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9월 17일
惺全스님. 남해 염불암 주지
나는 달빛 감상을 즐긴다. 달빛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저 평화롭기 때문이다. 번잡한 세상의 다툼이 저 달빛 속에는 없다. 오직 잔잔한 추억과 삶의 고운 이야기들만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탁발(托鉢)을 나가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그대들이 음식을 얻기 위해 재가자(在家者)의 집에 가거든 마땅히 달과 같은 얼굴을 하고 가라. 마하가섭( 摩詞迦葉 )은 달과 같이 몸과 마음을 단정히 하고 처음 출가한 수행자처럼 수줍고 겸손하고 부드러우며 교만하지 않은 얼굴로 재가를 찾아간다.”
탁발을 나가는 부처님의 빼어난 제자인 가섭의 표정이 그려진다. 달과 같은 얼굴을 하고 발우(鉢盂)를 들고 거리를 지날 때 어느 누가 가섭의 빈 발우에 공양물을 담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내 발우에 밥을 담아 달라고 소리치는 것보다 달 같은 표정 하나가 사람들의 마음을 더 크게 움질일 수 있다는 것을 가섭의 얼굴표정을 그려보는 것만으로도 알 수 있다.
수행자라면 누구나 가섭과 같은 얼굴 표정을 꿈꾼다. 하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언젠가 절 아래 마을 사람과 언성을 높인 일이 있었다. 물 때문이었다. 절에서 내려가는 계곡물을 아랫마을에서는 식수로 사용하고 있엇다. 그런데 절에 온 아이들이 여름날 덥다고 그 계곡에서 물장난을 한 모양이었다. 그 모습을 공교롭게도 아랫마을 사람이 본 것이다. 그는 씩씩거리며 달려와 따지듯이 나를 몰아쳤다. 절에서 애들도 단속하지 못하면서 뭐하는 짓이냐고, 가만히 듣고 있다보니 화가 났다. 나도 정색을 하고 따지듯이 물었다.
“이 산이 누구 산입니까? 절 소유의 산 아닌가요? 또 이 물은 절의 산에서 났으니 절이 주인 아닌가요? 아니 물값을 한 번이라도 내고 먹은 적이 있나요? 우리가 물값을 달라고 한 적이 있나요?”
기세등등하던 그 사람은 이내 풀이 죽고야 말았다. 워낙 내가 핏대를 세워가며 소리를 치니까 그랬던 것 같다. 그러다 그 사람이 마지막 반격을 가했다. 아니 무슨 스님이 그리 핏대를 세우며 이야기 하세요.점잖지 못하게.”
나는 그만 입을 닫고 말았다. 스님이 뭘 그러느냐는 말에 나는 더 이상 할 말을 찾을 수 없었다. 마을사람이 내려가고 나는 장면을 하나하나 되돌려보았다. 스님의 모습이 아니었다. 스님이 어떻게 언성을 높여가며 싸울 수 있단 말인가. 내가 봐도 부끄러운 모습이었다. 마을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아름다운 스님의 모습을 나는 그만 깨어버리고 만 것이다. 그가 앞으로 스님들을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핏대를 올리고 소리나 지르는 사람으로 볼 것이 아닌가. 따지고 보면 나는 수많은 스님에게 죄를 지은 셈이었다.
좋지 않은 기억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 법이다. 내게도 그런 기억이 있다. 갓 출가하여 해인사 강원에서 공부할 때였다. 해인사 강원은 쉽게 말해서 1학년부터 4학년까지 있는데 1학년에서 3학년까지는 한방에서 같이 공부하고 잠을 잤다. 그때 그 방에는 80명 가까이 함께 생활 하고 있었다. 함께 자그마한 경상()을 앞에 놓고 각자가 배우고 있는 불경을 읽을 때면 참 멋있다는 생각이 들고는 했다.
목청껏 경을 읽어야 목청이 터져서 다음에 염불도 멋있게 할 수 있다는 말을 선배들로부터 들은 터라 경을 읽는 시간이 되면 목청껏 경을 읽고는 하였다.
하지만 경을 읽다보면 졸리는 순간이 있었다. 대개는 그냥 넘어가는데 그날은 윗반스님에게 호출을 당하고야 말았다. 무서운 스님이었다. 나는 스님의 경상 앞에 꿇어앉아 장광설을 들어야 했다. 승랍()이라고 해야 고작 1년밖에 차이 나지 않았지만 해인사 강원에서 그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만큼이나 큰 것이었다. 해인사의 규율은 육군사관학교보다 더 엄격했다.
스님의 경책(警責)을 듣던 중에 다리가 아파 몸을 비틀다가 그 윗반 스님의 눈과 마주치게 되었다. 순간 스님은 단호하고 냉정하게 말했다. “눈 깔아요.” 순간 예리한 칼날이 가슴을 베고 지나가는 것 같았다.
그것은 내가 출가해서 들어본 말 중에 가장 비정한 말이었다. 얼결에 눈은 내리깔았지만 마음은 더욱 꼿꼿하게 적의(敵意)를 품고 고개를 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아직도 그때 그 스님과의 일을 기억한다. 나무 기둥에 박힌 못을 뽑아도 기둥에 못 자국이 남듯이 상처난 가슴의 흔적은 용서를 해도 남게 되어 있다. 시간이 지나서 그 스님을 우연히 한두 번 만났지만 나는 그를 제대로 바라보지 않았다.그의 앞에서는 항상 눈을 내리깔아야 했으니까.
말과 표정으로 우리는 사랑하게 되고 또한 그것으로 인해 미워하고 다투게 된다. 그래서 문수보살 게송(偈頌)에도 있지 않은가. “성 안 내는 그 얼굴이 참다운 공양구(供養具)요, 부드러운 말 한 마디 미묘한 향(香)이로세.” 성 안 내는 표정과 부드러운 말은 얼마나 큰 수행자의 가치인가. 달빛 아래서 나는 가섭의 달과 같은 얼굴 표정을 자꾸만 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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