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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

다림영 2015. 1. 27.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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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녀는 동네 몇 안 되는 멋쟁이였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온갖 명품을 두르고도 인상이 여간 고약해 보이는 것이 아니다.

 

오늘은 또 어떤 기막힌 일이 생겼는지 붕어빵을 한 봉지를 들고 다 죽어가는 모습으로 나를 방문했다. 짙게 한 화장 때문에 주름진 얼굴이 더 드러나 보였다. 자신의 입으로 자신이 도깨비 같다고 하는데 정말 도깨비 같았다

 

그녀에게는 억울한 인생사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했다. 땅을 치고 울고 싶은 일들이 너무 많은 것이다.

한동네에 사는 딸은 며칠이 멀다하고 싸워 남보다도 못하고, 치과치료가 잘못되어 사년이 넘도록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있으며 또 춤을 좋아해서 그런 곳에 출입하다가 이상한 남자를 만나 사기를 당했다. 하나밖에 없는 여동생도 자신의 전화는 받지 않아 의절했다고 한다. 그녀의 입에선 보통 사람으로 이해하기 힘든 일들이 많고 거칠고 부정적인 언사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면서 도대체 되는 일이 없고 꼬인다는 것이다. 황폐한 생활은 마음을 지배하여 고스란히 얼굴에 드러나 있다. 처음 보는 사람도 인상을 좋게 보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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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을 목전에 두고 있는 여자가 스스로 그런 환경을 만들며 산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노인복지가 잘되어 약간의 회비만 내면 좋은 시설을 이용하며 웃으며 살 수 있을 터인데 그런 곳엔 걸음을 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녀에겐 마음을 비우는 수행이 절실해 보인다. 이런저런 얘기를 곁들여 좋은 곳에 발을 들여놓아야 좋은 일들이 일어나지 않겠느냐고 전해보지만 마음 문이 닫히니 귀가 열릴 리 만무하다.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많은 것을 포용하게 되고 적당히 포기하게도 되어 온화한 모습으로 변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아닌 모양이다.

 

  우걱우걱 제대로 씹지도 못한 채 대충 물에 넘기는 붕어빵이 점심이라고 한다. 그나마 위가 튼튼해서 다행이라며 웃는데 아름다워야 할 웃음조차 험상궂다. 영양가 있는 음식을 챙겨서 갈아 먹으라고 하니 붕어처럼 눈만 껌벅인다. 리어커에 폐지를 주워 내다 파는 노인보다 더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폐지를 내어놓고 부르면 환하게 다가와 인사하는 순한 얼굴이 얼마나 아름답게 보이는지 모른다.

 

얼마 전 친구와 인상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일하는 사람이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이를 보고 저 사람 좀 보세요. 인상이 너무 무서워요. 꼭 저승사자 같아요... 예전에도 그랬나?’ 해서 같이 보게 되었는데 정말 그렇더란 것이다. 알고 보니 그 사람의 고약한 행태가 이만저만 한 것이 아니었다. 그 후 자신의 마음도 넓히며 인상에 대해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나도 한동안 부대끼는 시간을 보냈다. 날마다 소용돌이치는 마음으로 몸은 말라가고 얼굴은 하염없이 늙어갔다. 뒤늦게 스님의 말씀을 만났다. 많은 이들이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하고 좋은 가족관계를 유지하고자 스님께 여쭈었다. 그들의 얘기는 나를 돌아볼 수 있게 했고 귀한 말씀은 각별한 가르침이 되었다. 상대방의 탓으로 돌리고 바르지 못했던 언사와 행동들이 나를 더 힘들게 했음을 깨닫게 되었다.

 

이제 고요한 마음이 되는 길을 혼자서도 잘 찾아갈 수 있다. 마음고생으로 부쩍 늙어 보이지만 내면의 평안을 찾을 수 있다면 겉모습이야 그대로 드러나게 될 것이다. 화도 복도 자신이 만드는 것이다. 흙탕물에서 옷이 누렇게 물들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욕심이다. 그녀가 고운 사람으로 늙어 갈 수 있는 길을 스스로 찾을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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