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만권을 읽으면..

올바름이 이치입니까/이권효/새문사

다림영 2014. 7. 18.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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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로 읽는 퇴계언행 100

 

가 합쳐서 생긴 말이다. 은 본래 (구슬옥)’자였다. 리는 ()’’(,토지)‘를 합친 말이다. ’는 구슬을 결 따라 반듯하게 다듬는다는 뜻에서 다스린다로 의미가 확장됐다. 단단한 구슬을 보기 좋게 다듬기 위해서는 아무렇게나 해서는 안되고 결을 따라 자연스럽게 해야 가치 있는 옥구슬을 만들 수 있다. 이처럼 자연스러우면서도 가치 있는 방법이나 원리에 도달하는 과정과 결과가 이치()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이치는 마땅히(자연스럽게) 가야할 길이라는 ()‘와 통한다

 

공부하는 사람은 마땅히 굳고 굳세어야 비로소 공부에 머물러 지켜낼 수 있습니다.

 

옛날에 공부하던 사람들도 그릇이나 책상, 지팡이 같은데 교훈을 새기곤 했습니다. 그러나 마음에 경계하고 반성함이 없다면 그런 좌우명을 벽에 가득 붙여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논어>자한 편에서 공자는 내가 아는게 있는가? 아는 것이 없다(吾有知乎哉 無知也)”라고 했다. 이런 태도 없이 겉치레로 공부하는 것을 퇴계도 매우 경계했다.

 

 

새로 배우는 것이 있으면 반드시 이전에 읽은 것을 되풀이 하여, 한 권을 마치면 한 권을 거의 외우고 두 권을 마치면 두 권을 외우다시피 했다. 이렇게 하기를 오래 하니 점점 처음과는 달라져 세 번째 네 번째 책을 읽을 때는 저절로 이해되는 경우가 있었다.

 

낮에 읽은 것은 밤에 반드시 되풀이해서 생각하면서 풀어내야 합니다.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을 함께 아우르며 나아가면 문이 열리고 점점 트여 막힘이 없게 됩니다.

..헌문 편에서는 공자는 말을 부끄럽지 않게 하는 것은 실천하기 어렵다.(其言之不?,則爲之也難)” 또는 군자는 자신의 말이 실천보다 넘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긴다.(君子恥其言而過其行.)

 

 

공부를 시작하는 단계에서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을 잘 돌아보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중단되고 잘 안될 때가 있지만 노력을 쉬지 않으면 점점 익숙해지고, 오래하다 보면 늘 자신을 돌아보는 마음가짐이 생기고 흐트러지지 않게 됩니다.

 

군자는 자기 자신의 수양을 위해서 공부할 뿐입니다.

..위령공 편에서 공자가 군자는 (군자다움을 추구하는 사람은)자신의 능력이 없지 않을가 걱정 할 분 다른 사람이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은 하지 않는다.(君子病無能焉,不病人之不己知也)"고 한 말도 마찬가지다.

 

 

 

공부를 하는 까닭은 마음을 바르게 하기 위함입니다.

 

내 생각은 이러한데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자기 의견만 고집하고 남의 의견을 무시하는 행태는 배우는 사람들의 큰 문제입니다. 세상의 이치가 한없이 복잡한데 어떻게 자기만 옳고 남은 틀리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책 읽는데 어찌 장소가 따로 있겠는가.

시골에 있든 서울에 있든 오직 뜻을 세우는 게 중요하다.

날마다 충실히 공부해야 하며 멍하게 세월만 흘려보내서는 안 된다.

..

<논어> 이인 편에서 공부하는 사람(선비)의 자세를 이렇게 말한다. “공부하는 사람이 마땅히 가야 할 길에 뜻을 두면서도 입고 먹는 게 누추하다고 부끄러워 한다면 함께 의논하기에는 부족하다.(士志於道,而恥惡衣惡食者,未足與議也)

헌문편에서는 공부한다는 사람이 생활의 안락함부터 신경쓰면 공부하는 사람이 되기에는 부족하다.(士而懷居,不足以爲士矣)

 

몸으로 실천하지 않고 그저 입으로만 떠드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중용>의 핵심으로서 최선을 다한다는 듯인 ‘ 誠()’(言)을 이룸(成)’이다. 사람의 마음이나 뜻은 말로 드러나고, 행동이나 실천은 곧 말을 이루는 것이다. 말씀의 수준은 곧 사람됨의 수준이다.

