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9월 10일
정민의 世說新語
과거에 응시했던 수험생이 낙방하자 투덜대며 말했다. “시험장에서 좋은 글은 뽑히질 않고, 뽑힌 글은 좋지가 않더군.” 듣던 사람이 대답했다. “시험관이란 두 눈을 갖춘 자라 글이 좋고 나븐지는 ,한 번만 봐도 대번에 알아 속일 수가 없다네.
그래서 문형(文衡)이라 하지. 대개 동시에 합격한 사람중에는 그 자신이 덕을 쌓아 저승에 미리 기록되어 있는 경우도 있고, 조상이 덕을 지녀 후세에 보답을 받는 수도 있네. 그 사람의 글이 다 훌륭한 것은 아니지만 진실로 귀신이 도움을 더해주고자 하는 바일세. 이에 시관(試官)이 덩달아 이를 거두게 되지. 그래서 선비 된 사람은 글을 닦아 양지(陽贄)로 삼고, 마음을 닦아 명계(冥契)로 삼는다네.”
양지(陽贄)는 겉으로 드러난 보답을 말하고, 명계(冥契)는 안으로 감춰진 인연이다. 그러니까 ‘명계양지冥契陽贄)’는 ‘음덕양보(陰德陽報)’와 같은 말이다. 내가 보이지 않게 덕업을 쌓으면 하늘은 드러난 보답으로 되돌려 준다는 의미다.
당나라 때 당구(唐衢)는 불우한 시인이었다. 시험을 보는 족족 떨어졌다. 그는 낙담하지 않고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다. ‘읽으면 읽을수록 합격 못하니, 난들 천명을 어찌하겠나. 떨어지면 질수록 더욱 읽으니, 천명인들 나를 어찌하리오(讀讀愈不中, 唐衢如命何,愈不中愈讀,命如唐衢何)’ 운명아 비켜라! 내가 간다. 그는 끝내 급제의 기쁨을 누리지는 못했지만 백거이(白居易)가 그의 불운을 슬퍼하는 시를 남기고 있을 정도로 당대에 이름이 높았다. 청나라 왕지부(王之부)의 ‘언행휘찬(言行彙纂)’에 나온다.
‘송천필담(松泉筆談)’에는 위 일화와 함께 뜻하지 않게 급제의 행운을 연거푸 거머쥔 박흥원(朴興源)등의 예화를 들었다. 쌍은 원래 공평치가 않다. 납득 못할 불운 앞에 투덜대지 말고 명계 즉 음덕을 쌓으려는 도타운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예기치 않은 행운 같은 양지의 보답은 내 소관이 아닌 하늘에 달린 일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습관적으로 징징대는 버릇부터 다잡아야겠다.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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