
온갖 괴로움을 없애고 진실하여
허망하지 않음을 알지니라
이제 반야바라밀다주를 말하리라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3번)
..
-()-
오늘도 모든 일에 있어서 중도의 길을 걷고
나에게서 빠져나와 객관적으로 볼수있게 되기를
숲속의 바람같기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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