 

 

처음에는 어렵겠지만 결국 공부의 성과를 얻게 됩니다. 소홀히 하지 말고 그렇다고 억지로 하려고 해서도 안됩니다.

<열자(列子)>에 나오는 우공이산(愚公移山)’이야기와 다를 바 없다. 자신의 주체적 노력이 공부하는 자세의 대들보가 돼야 한다는 뜻이다.

 

 

이치가 매우 실질적인 것처럼 보이더라도 이리저리 비추고 살펴보지 않으면 그 이치가 눈 앞에 있어도 제대로 알기 어렵습니다.

이 내용은 <논어>헌문편에 나오는 공자의 말 그대로이다. 다른 사람이 나를 속이지 낳을까 미리 의심하지 말고, 또 근거 없이 다른 사람이 솔직하지 못할 거라 미리 추측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상황을 정확하게 빨리 아는 것이 현명하다. (不逆詐,不億不信.抑亦先覺者,是賢乎)

 

 

 

 

공부라는 것은 사람이 사는 도리를 밝히고 바른 삶을 위해 힘을 쏟는데 있습니다.

 

바른 길이란 일상생활에 스며 있습니다. 가는 곳마다 따라다니지 않는 곳이 없으므로 올바름의 이치는 어디에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디선들 이를 소홀히 하겠습니까. 잠깐이라도 바름에 대한 생각을 멈출 수 없고 이치를 떠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어느 때라도 공부를 멈출 수 있겠습니까.

 

옛사람들이 말을 함부로 하지 않은 이유는 실천이 따르지 못할까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이제 평소 벗들과 편지를 주고 받으며 공부를 해온 것들을 이런 말로 기록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그래도 말이 앞서는 것 같아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하겠다.

 

마음의 근심걱정은 이치를 철저하게 살피지 못하고 쓸데없이 따지면서 억지로 찾으려 하기 때문에 생깁니다. 또 마음가짐이 어두워 싹을 억지로 뽑아올려 빨리 자라게 하려는 듯하면서 자기도 모르게 마음을 괴롭히고 기운을 많이 낭비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런 것들은 공부를 처음할 때 흔히 나타나는 어려움입니다.

 

자신의 마음을 닦는 공부는 평생토록 해야 할 일이어서 비록 안자나 증자 정도가 되더라도 다 마쳤다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급히 이루기를 바라기 때문에 옛것을 차분히 익힐 겨를이 없으며 읽는 글 또한 세심히 살피면서 익숙해지도록 하기도 어렵습니다. 마음은 늘 바쁘고 급하게 쫓기는 것과 같아 여러 가지 글을 넓게 읽고 싶어도 소홀히 하고 잊어버리게 됩니다. 그렇게 하면 나중에는 글을 전혀 읽지도 않은 사람과 다를 바 없게 됩니다. 요즘 공부하는 사람들을 보면 이런 상태에 머물러 있어 공부에 성취가 있다고 하더라도 보잘것없어 세월만 보낼 뿐입니다.

 

이치와 기운이 모여 마음이 됩니다. 이치가 중심이 되어 기운을 다스리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생각도 한결같아져 잡생각도 없어집니다.

 

물에 비유해 말하면 고여 있는 것은 본성이며 흐르는 것은 인정입니다. 고인 물이 나가 흐름이 되고 흐름은 고인데서 나옵니다. 그러니 고인 물과 흐르는 물은 둘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말과 행동을 늘 겸손하고 삼가서 모르는 것을 아는 체 하지말라. 마음을 굳게 잡아 흐트러지지 않도록 해라. 거만하지 않도록 하고 말도 많이 하지말라. 경계하고 경계해야 한다.

 

 

사람의 마음이란 매우 위태로운 것이니 진실된 자세로 경계해야 한다.

 

배는 마땅히 물 위를 가야 하며 수레는 당연히 길 위를 가야 합니다.

