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일
국사와 민간전승, 문화유적, 향토사를 채집하고 발굴하는 문화사학자이자 활발한 저술활동을 펼치고 있는 작가. 하지만 그를 아는 대부분의 이들은 기행을 일삼는 ‘방외지사’ 도는 20,000여권의 방대한 독서량과 맨몸으로 국토순례를 고집하는 ‘강호의 낭인’으로 기억하고 잇다. 그동안 한강, 낙동강을 비롯한 한국의 10대강과 우리의 옛길인 영남대로와 삼남대로, 관동대로를 도보로 답사했다. 그리고 부산 해운대에서 두만강가지의 동해 트레일을 목표로 통일전망대
까지 걸었으며, 400여 곳의 산을 오르는 등 우리나라 산천 구석구석 발자국을 남기지 않은 곳이 거의 없을 정도다. 2007년에는 고조선의 발자취를 좇아 중국대륙을 누비기도 했다.
현재 <우리땅걷기모임>대표를 맡으며 전 국민의 자연 사랑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지은 책으로는 <조선을 뒤흔든 최대 역모사건>,<다시 쓰는 택리지 1~5>,<한국사의 천재들>등 40여권이 있다.
맑은 날씨와 역사의 숨결이 머물러 있는 곳
경남 통영시 산양읍 삼덕리
경남 통영시에서 통영대교를 건너면 진남 초등학교가 나오는데 그곳이 바로 미륵섬이다. 그리고 진남 삼거리에서 1021번 지방도로를 타고 가면 오른쪽이든 왼쪽이든 한려수도의 절경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 길을 따라가다보면 삼덕리에 이른다.
니체는 자신의 글<자유분방한 자연>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즐겨 자유분방한 자연속에 있는 것은 , 자연이 우리에 대해 아무런 생각도 품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니체의 말과 달리 자연은 엄밀한 의미에서 또 하나의 자연인 사람에게 말을 걸어올 때가 더러 있다. 나직하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다가 자연은 이렇게 속삭인다.
“여기서 살지 않으련? 파도와 갈매기를 벗 삼고, 인정이 차고 넘치는 바다 사람들을 이웃으로 삼아 한 시절을 살아보지 않으련?”
필자가 찾아갈 때면 어김없이 이처럼 달콤한 유혹을 하는 땅이 있다.
‘한국의 나폴리’라고 불리는 경상남도의 통영 부근이 바로 그곳이다.
그리움의 땅, 마음의 고향
전남 담양군 고서면 산덕리 후산마을 명옥현
담양군 고서면에 있는 고서 사거리에서 창평 쪽으로 난 826번 지방도로를 따라 1.5킬로 미터쯤가면 왼편으로 마을이 나타나는데, 거기가 후산마을이다.
‘남방사람들은 낙타를 꿈꾸지 않고, 북방 사람들은 코끼리를 꿈꾸지 않는다.’
중국 송나라 시대에 민간에서 회자되던 속담이다. 살고 있는 곳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 자족하고 산다면 더 이상 다른 것들은 필요로 하지 않게 된다는 뜻이다. 산수가 아름답고 땅이 비옥하여 사람들의 정신과 삶이 풍요로워지는 곳에서라면 몸과 마음이 풍족해져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욕심을 부리지 않게된다. 영산강 상류에 자리잡은 전라남도 담양이 바로 그런 마음을 갖게 만드는 땅이다.
꿈길 같은 숲길을 지나 적멸보궁에 이르니
강원도 영월군 법흥사 아랫마을 대촌
영월에서 제천 쪽으로 38번 국도를 따라가다가 북쌍리 삼거리에서 우회전하여 402번 지방도를 타고 가면 주천면이 나온다. 그곳에서 평창으로 향하는 82번 도로를 따라 15킬로미터쯤 가다가 좌회전하면 수주면에 이른다. 수주면 무능리에서 9.2킬로미터를 가면 법흥사가 있는 절골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가지지 말라
미운 사람을 가지지 말라
사랑하는 사람은 못 만나 괴롭고
미운 사람은 만나서 괴롭다
<법구경>의 한 구절이다. 사랑이 아닌 자연을 두고 연모의 정을 품는다면 그게 비정상일까? 만나지 못해 괴로워질 때면 나는 차를 몰고 무릉리 마애여래좌상이나 법흥사를 찾아가 망연히 앉아 있는다. 그래도 채워지지 ㅇ낳는 그 어떤 것이 있으면 마애여래불과 소나무 그리고 잔잔하게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면서 ‘나는 흘러가는 모든 것을 사랑한다.’던 제임스 조이스의 말을 떠올린다.
