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4년 10월 9일 데스크에서 이인열 산업1부차장 얼마 전 전국공무원노조가 연금 개혁공청회를 무산시키는 장면이 대부분 언론에 크게 실렸다. 그중 눈길을 그는 사진이 하나 있었다. ‘결국 공무원도 노후에 파지나 주우라는 겁니까.’ 피켓에 적힌 이 문구에 대해 말꼬리를 잡자는 건 아니다. 다만 연간 3조~4조원씩 내는 공무원연금 적자를 국민세금으로 메워줘야 하는 현실을 좀 보완해보자는 것을 ‘파지 줍는 생활을 강요한다’고 과장, 왜곡하는 상투적인 수법이 싫엇고, 더 거슬렸던 것은 ‘결국 공무원도’ 라는 표현이었다. 다른 사람이 파지 줍는 것과 공무원이 파지 줍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이야기라는 뉘앙스가 싫었다. 아마 자신들의 기득권과 특권을 지키고 싶다는 속내가 드러난 것이라고 생각된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국회의원과 술을 마신 뒤 대리기사를 폭행한 사건도 그렇다. 거기엔 우리 사회의 또 다른 특권 의식이 담겨 있다. 그들은 ‘더 이상 못 기다리겠다’는 대리기사에게 ‘의원님에게 감히...’라는 식으로 윽박질렀다고 한다. 일부 유족 대표들은 방송에서도 존칭없이 대통령 이름을 막 부르는 ‘무(無)특권주의자’의 모습을 보였기에 더 놀라웠다. 아마도 ‘우리편’의 특권과 ‘적(敵)’의 특권이 다른 모양이다. 민주화 이후 우리 사회는 ‘특권(特權)과의 전쟁’을 이어가고 있다. 특권은 사라져야 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의 특권 논란을 보면 두 가지 ‘특권’이 존재하는 듯하다. 남의 특권과 나의 특권이다. 남의 특권은 당장 없애야 하겠지만 나의 특권은 좀 다른 얘기인 것 같다. 공무원노조는 자신들의 특권을 특권이라 부르지 않은 채 지키려 한다. 일부 세월호 유가족은 자신들 편에 선 특권은 철저히 지켜주고 싶어 한다. 지난달 방한한 세계 최대 곡물회사 카길의 그렉 페이지 회장을 인터뷰했을 때 흥미로운 ‘특권’을 보았다. 150년 역사에 연 매출 142조원인 카길의 회장은 전용기를 두고 왔느냐는 질문에 그는 “혼자 움직이는데 2만갤런의 기름을 쓰는 것은 낭비”라고 말했다. 2004년 가을 페이지 회장은 네덜란드에서 카길 수뇌부 회의를 마친 뒤 귀국길에 혼자 비행기 일반석을 탔다. 그는 “도착 다음 날이 휴일이라 푹 쉴 수 있는데 굳이 2~3배 비싼 비즈니스석을 탈 이유가 있느냐”고 말했다. 이어 “귀국 직후 바로 일할 사람, 7시간 이상 비행기를 장시간 탈 사람은 규정에 따라 반드시 비즈니스석 이상을 타도록 한다”고 말했다. 그와의 인터뷰는 공사 중인 공장 2층 회의실에서 탁자 두 개를 붙여 놓고 진행됐다. 이렇게 준비한 카길코리아 직원들만큼이나 그런 상황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페이지 회장이 놀라웠다. 늘 전용기 타고, 비즈니스석 타는 회장의 ‘일탈’한번에 뭐 그리 대단한 의미 부여를 하느냐고 할지 모르겠다. 진짜 특권과의 싸움은 남의 특권이 아닌 자신의 특권을 내려놓는데서 시작한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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