 

하늘은 사사로운 욕심이 없어 기운이 잘 흐르지만 한순간도 그치지 않습니다. 사람도 이처럼 노력하되 욕심을 부리지 않고 서둘러 억지를 부리려는 마음의 병을 버려야 합니다. 그러면 본래의 모습이 나타나고 오묘한 경지가 드러나 하늘처럼 잠시도 중단되는 일이 없게 될 것입니다.

 

생각을 한결같이 하면서 몸으로 실천하면 현명한 사람을 넘어 성인도 될 수 있습니다.

 

이치에 밝아져 두루 통하는 성인됨을 추구하는 공부는 정신이 늘 깨어있는 상태가 되도록 자신을 가꾸는데 있습니다. 이를 깊이 몸으로 익히면 자신이 세상만물과 한 몸처럼 될 수 있습니다.

 

마음이란 쟁반의 물을 엎지르지 않는 것보다 다루기 어렵습니다. 순수하고 착함은 바람 앞에 촛불보다 보살피기 어렵습니다.

 

마음은 하늘의 임금같은 것입니다. 뜻은 마음에서 생깁니다. 먼저 마음을 성실하게 하면서 뜻을 나타내어야 온갖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습니다.

 

마음속에 있는 것과 바깥의 사물에 있는 것은 본래 두가지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하게 아는 것이 참으로 아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대학>마음에 없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는다.(心不在焉,視而不見)"는 말도 같은 맥락이다.

 

 

 

자기에는 이익이 되도록 하면서 남은 해롭게 하는 마음은 성인인 순임금과 큰 도둑인 도척을 구분하는 기준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빨리 정신을 차려 의로움과 이익이라는 두 글자로써 살펴보고 판단해야 소인을 벗어나 군자가 될 수 있습니다.

 

참으로 내 마음에 배움을 향한 깨어있는 태도와 지혜가 가득한 상태가 되면 산이나 물을 즐기는 것을 따로 구하지 않아도 그런 즐거움은 저절로 자신에게 생길 것입니다.

 

일이란 좋든 나쁘든, 크든 작든 마음에 집착하도록 두어서는 안됩니다. 둔다는 말은 얽매인다는 뜻입니다. 미리 효과를 예상하거나 억지로 만들려고 하거나 결과를 생각하면서 이익을 계산하는 해로움은 이런 집착에서 생기므로 마음에 두어서는 안됩니다.

 

가만히 있을 때는 세상이치의 근본을 기르고 행동할 때에는 욕심이 생기려는 싹을 잘라버려야 합니다. 이런 참다운 공부가 쌓이고 쌓이도록 노력하면 순수하게 익숙해지는 단계에 이를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가만히 있을 때는 세상이 텅 빈 듯 차분해지고 행동할 때는 어긋남이 없게 됩니다. 일상의 여러 가지 일이 생기고 사라져도 마음은 확고하고 침착해 온갖 생각이 근심거리가 될 수 없습니다.

 

만약 마음의 중심을 잡지 못하고 일정하지 않아 사물을 따라서 날아가고 달려간다면 하늘을 쳐다보며 날아가는 새를 잡으려는 것과 같습니다. 이는 마치 몸은 여기 있으면서 마음은 저쪽으로 달려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씀은 모든 일의 뿌리입니다. 본성은 모든 순수함의 근원이므로 옛날 뛰어난 학자들은 흐트러지는 마음을 거두고 덕성을 키우는 것을 공부의 시작으로 삼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근본을 성취하는 것이며 바른 길을 이루고 해야 할 일을 넓히는 토대라고 생각합니다. 공부하는 요점을 어찌 다른 데서 구하겠습니까. 그것이 바로 마음을 집중해 흐트러지지 않도록 하고 두려운 마음으로 진지하게 스스로 엄격해지는 것입니다.

 

 

 

말할 때도 마땅히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고 행동할 때도 가만히 있을 때도 공경스러워야 합니다. 잠깐이라도 이런 태도는 버릴 수 없는 것입니다.

 

퇴계의 삶과 사상을 관통하는 핵심은 ‘ ()’이라는 한 글자로 요약할 수 있다. 이 말은 일상에서 말하고 행동하는 순간 순간 의 태도를 잃지 않아야 한다는 뜻이다. <논어>에도 ‘ ’20여차례 나오고 송대 성리유학에서도 은 수양법으로 매우 중시됐으므로 퇴계가 특별한 의미를 처음으로 부여한 것은 아니다.

