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7월23일 수요일
정민의 世設新語
요생행면 僥生倖免 )
박제가의 처남 이몽직(李夢直)은 충무공의 후예였다. 하루는 남산에 활을 쏘러 갔다가 잘못 날아든 화살에 맞아 절명했다. 박지원(朴趾源1737~1805)은 ‘이몽직애사(李夢直 哀辭)에서 ’대저 사람이 하루를 살아간다는 것은 요행이라고 말할 수 있다( 夫人日之生,可謂倖矣)’고 썼다.
한 관상쟁이가 어느 여자에게 말했다. “당신은 쇠불에 받혀 죽을 상이요. 외양간 근처도 가지 마시오” 그 뒤 여자가 방안에서 귀이개로 귀지를 파고 있는데 갑자기 밖에서 방문을 확 밀치는 통에 귀이개가 귀를 찔러 죽었다.
살펴보니 귀이개는 쇠뿔을 깎아 만든 것이었다. 같은 글에 나온다. 해괴하고 알 수 없는 일들이 아침저녁으로 일어난다. 정상 운항하던 여객기가 미사일에 격추되고, 하늘에서 강철 화살이 비오듯 쏟아진다. 세상 사는 일이 내 의지가 아니다.
박지원은 도 ‘이존당기(以存堂記)’에서 술로 인한 잦은 말실수로 비방이 높아지자 방에 들어가 나오지 않겠다고 선언한 장중거(張仲擧)란 인물의 일화를 소개하며 이렇게 섰다. ‘사해가 저처럼 크다 해도 뭇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거의 발 들일 데조차 없다. 하루 중에도 그 보고 듣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을 증험해보니 요행으로 살고 요행으로 면하지 ()않음이 없다.’ 방에 틀어박혀 있는다고 쇠불의 횡액을 면할 수는 없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어찌할가? 이규보(李奎報1168~1241)의 ‘이불 속에서 세상의 웃을 만한 일들을 떠올리며 혼자 낄낄댄 사연이다. 그중 네 번째는 이렇다. ’웃는 중에 네 번째는 바로 내 자신이니, 세상살이 잘못 없음 요행일 뿐이라네. 곧고 모나 모자란 것 모르는 이 없건만, 원만해서 이 자리에 올랐다고 말하누나. (笑中第四是矛身,沚世無差僥倖耳,直方迂闊人皆知,自謂能圓登此位. )’
세상이 험해 요행 아닌 것이 없지만, 어찌하겠는가? 밖에서 오는 환난이야 어찌 해볼 도리가 없으니 그래도 우직하게 내 마음자리를 돌아보며 뚜벅뚜벅 걸어갈 밖에. 한양대 교수. 고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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