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만권을 읽으면..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비욘 나티코 린테블라드/박미경옮김/다산북스

다림영 2023. 1. 29. 0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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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욘 나티코 린데블라드

1961년 스웨덴에서 태어났다. 대학 졸업 후 다국적 기업에서 근무하며 스물여섯 살에 임원으로 지명되었지만 홀연히 자리를 포기하고 사직서를 냈다. 그 후 태국 밀림의 숲속 사원에 귀의해 '나티코',즉 '지혜가 자라는 자'라는 법명을 받고 파란 눈의 스님이 되어 17년간 수행했다.

승려로서 지킬 엄격한 계율조차 편안해지는 경지에 이르자 속 후에는 사람들에게 혼란스러운 일상속에서도 마음의 고요를 지키며 살아가는 법을 전하기 시작했다.

진정한 자유와 평화에 대한 유쾌하고 깊은 통찰력으로 스웨덴인들에게 널리 사랑받던 그는 2018년 루게릭병을 진단받았다. 급격히 몸의 기능을 잃어가면서도 사람들에게 용기와 위로를 계속해서 전했던 그는 2022년 1월 , 망설임도 두려움도 없이 떠난다는 말 한마디를 남기고 숨을 거두었다.

 

..

실컷 울고 난 뒤처럼 속이 후렸했습니다. 폭풍우가 지나가자 몸이 다시 잔잔해졌습니다. 마음도 아주 편안해졌지요. 아무것도 생각하지 ㅇ낳고 차분한 상태에서 온전히 제 마음을 받아들였습니다. 

고속도로에서 막 벗어나려는 순간, 제 안에서 뭔가가 움찔 거렸습니다. 전에도 몇 번 그랬던 것처럼 현명하고 직관적인 목소리가 또 다시 제게 말을 걸었습니다. 제가 지금 말하려는 것처럼 장황하진 않았습니다. 실제로 언어의 형태를 띠었던 것도 아니었어요. 순간적인 환영이나 관념에 더 가까웠지만, 그 메시지가 마음에 분명히 다가왔습니다. 

 

지금까지 내가 진실하게 살 수 있도록 격려해줘서 고마워. 내 안의 아름다운 측면을 발휘할 기회를 많이 준 것도 정말 고마워. 그런데 내가 바랐던 때보다 훨씬 일찍 마지막 숨이 거둘 날이 올 것 같아. 차분히 생각해보니 용서받지 못할 일이나 깊이 후회할 일, 바로잡지 못할 일을 저지르진 않았어. 내 어깨를 짓누를 만큼 묵직한 업을 짓지는 않았어. 그래서 때가 오면 , 이 필멸의 고리를 벗어던질 때가 오면, 그동안 바르게 살았음을 알기에 난 환한 얼굴로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 거야. 다음에 무슨 일이 닥칠지 두려하지 않으면서 숨을 거둘 수가 있을 거야.

 

마법같은 순간이 으레 그렇듯 그 순간도 무척이나 놀라웠습니다. 강렬하고 멋졌으며 즐겁기까지 했습니다. 더군다나 그 느낌은 막연한 추측이 아니라 단정적인 고백이었습니다. 저는 늘 바르고 진실하게 사는 것이, 양심에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어왔습니다. 누군가의 그런 노력을 알아주고 인정해주는 것만 같았습니다. 

" 넌 지금까지 잘 준비해왔어. 아무런 후회나 미련없이 죽음을 맞이 할 수 있을거야. 걱정할 필요없어."248

 

예전에 어디선가 이런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당신이 바라지 않는 것을 남들에게 주지마라. 가령, 청하지도 않은 조언 같은 것은 건네지 말라.'

..

"나는 당신이 왜 그런 질병에 걸렸는지 잘 압니다. 건강을 회복하려면 이렇게 해야 합니다." 이런 법주의 조언은 흔히 제 신체적 질병에 감정적, 심리적 원인이 있다고 전제합니다. 그런 말을 접할 때마다 얼마나 화가 나는지 힘빠진 환자조차 잠시나마 파들거리게 됩니다. 오만하고 주제넘으며 어떤 도움도 줄 수 없는 말이지요. 