 

공경하는 자세를 잃지 않으면 마음은 한결같아집니다. 마음이 한결같아지면 생각은 저절로 편안해질 것입니다.

 

욕심으로 흐려졌을 때 공경하는 마음을 가지면 곧 고요한 상태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옛날에 공부하는 사람들은 공경하는 마음을 아교같은 접착제에 비유했습니다.

 

혼자 도산서당 완락재에서 자다 한밤중에 창을 열고 앉았더니 달은 밝고 별은 깨끗해 강산은 고요히 텅빈듯했다. 세상이 열리기 이전의 큰 덩어리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자가 시냇가에서 흐르는 물을 보며 말했다. 흘러감이 마치 이 물과 같구나. 밤낮으로 쉬지 않는구나.( 子在川上曰,逝如斯夫,不舍晝夜.)” <논어> 자한편에 나오는 공자의 심정이 도산의 밤을 마주한 퇴계의 심정과 비슷할까?

 

 

공경하는 마음을 지킨다는 것은 생각할 때나 배울 때, 행동하거나 가만히 있을 때, 겉과 속, 드러나고 숨겨진 것을 한결같도록 만드는 바른 길입니다.

 

공경스러움이 몸의 중심이 되도록 하십시오. 일상의 모든 일에 대해 왜 그런지 또 마땅히 어떻게 돼야 바람직한지 깊이 생각하십시오. 이를 마음 속 깊이 반복해서 헤아리면 이치가 몸에 스며들어 마침내 높은 차원에 도달 할 수 있습니다.

 

<대학>의 첫부분에 지선에 머문다.( 止於至善)고 했는데, 퇴계의 이 말과 통한다. ‘ 止()’최선의 상태에 머문다는 뜻이다. ‘일상에서 최선을 다하면서 지나치거나 모자라지 않는 중용의 실천은 어저다 한번 하고 그치는 게 아니다. 일마다 순간순간 그런 상태를 이어가는 상태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고 머물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대학>의 저자도 퇴계도 그렇게 요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공부는 무슨 일이든 어떤 때이든, 뜻이 있든 없든 오직 공경스러움을 중심으로 삼아야 합니다. 움직일 때나 가만히 있을 때 이런 태도를 잃지 않아야 그릇된 생각이 돋아나지 않습니다. 그렇게 되면 마음은 텅빈듯하면서도 밝아져 본성은 깊고 순수하게 됩니다. 이런 저런 생각이 나타날 대도 의로움과 이치가 뚜렷하게 드러나 욕심은 물러나고 근심은 점점 줄어듭니다. 이런 과정이 쌓이고 쌓이면 비로소 공부에 성취가 생기는데 이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사물의 이치를 근본에서 말한다면 지극히 순수하고 착합니다. 선이 있으면 악이 있고 옳은 것이 있으면 그른 것이 있는 것은 본래 그러합니다. 일을 바르게 하기 위해 이치를 헤아리는 이유는 옳고 그른 것과 선과 악을 살펴 분별하는 힘을 기르기 위해서입니다.

 

자신의 허물을 듣는 것을 기뻐하고 좋은 일을 선택해 따르기를 즐거워하면서 진실로 끈기있게 노력하면 바른 길을 이루고 덕을 세울 수 있게 됩니다. 그러면 공부가 높아지고 일은 저절로 넓어집니다.

 

매화 화분에 물을...

 

퇴계가 숨진 날 아침에 마지막으로 한 말이다. 제자들에게 일으켜 달라고 한 뒤 앉은 채 숨졌다. 숨지기 5일 전에는 제자들에게 매화형에게 누추한 모습을 보이면 내 마음이 편하지 못하다.(於梅兄不潔,心自末安耳. )”며 매화 화분을 다른 곳으로 옮기라고 했다. 천원 권 지폐에도 매화가 그려져 있는데 퇴계는 사군자 중에서도 매화를 특히 좋아했다. 추위를 이겨내고 이른 봄에 먼저 꽃을 피우는 모습에서 군자다움을 느꼈기 때문이리라. 군자다움을 한결같은 공경스러움으로 추구했던 퇴계로서는 비록 식물이지만 매화를 군자로 예의바르게 마주했다.

