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만권을 읽으면..

[책추천]오늘은 죽기 좋은날

다림영 2021. 7. 4.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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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이조지음/박윤정옮김/문예춘추사

 

늦은밤 손님이 오셨다. 후덥지근한 가게에 선풍기 하나만 돌리고 있었다. 반짝거리는 까만 눈동자와

짧은 숏커트가 사뭇 인상깊었다.  이 늦은시간까지 ..하는 말이 맑은 눈동자에 담겨있었다 .

'불이켜져 있어 달려왔어요- ' ^^ 

마음이 심난하면 자꾸 귀에 손을 대고 싶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보통사람보다  귀걸이를 2개나 더  달고 있었다.

여름엔 가급적 뜷지 않는 것이 낫다고 얘기하자 언젠가 내가 또  그렇게 얘기해서 그냥 갔다고 한다. 귀를 뚫고 귀걸이 하나를 붙이고 나면 마음이 사뭇 즐거워지고 마음이 가라앉는다며 눈에 한가득 웃음이 담겼다. 귀에 대한 이야기가 채 끝나기도 전에 무슨책을 읽느냐 묻는다.  제목이 심상치 않아 물어보는 모양이었다. 책을 들고 보여 주었더니 어떤 내용이냐고 물으며 밤 10시가 넘은... 문을 닫아야 할 그 시간에 우린 책 이야기로 대화를 이어갔고 다음엔 그녀가 추천한 '해빙'이라는 책을 사기로 했다. 

 

 

"'서 있는 흰 소'로도 불리는 예순네 살의 톰은 근 이십년 동안 부족민들을 위해 영적인 의식을 주관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부족 전통에서는 죽음을 두려움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고 삶의 자연스러운 한 과정으로 본다고 했다.

"삶의 마지막에서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은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태어난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는 느낌을 두려워하죠. 죽음은 삶의 한 부분입니다. 하지만 죽음을 포용하려면, 삶의 목적을 이루었다는 느낌이 들어야 하죠"

 

일흔한 살의 엘사도 비슷한 말을 했다. 

"삶의 종착점에서 가장 두려운 것은 자신이 할 수도 있었던 일들을 다하지 못했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충실하게 살지 못했다는 느낌이요, 죽음에 대비하고 싶다면, 후회를 남기지 않을 만큼 충실하게 살아야 해요."

 

이런요지의 이야기들을 나는 여러 번 들었다. 

내가 만난 어른 중 임사 체험을 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아주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다. 모두들 죽음을 결코 불쾌하게 느끼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죽음의 순간이 다가왔을 때, 슬픔이나 두려움이 느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칠십대인 딕은 자신의 임사체험을 이렇게 이야기 했다. 

 

"오십대에 심장 치료를 받았어요. 그런데 검사시간이 길어지면서 심장이 멈추었어요. 제 영혼이 몸에서 빠져나가, 의사와 간호사들이 저를 소생시키려고 애쓰는 모습을 굽어보던 것이 지금도 생생해요. 그들이 '우리 곁에 있어요, 자 우리 곁에 있어야 해요'하고 외치는 소리도 들렸어요. 흰빛도 안 보이고 예수도 나타나지 않았지만, 기분은 좋았어요. 커다란고요가 느껴졌죠. 그 후로는 죽음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

 

엘사도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내가 어렸을 때 아끼던 인형이 그만 망가져버렸어요. 그래서 어머니에게 그 인형이  이제 천국으로 간 거냐고 물었죠. 그러자 어머니는 죽어도 천국 같은 데는 가지 않는다고, 죽으면 그냥 없어지는 것뿐이라고 솔직하게 말해줬어요. 우리 어머니에겐 종교가 없었거든요."

 

어른이 돼서 엘사는 깊은 신앙심을 키워나갔다. 신앙은 그녀의 삶에서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 하지만 그녀의 어머니는 끝내 종교를 갖지 않았다.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 가서 임종을 지켰죠. 구름이 잔뜩끼고 어두워서, 침실 블라인드를 다 열어놓고 있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하늘이 개면서 방 안으로 빛이 쏟아져 들어왔습니다. 어머니의 얼굴에도 외경과 평화가 피어났어요. 블라인드를 내렸으면 좋겠냐고 묻자, 어머니는 그러지 말라고 했어요. 그래서 무엇이 보이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너무 아름다운데, 설명할 수가 없구나. 너도 때가 되면 보게 될 거야.' 그러고 그 다음 날 돌아가셨습니다. "

엘사는 그 순간을 늘 가슴속에 간직하며 살았다. 그 순간이 다가오면 그녀도 어머니가 보았던 것을 보게되리라 믿으면서 말이다. p241~243

 

어떤 게 '잘 죽는' 것이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잘 죽는다는 것은 한탄하지 않고 계속 정신의 건강을 유지하는 겁니다. 그리고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죽음도 삶의 한 부분이라는 점을 가르쳐주는 거죠. 잘 죽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입니다. 죽는 모습 자체로 세상에 마지막으로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거죠."

