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만권을 읽으면..

[책추천]한시 속 인생을 묻다/김태봉/미문사

다림영 2021. 9. 18.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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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산책

배경

가을은 봄에 비해서 화사함은 떨어지지만 차분함은 확실히 앞서 있다. 맑은가을날 한적한 시골을 구석구석 돌아다니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가을정취에 빠져들고, 차츰 마음이 차분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당唐의 시인 왕유王維의 가을 소풍을 따라가 보면 차분한 가을정취가 그림처럼 눈에 들어온다. 

..

韓山轉蒼翠  차가운 가을산이 검푸르게 변하고

秋水日潺湲  가을 물은 날마다 졸졸 흐른다

倚杖柴門外  지팡이 짚고 사립문 밖에 나아가

臨風聽暮蟬  바람쏘이며 저문 매미 소리를 듣는다

渡頭余落日  나룻가에 지는 햇살은 남아 있고

墟里上孤煙  작은마을에는 외로운 연기만 피어오른다

復値接輿醉  다시 접여처럼 술에 취하여

狂歌五柳前  오류 선생집 앞에서 미친 듯 노래 부른다

 

스토리

맑은 가을 늦은 오후 집안을 서성이던 시인의 눈에 맨 먼저 들어온 것은 멀리 보이는 산이었다. 부쩍 차가워진 날씨에 산은 차츰 검푸르게 변하고 있었다. 산색이 하루가 다르게 녹색 빛에서 검푸른 빛으로 바뀌는 것을 보고, 시인은 가을이 왔음을 직감한다. 변한 것은 산의 색만이 아니다. 물의 흐름도 눈에 띄게 달라졌다.

 

여름내내 거칠게 콸콸 흐르던 물이 하루하루 다르게 잔잔해진 데서 시인은 다시 한번 가을을 실감한다.

이에 몸이 근질근질해진 시인은 지팡이 하나를 챙겨들고 사립문을 나섰다.

가을산책에 나선 것이다. 문밖을 나선 시인은 지팡이에 몸을 의지한 채 가을 바람을 쏘이는 데 어디선가 저녁 매미 소리가 들려온다. 가을이 깊어감을 아쉬워 우는 매미 소리가 구슬픔을 자아내기 에 충분하다.

 

매미 소리의 여운을 귀에 간직한 채, 시인의 시선은 자연스레 나룻가 쪽을 향하였다. 그곳에는 하루를 마감하고 서쪽으로 저무는 해가 걸려 있었다. 나루는 나그네가 떠나가는 이별의 공간이다. 그래서 그곳엔 늘 아쉬움과 미련의 정이 남아 있기 마련인데, 오늘의 나그네는 바로 석양이다.

 

떠나기가 아쉬운 듯 저녁 해는 노을을 벌겋게 여운으로 남겨 놓았다. 지는 해의 여운을 품은채 시인의 눈은 이웃 마을로 그 시선을 옮기어 간다. 그곳에는 한 줄기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평화로운 시골마을의 저녁 모습이기도 하지만 하루의 마감을 알리는 봉홧불 같기도 하다. 

 

가을의 저녁 정취에 흠뻑 빠진 시인은 은거 생활의 즐거움과 낭만을 만끽해 본다. 술에 취해 세상을 등지고 살았던 춘추시대의 은자 접여接輿와 집 앞에 다섯 그루 버드나무를 심어놓고 은거하였던 동진의 도연명 흉내를 내면서 말이다.

 

시사점

가을정취는 쓸쓸해 보이기 쉽지만, 욕심없이 사는 담백한 맛을 느끼게 한다는 점에서 은자의 분위기와 닿아있다. 가을의 나룻가에 걸려 있는 석양, 소박한 시골 마을 저녁에 피어오르는 한 줄기 연기, 이런것들이 곧 삶의 정취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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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공기가 사뭇 달라졌다. 

요즘은 집으로 돌아가는 바람결이 더없이 좋기만하다. 

기분좋은 바람으로 골목을 울리는 발자욱소리조차 정겹기만 하다. 

 

오늘은 친구가 빚은 술 몇병을 사들고 또 즐거워졌다. 

좋은사람과 마주하고 차 한잔을 하듯 술을 들고

이런저런 세상사와 그동안 만나지 못하고 나누지 않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한점 두점 꺼내며 귀를 연다면 

가을하늘처럼 맑아질 것 만 같다. 

 

잠시 들린 마실손님과 빚은술을 한 모금 나누며 10년

공을 들인거라 하니 마냥 웃는다. 

송편 두어개 얻어먹고  맑은 술 한모금하니 

나도 자연같은 그들처럼 

세상에 부러울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아 있어 느끼고 건강하니 나눌수 있어 더이상 말할 것이 무엇있을까.

 

 

내일 반납할 책이다. 옛날옛적 맑은이들의 마음을 들여다 보고 있노라니 

잠시라도 맑은마음이 스며들고 고운마음이 일렁인다.

졸졸졸 흐르는 가을의 물소리 같은 시들이 

세상과 거리를 두고 자연속에서 삶의 이치를 생각하는 

오랜님들을 말씀들을 거듭 읽어보며 잠시잠시 조용한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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