 

퇴계는 죽음을 예감했는지 무덤 앞에 세울 돌(비석은 세우지 말고 작은 돌만 세우고 일생을 간략하게 적도록 유언했다)에 쓸 글을 미리 써뒀는데 마지막구절은 이렇다. ‘근심속에 즐거움이 있고, 즐거움 속에 근심이 있구나. 천지변화를 따라 돌아감을 이루니 무엇을 다시 구하겠는가.(憂中有樂,樂中有憂,乘化歸盡,復何求兮.) 이 말에서 느껴지는 퇴계의 심정은 <주역>’계사 하전에서 공자가 천하가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근심하겠는가. 천하가 돌아가는 뿌리는 같지만 거기 이르는 길은 다르니, 천지변화에 이르는 큰 길은 하나지만 사람들의 생각에는 온갖 작은 길이 있구나. 이러니 천하가 무엇을 근심하겠는가.(天下何思何處,天下同歸而殊 塗,一致而百慮,天下何思何慮.)”라고 한 말과 통한다.

 

<퇴계의 사람됨> 중에서

 

선생은 겸허함을 덕으로 삼아 조금도 거만한 마음이 없었다. 바른 길을 이미 분명하게 보고서도 마치 보지 못한 듯 절실히 추구했다. 덕이 이미 높았지만 모자라는 듯 여겼다. 나아지려는 마음은 죽을때까지 하루와 같았다.(김성일)

선생은 욕심을 이기고 마음을 기르는 공부가 어떤 일을 당해도 여유를 가지는 차원에 이르렀다. 급하고 갑작스러운 때에도 차분하고 뜻은 고요해 당황스러워하는 모습이 없었다.(김성일)

 

자기 몸 닦기는 급히 하면서도 다른 사람의 허물은 말하지 않고, 남을 따르기에 과감해서 자기의 모자람을 숨기지 않았다. 사람 대하기를 화합하는 분위기로 하니 사람들이 저절로 공경하였다. 아랫사람 대하기를 너그럽게 하니 아랫사람들도 언행을 조심했다.(우성전)

 

겸허하게 남에게 묻기를 좋아해서 자기 고집을 버리고 남의 의견을 따를 줄 알았다. 남이 착한 일을 하였을 때는 자기 일처럼 기뻐하고, 자기에게 작은 잘못이 있을 경우 누가 지적해주면 고치는데 인색하지 않았다.(정유일)

 

선생은 온화하고도 어질며 공손하고 신중했다. 단정하고 고요했으며 편안해 보였다. 사납거나 거만한 얼굴, 성내고 짜증스러워하는 기색은 한 번도 보이지 않았다. 바라보면 의젓해서 공경스러움의 모범 같앗다. 사귀면 따스해서 사모할 만한 용모와 덕이 있었다.(김성일)

 

평소 날이 밝기 전에 일어나 방에 고요히 앉아 마음을 삼가고, 생각에 잠길 때는 마치 흙으로 빚어 만든 사람과 같았다. 학자들이 와서 물으면 샅샅이 파고 캐서 환하게 깨우쳐 주었다. 아주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모두 감동해 크게 깨닫곤 했다.(우성전)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를 봉양하기를 매우 조심스러워 했다. 언제나 얼굴빛을 부드럽게 하고 뜻에 순종해서 일마다 어김이 없엇다. 선생이 과거 시험을 본 것도 어머니를 봉양하기 위해서였다.(김성일)

 

선생은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매우 너그러웠다. 큰 허물이 없으면 절교하지 않고 모두 용서하고 가르쳐 그가 스스로 고쳐 착하게 되기를 바랐다.(김성일)

사람을 대할 때는 귀하고 천함, 현명하고 어리석음을 차별하지 않고 예의를 다했다. 신분이 낮은 손님이라도 계단을 내려가 맞이하고 스스로를 높이지 않았다.(정유일)

 

오직 경(퇴계)는 정밀하게 생각하여 실천하고 오묘한 이치를 깊이 탐구하여 지나간 것을 잇고 다가오는 것을 여는 데 평생 힘썼다. 어렵게 나아가고 쉽게 물러남이 옛사람의 처신에 비해 부끄럽지 않아 길이 빛날 유학의 큰 스승이 되어 세상의 모범을 이루었다.(선조임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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