평생 잘 죽는 준비를 하는 것이 우리의 삶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는 법을 배우기 전까지는 우아하게 죽지 못할것이다. 혹은 이 반대일 수도 있다. 어쨌든 유한성이라는 진리를 받아들이기 전에는 제대로 살 수 없다. 일흔 한 살의 론도 이런 말을 했다. 

"'인생의 황혼기'라는 마지막 시기에는 죽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삶을 놓아버리는 연습을 해야 하죠. 죽는 법을 터득하지 못하면, 사는 법도 알수 없어요. 삶과 죽음이 같은 것이라는 인식을 삶 속에 통합시켜야만, 제대로 사는 법을 터득할 수 있지요. 내일 죽을 수도, 이십년 후에 죽을 수도 있어요. 아무도 모르죠. 하지만 죽음을 삶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여야만, 살 수 있습니다. "

 

이처럼 나는 인생 선배들과의 만남을 통해서 지혜롭게 사는 것이야말로 죽음의 두려움을 이기는 해독제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또 잘 죽는 준비를 하고 뒤에 남겨진 사람들에게 희망이라는 마지막 선물을 주는 것이야말로 나이들어 가장 중요하게 해야 할 일의 하나라는 것도 깨달았다. 그리고 우리가 훨씬 큰 이야기의 한 부분이라는 것을 깨달으면 죽음도 한 층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

 구십대 중반의 화가 존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정말이지 하나의 점에 불과합니다. 훨씬 더 큰 어떤 것의 한 부분이지요. 죽음의 순간 우리는 훨씬 큰이야기와 다시 결합합니다. "

...

몇 해전 나는 존 밀턴이 <실락원>을 집필했다는 이탈리아의 어느 산 속에서 개천을 따라 도보여행을 했다. 개천을 따라 걸으며 세상에서 내가 있어야 할 자리에 대히 고민하고 있는데, 갑자기 강렬한 감정이 나를 엄습했다. 내가 훨씬 위대한 어떤 것의 한 부분이라는 느낌이 든것이다. 

나는 수천년동안 이런저런 모양으로 이 산을 흘러내렸을 개울가에 홀로 무릎을 꿇고 앉아, 차가운 물속에 두손을 담갔다. 순간 평생 나 자신을 이 개울과 동떨어진 존재로 , 생명과 창조의 그물망에서 빗겨나 있는 존재로 생각하며 살아왔지만 사실은 이 개울과, 살아있는 우주 전체와 한 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

죽음을 두려워하게 하는 것은 충만한 삶을 살지 못했다는 후회인 것이다. 

.."죽음에 대한 인식을 삶 속에 통합시키지 않으면 , 진정으로 충만하게 살 준비가 되었다고 할 수 없다. "는 론의 말도 이런 의미일 것이다. 죽음의 존재를 평화롭게 받아들이고, 죽음을 낯선 침략자가 아닌 인간 조건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여야만 비로소 진정한 평화를 발견할 수 있다. p249

 

"나무를 심기에 첫 번째로 가장 좋은 때는 이십년 전이지만, 두 번째로 가장 좋은 때는 오늘이랍니다. "p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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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살아야 하겠다. 언제든 죽는 것은 두렵지 않다. 누구나 거쳐야 할 생로병사.. 그러나 병사하고 싶지 않은 마음.. 

한 며칠 앓다가 그대로 깨끗하게 가는 삶을 꿈꾸어본다.

언제가 우리모두는 그렇게 특별한 존재가 아니며 우주의 아주 작은  먼지같은 존재... 이런말을 들은적이 있다. 늘 각별한 사람인 것 처럼 그러한 사람이 되고 싶어서 욕심을 부렸다.  어떤 공부를 하며 이 순간들을 걸어야 하는 가에 흔들리고 

있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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