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2015/1/14/수요일
정민의 世說新語
서소묵장(書巢墨莊)
송나라 때 육유(陸遊)가 자기 서재를 서소書巢, 즉 책둥지로 불렀다. 어떤 손님이 와서 물었다. “아니 멀쩡한 집에 살면서 둥지라니 웬 말입니까?” 육우가 대답했다. “당신이 내 방에 들어와 보지 못해서 그럴게요. 내 방에는 책이 책궤에 담겼거나 눈앞에 쌓였고 또 책상위에 가득 얹혀 있어 온통 책 뿐이라오. 내가 일상의 기거는 물론 아파 신음하거나 근심.한탄하는 속에서도 책과는 떨어져 본 적이 없소. 손님도 안 오고 처자는 아예 얼신도 않지. 바깥에서 천둥 번개가 쳐도 모른다네.
간혹 일어나려면 어지러이 쌓인 책이 에워싸고 있어서 움직일 수가 없고. 그러니 서소라 할밖에. 내 직접 보여드리리다.” 손님을 글고 서소로 가니 처음엔 들어갈 수가 없었고, 들어간 뒤에는 나올 수가 없었다. 손님이 걸껄웃고는 “책둥지가 맞소”하며 수긍했다. 육유의 ‘서소기(書巢記)’에 보인다.
오대(五代)의 맹경익 (孟景翌)은 일생 책만 읽었다. 문을 나설 때는 책 실은 수레를 따라오게 하면서 종일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당시 사람들이 그의 서재를 서굴(書窟), 즉 책동굴이라고 말했다 . 노나라 사람 조평(曹平)도 집에 책이 많았는데 없어질까 걱정해 돌을 쌓아 창고를 만들어서 책을 보관했다. 세상에서 이를 조시의 서창(書倉)곧 책창고라고 불렀다.
송나라 때 유식(劉式)이 세상을 뜨자 그 아내가 남편이 읽던 책 1000여 권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아들들에게 말했다. “이것을 네 아버지는 묵장()이라고 했다. 이제 너희에게 배움을 증식 시키는 도구로 준다.”묵장은 먹글시로 이루어진 집이란 의미다. 서책은 그 자체로 집 한 채이다. 청나라 때 이정원(李鼎員)과 호승공(胡承珙)등도 여기서 뜻을 취해 자기 호를 묵장이라 했다.
서재가 새 둥지나 짐승의 굴 같대서 서소와 서굴이다. 책창고와 먹물로 지었대서 서창과 묵장이다. 책 속에 묻혀 그들은 부지런히 읽고 또 읽어 큰 학자가 되었다. 남들 하는 걱정 다 하고 남 놀 때 놀면서 이룰 수 있는 큰일은 어디에도 없다. 공부는 단순 무식해야 한다. 문밖의 천둥번개 소리가 들리지 않아야 한다.
한양대 교수. 고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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