 

반면 승려 시절에 배운 것들은 여러모로 도움이 되었습니다. 어쨌거나 저는 앞일을 미리 걱정하지 않는 법과 떠오르는 생각을 다 믿지 않는 법을 17년 동안 수행했으니까요. 진단을 받은 뒤로는 그 어느 때보다 소중해진 기술입니다. 그 기술덕분에 때로 덮쳐오는 절망감을 조금이나마 물리 칠 수 있었습니다. 

 

아울러 휠체어 신세가 되거나 말도 못하고 아무것도 삼킬 수 없게되면 어떤 기분이 들지에 집착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그 대신 제 안에서 싹트는 다른 느낌을 감지할 수 있었지요. 그것은 죽는 그날까지 진정으로 살아 있고 싶다는 강력한 의지였습니다. 저는 죽음이 두렵지는 않습니다. 다만 아직 삶을 멈출 준비는 되지 않았습니다. 

252

..하지만 저는 질병에 분노하진 않습니다. 신이나 운명에도 분노하지 않습니다. 어차피 장수를 약속 받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 인간은 나무에 매달린 잎사귀와 같습니다. 대부분의 잎은 시들어 갈색으로 변할 때까지 버티지만, 일부는 여전히 파릇파릇한 초록빛일 때 떨어지지요.255

 

어렸을 땐 제 몸의 이곳저곳이 걱정스러웠습니다. 마음에 안 드는 곳들은 얼마든지 있었고, 그곳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불만을 늘어놓았지요. 하지만 이제 저와 제 육신은 그때와는 전혀 다른 관계를 맺고 있스습니다. 오랜 친구 같다고나 할까요. 우리는 좋을 때나 어려울 때나 늘 함께 했습니다. 우리는 이젠 젊지 않습니다. 그 오랜 세월을 함께해준 제 몸에게 고맙습니다. 그 고마움을 어떻게든 표하고 싶습니다.

 

숱한 세월 동안 한결같이 최선을 다해줘서 정말 고맙다.

넌 지금 힘든 싸움을 하고 있어 . 참으로 네가 안쓰럽단다.

넌 뭐 하나 거저 얻지 못하면서도 날 위해 온힘을 다하는구나.

네가 필요한 공기조차 얻지 못하는데도.

그런 너를 도우려고 나도 최선을 다하고 있어. 하지만 충분치 않다는걸

알아. 아니, 턱없이 모자라지.

그런데도 넌 날마다 네가 가진 걸 모두 걸고서 힘께 싸우는구나. 넌 내 영웅이야.

또 다른 동작이 불가능해지더라도 다시는 너한테 화내지 않겠다고 약속해.

그 어느 때보다 더 열심히 너에게 귀를 기울일게. 네가 줄 수 있고 또 주고 싶어 하는 

것보다 더 많이 달라고 요구하지 않을 거야.

지금까진 그러지 못해서 미안해.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약속이 있어. 네가 더 버틸 수 없을 땐

네가 원하는 대로 할거라고 엄숙히 맹세할게.

그때가 오면 다 받아들이고 감사한 마음으로 내가 할 수 있는 걸 할게.

믿고 받아들이며 편히 쉴게. 아주 의연한 목소리로 너에게 속삭일게.

"너와는 이렇게 끝나겠지만 난 앞으로도 계속 갈 거야."264

 

태국에는 멋진 속담이 하나 전해 내려옵니다. '부처의 등을 도금한다'라는 말이지요.

태국의 신도들이 정기적으로 절을 찾아 참선한 다음 금종이와 촛불, 향을 보시하는 전통으로부터 유래한

것입니다. 태국의 불상들은 대개 이 금종이들로 금박을 입히거든요. 이 속담은 자기의 선행을 다른이들이알아 주지 않아도 상관 없다는 뜻입니다. 아무도 보지 못할 불상의 등에 금박을 입힌다는 생각에는 그야말로 멋진구석이 있습니다. 이때 다른 누군가가 아는지 모르는 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자기 자신만은 알테니까요.

