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만족滿足

다림영 2015. 1. 28.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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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천원이나 되다니? 입이 벌어져 다물어지지 않았다. 금세 신이 나서 가게로 달려갔다. 주인아주머니는 한번 더 해 보세요, 아침부터 기분 좋겠다!’ 하며 함께 즐거워했다.

정말 기분이 날아갈 듯 했다. 생전 그렇게 되어 본 적이 없었다.

밤새 돌아가신 친정아버지가 다녀가셨다. 아버지의 다리를 주물러드리는 꿈이었다. 출근하기 전부터 오늘은 복권을 사리라 다짐하며 경쾌한 걸음으로 나섰다.

사 천원은 이 천원으로, 이 천원은 혹시나 하는 생각에 가슴을 쥐게 했다. ‘이란 숫자에 눈을 고정하고 동전을 힘껏 쥐었다. 그러나 결국 모두 휴지통으로 버려지게 되었다.

사 천원으로 맛난 것으로 바꿔 요기나 하면 그것이 행운인데 하는 아쉬움이 일었다.

복권에 당첨된 이들의 꿈은 대부분 조상 꿈이 많았다고 들었다. 생전 보이지 않던 아버지가 꿈에 나타나니 헛 마음을 먹었다. 허탈했지만 웃음이 새어나왔다. 하루상간에 부자가 되어 장학금 증서를 나눠주던 빛나는 내 모습을 연신 그렸으니 말이다.

 

책을 읽다가 만족 이란 단어가 나왔다. 별스럽게 보지 않던 단어 滿足은 불현듯 나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늘 허덕이니 글자를 유심히 들여다볼 여유를 지니지 못했다. 만족의 滿字는 찰만(滿)에 발족()()였다. 滿足이란 발목까지 차는 정도라는 것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만족은 그야말로 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겸허한 뜻을 품고 있는 단어였다.

승승장구하다가 눈이 멀고 귀까지 닫혀 발목은 고사하고 가슴을 지나 목 울대를 넘나드는 욕심으로 인생을 망치게 되는 경우를 종종 보아왔다. 나 또한 자고나면 솟아나는 욕심으로 하루라도 만족한 날이 있었던가?

 

가끔 복권의 꿈을 꾸지 않는 이가 몇이나 있을까만 아침에 품던 헛된 망상은 종이 접듯 접고 접는다.

이 순간에도 죽어가는 영혼들이 있고 병상으로 향하는 육신들의 이야기를 보도를 통해 생생히 듣는다. 하루가 멀다 하고 사건들이 일어나고 인생은 한치 앞을 알 수가 없는 것이다. 멀쩡한 몸으로 특별한 탈 없이 오늘을 열고 일터에 앉아 책까지 들여다 보고 있다. 고난의 깊은 골짜기를 간신히 벗어나 역경의 고개를 숨차게 오르는 시간들이지만 모두 살아있어 느낄 수 있는 것, 어찌 족하지 않을 것인가. 눈부신 햇살이 보석처럼 창가로 쏟아져 내린다. 차 한 잔을 들고 창가에 기대니 난롯불을 쬐는 듯 따뜻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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