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이름이 이제야 눈에 들어오다니.. 시간이 너무 없어 그냥 가져다 주었으면 놓쳤겠다. '남해의 봄날'
내 태생지이기도 하고 한때 여행속에 살던 큰아이가 가장 살기좋은곳이 남해가 아닐까 하는 얘길 했다.
너무 먼 거리여서 현실에 묶여 가보지못하고 있으나 정말 몇며칠 그곳에서 그냥 앉아있거나 거닐거나 하고 싶은
것이다. ..
스물중반부터 나는 구멍가게를 했다. 말이 서울이지 정말 조그만 유리관 두개 놓아놓고 시작한 나의 업이 이 나이
까지 이어질 줄 꿈에도 몰랐다 . 그러면서도 나와는 맞지 않는 현재의 업종을 언제까지 이어갈 수 있을까 하고 있
는 것이다. 먹고사는 일인지라 물린다는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인것이다.
언젠가 동네 슈퍼아주머니께서 가게속에서만 있는다고 나무라셨다. 그것이 아마도 10년전정도 된 것 같다.
그분처럼 나도 눈이 깨어 있었다면 19년동안 한동네에서 한업종으로 장사를 이어가진 않았을 것이다.
주말이면 그분은 대중교통으로 한시간 반정도의 거리에 있는 절에 다니신다고 했다. 늘 버스를 타고
가는데 가다보면 언제나 작은 구멍가게 하나가 눈에 띄어서 늘 마음에 두었다.
어느날 그분은 환한모습으로 내게 각별한 소식을 전했다.
마음에 품었던 그 가게를 사게 된것이다. 동네에서 하던 슈퍼를 다른이에게 넘기고 나이들어 자연속의 그곳에서 살거라고 하셨다. 더 더욱 반가운 소식은 그 조그만 가게 앞으로 둘레길이 생겼고 식구들은 카페를 할 것인지 구멍가게를 잘 단장하여 이어갈것인지에 대해 분분한 꿈을 펼친다는 얘기였다.
마음에 씨앗을 뿌리고 물을 챙겨주며 정성을 기울이다보면 분명 열매는 맺히게 되는 것이리라. 늦지 않았을까 하지만
무엇이든 좋아하는 것을 생각하며 수첩에 적어보는 요즘이다. 자연속의 그런 예쁜구멍가게를 손에 쥐기란 어림도 없는일이겠지만 말이다.
"지난봄, 진도항과 운림산방 울돌목을 지나 문내면 고당리에서 해남으로 넘어오면서 문득 그 가게가 떠올라 찾고 싶었습니다. 한적한 곳,
큰 삼거리에 자리한 검은 양철지붕의 가게로 우측에 우체통과 곱게 단풍이 든 나무가 있는 사진은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지만 이름을 모르니 완전히 서울가서 김서방 찾기였습니다. 앗! 그런데 황산면에서 국도로 조금 올라가니 눈앞에 나타난 가게는 분명 기억속의 그 모습이었습니다.
세상에! 네가 찾았다기보다는 구멍가게가 저를 자석처럼 이끄는 듯했습니다. 가게 간판이 지붕 밑에 달려 있어 잘 보이지 않았지만 너른 들판에서 '우리슈퍼'를 찾은 것은 행운이었습니다. 오던 길 주변에 커다란 라일락 나무가 종종 눈에 띄어 신기했는데 우리슈퍼 뒷마당과 바로 앞 도로에는 자주색 꽃들을 활짝 늘어뜨린 더 크고 오래된 나무들이 뻗어 있었습니다. 라일락중 세계에서 가장 인기 많은 품종 이름이 '미스김 라일락'이라고 하지요. 1947년 미국의 어떤 식물학자가 우리나라에만 자생하는 라일락을 북한산에서 채집해 돌아갔는데요, 그것을 개량한 후 그 일을 돕던 직원의 성을 따서 이름을 붙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닫시 우리나라에도 들여왔답니다. 낭만적이게도 꽃말이 '젊은날의 추억'입니다. "p25
"산 아랫동네나 윗동네 모두 삶이 넉넉하지 않았지만 마당에서 내려다보는 노량진 괴촌의 불빛은 꿈을 키우고 희망을 품는 온기가 느껴져 충분히 낭만적이었습니다. 그 시절 부모님이 치열하게 하루하루를 살아오셨음을 지금 생각해 보면 분명히 알수 있습니다.
서울은 개발과 변화의 중심에 있었기에 자랐던 동네의 예전모습은 거의 남지 않았습니다. 씩씩햇던 나의 어린날, 층층의 기억을 포개놓은 집과 친구는 앨범 안 빛바랜 사진속에 추억으로만 존재합니다. "
오늘도 구멍가게를 찾아 걷습니다. '서울상회'를 향해 가는길, 이화동의 가파른 골목길은 어린시절 숨가쁘게 뛰어오르던 그 달동네와 닮아 있습니다. "p59
"파수꾼같이 희미한 불빛의 구멍가게가 보입니다. 한 청년이 문을 열려고 애를 씁니다. 낡은 나무 문틀이 삐거덕거리며 말을 듣지 않습니다. 두 손으로 문틀을 살짝 들어 올려 달래듯 밀면 될 텐데요. 요령이 엇ㅂ는 걸 보니 가게의 단골손님은 아닌가 봅니다.
합천시장이 생긴이래 시장골목사람들의 쉼터였던 '옥산로가게'는 어느덧 50년 세월이 지나며 문틀도 지붕도 담벼락도 나란히 나이를 먹었습니다. 지난달 오래오래 함께했던 할머니를 멀리 떠나보내셨다는 할아버지의 밤은 외로운 긴 한숨의 시간입니다. 가게의 불빛도 밤새워 뒤척입니다. 무거운 제 발걸음만큼이나 저무는 구멍가게의 시간은 적막하고 애틋합니다. "p213
책장을 넘길때마다 반가운 슈퍼들의 행진이다. 너무 예뻐 자꾸만 뒤적이게 되며 맑은수채화의 가게들이 마음가득히 자리하게 된다. 곁에두고 한번씩 들여다보면 정말 힐링이 될것 같다. 맑고 고운눈으로, 오랜 추억으로, 사라져버리는 동네를 들어서면 반갑게 맞아주던 동네 구멍 가게들... 이젠 우리주변에선 찾아보기 쉽지 않다.
수채화에도 한때 몸 담았던 시절도 있었고 예쁜 가게사진을 찍어가며 걷던 나의 청춘을 그리워하며 책을 덮는다. 누구에게든 선물하고 싶은 그런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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