우리는 늘 자기 자신과 함께 살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행동과 기억은 우리가 앉아있는 

목욕물과도 같습니다. 그 깨끗함은 자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269

 

부처님은 그런 이들의 아름다움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자기 행동과 말에 책임지는 사람, 진실을 고수하고 규칙을 존중하는 사람 , 다른 사람을 일부러 

해치지 않는 사람, 그런사람은 열대의 밤하늘에 뜬 보름달처럼 구름 뒤에서 서서히 나타나 온 세상을 환히 비춰준다."271

 

영화에는 '올드 로지 스킨스'라는 족장이 등장합니다. 풍파 ㅁ낳은 인생을 살았던 족장은 어느 날 아침 뽀족하게 솟은 원뿔형 천막에서 나오며 이렇게 말했지요. "오늘은 참 죽기 좋은 날이로군."

제게 죽음이 찾아오는 방식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친구처럼. "어서오게, 죽음이여," 죽음이 다가와 제 귀에 이렇게 

속삭여주면 좋겠습니다. "언젠가는 다 끝난다네, 그러니 어떠한 그림자도 남기지 않고 떠나도록 하게."

 

삶은 어느 날 갑자기 끝날 겁니다. 그 삶을 어떻게 선택하고 살아왔는지가 더욱 중요해지는 순간입니다. 윤회나 업보를 믿든 말든 상관없습니다. 어느 쪽이든 우리가 지고 살아온 마음의 짐이 우리가 무엇을 했고 무엇을 하고 있고 무엇을 

기다리는지를 돌이키는 데 아마도 큰 영향을 미칠 겁니다. 272

 

열살 정도만 돼도 내면의 아름다움이 구체적을 어떤 것들인지 설명할 수 있을 테지요. 인내심, 관대함, 정직함, 당당함, 용서하는 능력, 상대의 처지에서 생각하는 능력, 공감, 경청, 연민, 이해심, 사려 깊음.... , 무엇이 아름다운 것인지는 누구나 쉽게 알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의 문화는 딱히 이런 자질을 밖으로 드러내도록 장려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바로 그렇기에 저는 이런 내면의 힘에 더욱 주목했으면 합니다. 우리에게 허락된 그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우리 안에 

있는 가장 아름답고 강한 힘을 겉으로 드러내면서 살아가자고 말하고 싶습니다. 273

 

개개인의 삶에는 저마다 도전과 난관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발길 닿는 곳마다 갈림길이 기다립니다. 자기한테 편한 길을 선택해야 할까요. 아니면 상대에게 너그럽고 훌륭하고 포용적이고 배려하는 길을 선택해야 할까요? 세상에 편한 길은 없습니다. 반듯하고 평탄해보이는 길에도 그것만의 함정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예상할 수 있는 길을 택할 것인지 아니면 더 큰 포용력과 상상력을 요구하는 길을 갈것인지의 문제는 남아 있습니다. 훌발점은 같을지 모르지만 두 길의 끝은 대단히 다른 목적지로 이어집니다.

 

내면의 도덕적 나침반이 가리키는 방향을 잘 아는 사람의 삶은 더 쉽고 더 자유롭습니다. 저는 그 증거를 곧 잘 목격합니다. 이 우주는 마구잡이로 흘러가는 무심한 곳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존재는 공명합니다. 우주는 우리가 하는 말과 행동 이면에 있는 의도에 반응합니다. 우리가 내보낸 것은 결국 우리에게 돌아옵니다. 세상은 세상 그 자체의 모습으로 존재하지 않지요. 세상은 우리의 모습으로서 존재합니다. 그러니 그안에서 보고 싶은 모습이 있다면 우리가 그런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275

 

비교적 최근작품중 특별히 제 마음에 들었던 텔레비전 프로그램은 [스캄Skam]노르웨이 작품인데, 10대 청소년의 곤점에서 젊음을 썩 훌룽하게 묘사한 작품이지요. 어르들은 어쩌다 배경에 잠시 등장할 뿐 존재감이 전혀 없습니다.

이 드라마에서 가장 빛나는 등장인물은 바로 '누라'입니다. 겉모습도 예쁘지만 내면은 훨씬 더 사랑스러운 인물이지요. 저는 누라에게 완전히 반했습니다. 누라는 누구라도 친구로 삼고 싶어할 만한 인물입니다. ..

머리를 말리는 장면에서 , 거울에 붙은 포스트잇 메모지가 하나 보입니다. 거기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적혀 있습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네가 모르는 

전투를 치르고 있다.

친절하라,

그 어느 때라도.

277

 

우리가 삶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사랑하는 이들 곁에 영원히 머물 수 없음을 머리로만이 아니라 온몸으로 이해 할 때 무슨일이 벌어질까요? 더는 이만하면 됐다고 믿으며 살아갈 수 없게 도비니다. 그날이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우리는 우리에게 으미 있는 모든 사람과 반드시 이별할 것입니다. 그것만이 확실하며 그 외의 나머지는 다 추측이고 가능성입니다. 

그 진실이 우리 존재의 일부가 되었을 때 ,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그리고 삶 자체에 다가갈 유일한 방식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바로 다정하게, 다정하게 다가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288

 

.'신은 당신이 절대 찾지 않을 만한 장소에 가장 귀한 보물을 숨겨 두었다. 바로 당신의 주머니다.'

.."불교도로서 우리는 원래의 죄original sin가 아닌 원래의 순수original purity를 믿습니다."

 

..저는 며칠전에 그랬듯이 여전히 제가 죽는 순간 가장 먼저 안도감을 느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이 가여운 몸은 드디어 더 이상 싸우지 않아도 됩는 겁니다. 다정한 몸이여, 싸워주어 고맙소. 싸움은 드디어 끝났습니다. 

그 다음에는 분명히 경이를 느끼게 되겠지요. 지난 30년간 저는 이 순간과 그 다음에 따를 일들을 

준비한 것이나 다름없지만, 그런데도 깜짝 놀라가 될 겁니다. 

죽음 뒤에 사라질 그 모든 것을 내려 놓거나 적어도 살짝만 쥐고 살아가세요. 영원히 남을 것은 우리의 업이지요. 

세상을 살아가기에도, 떠나기에도 좋은 업보만을 남기길 바랍니다. 

이제 저는 축복 받은 자의 기쁨을 느끼며 어떤 예측도 불허하는 모험을 떠납니다. 걱정도 의심도 더 이상 없습니다.

당신의 존재가 햇볕처럼 따뜻했습니다. 

온 마음으로 감사합니다. 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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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새벽 2시반에 눈이 떠졌다. 저절로 깨어났다. 다시 눈을 감아도 어떤 열정으로 잠에 들수가 없었다. 알수가 없다. 나는 왜 잠에 빠지지 않는 것인지 알다가도 모를 흔들림의 지배를 받고 있다.  이 새벽녘에 깨어나 뭔가를 해내려고 고군분투하고 있다. 큰아이가 내가 깨어 있을 때 들어왔다. 잠을 안자고 무엇을 하느냐 묻기에 그냥 눈이 떠져서 작업을 한다고 하니 웃는다. 

고군분투하던 것들을 결국 해내지 못하고 덮고 말았다. 시간이 너무 아까워 화가 올라왔다. 막내가 깨면 다시 도움을 청해야 할 상황이 되고 말았다. 백팔배를 하며 마음을 가라앉히고 조용한 음악을 듣고 차한잔을 앞에 두고 덮어둔 책을 읽으니 이렇게 마음이 잔잔해지고 다시 나를 되돌아보게 된다. 어떤 욕심에 눈이 어두워지고 정신을 놓치고 있었던 것이다. 나이가 들어도 변하지 않는 모습에 끝없이 마음공부를 놓으면 안되겠다.

 

외국책들은 옮긴이의 번역에 따라 느낌이 상당히 다르다. 

이책의 잔잔한 울림은 옮긴이 덕분에 더 따뜻한감성으로 전해졌을것이다. 박미경이란 이름을 노트에 적어둔다. 

 

감사히 책을 덮는다. 다시금 앞에 두고 종종 뒤적거리기도 할 것이다. 

고요한 죽음에 대한 마음가짐을 지니기 위한 공부를 해야 하겠다.

끓는 욕심을 비워내는 연습을 부단히도 해야 하겠다. 

별스럽지도 않은 것에 온마음을 매달아 내 몸을 힘들게 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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