흐르는 물빛에 덩달아 세월이 흐르고 , 시간이 흐를수록 저문 강물에 드리운 산 그림자가 짙어진다. 그리고 지금도 그 강물처럼 세월은 무심히 흐르고 있을 것이다.
세상 사는 마음가짐을 가르치는 땅
충북 옥천군 동이면 청마리
두가지 방법이 있다. 옥천군 동이면의 금강 휴게소의 아랫길로 금강의 본류를 따라 굽이굽이 따라가면 조령리와 합금리를 지나게 되고 곧 청마리에 닿는다. 또 한가지 방법은 일단 안남면으로 가서 575번 지방도를 따라 7킬로미터쯤 가면 평촌마을이 나오는데, 거기에서 비포장도로를 따라 가다보면 청마리에 닿게 된다.
조선중기의 학자이자 문신인 김정국은 중종때 기묘사화로 삭탈관직을 당했다가 복관되어 전라감사와 병조참의, 공조참의, 형조참판 등을 지냈다. 그가 어느날 오로지 재산 모으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한 친구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다.
두어 칸 집에 두어 이랑 전답을 갖고 겨울 솜옷과 여름 베옷 각 두어 벌 있었으며, 눕고도 남는 땅이 있고 신변에는 여벌옷이 있으며, 주발 밑바닥에 남는 밥이 있었소
여기에 따라야 할 것은 오직 서적 한 시렁, 거문고 하나, 햇볕 쬘 마루 하나, 차를 달일 화로 하나, 늙은 몸 부축할 지팡이 하나, 봄 경치 찾아다닐 나귀 한 마리면 족할 것이오.
그러면서 의리를 지키고 도의를 어기지 않으며, 나라의 어려운 일에 바른 말 하고 사는 것이 그 얼마나 떳떳하오.
..
필자는 간혹 이런생각을 한다. 땅이 사람의 삶을 이그는 것은 아닐까. 욕망이 넘쳐나는 땅에 사는 사람들은 욕망을 주체하지 못하고, 소비와 자본이 풍부한 땅에서는 비대해지는 욕심 때문에 끊임없이 마음의 허기를 느기는 것이 아닐가. 그래서 도시인들의 삶이 점점 더 피폐해져 가는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다보면 사람의 마음을 살찌우는 땅을 마음속에 그리게 된다. 사람이 살마답게 살도록 이끄는 땅. 충청북도 옥천군 동이면 청마리에서 필차는 참으로 그런 땅을 만났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내마음의 명당
전북 김제시 금산면 청도리 귀신사 부근
도시문명이 닿지 않은 해맑은 땅
경북 안동시 풍양면 병산리 병산서원
왕실의 태실이 있는 명당 중의 명당
경북 성주군 월항면 대산동의 한 개마을
낙동강 물길이 휘감아도는 아름다운 땅
경북 안동시 도산면 가송리
자연이 빚은 명당 중의 명당
전북 순창군 동계면 구미리
자연의 신비를 느낄 수 있는 땅
전북 진안군 성수면 용포리
허균이 꿈꾸었던 이상향
전북 부안군 진서면 변산의 우반동
마지막 현인의 탄생을 기다리는 땅
경주 안강읍의 양동마을
구룡소에 발을 담그고 풍경이 되다
강원도 평창군 팔석정
부처의 자비가 서려 있는 마을
전남 고흥군 점암면 팔영산 능가사
<택리지>에 기록된 삼남의 4대 명당
경북 봉화군 봉화읍 닭실마을 청암정
풍요와 부귀영화가 마르지 않는 길지
전남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 운조루
대원군이 사들였던 천하의 명당
충남 예산군 덕산면 남연군묘
시간이 멈춘 자리
안성시 이죽면 칠장리 칠장사 아랫마을
‘헛된 욕심을 품지 않으면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보물로 보이는 법!’
산중의 은신처
경주시 안강읍 옥산리 계정마을
조선 최고의 명당
경기도 남양주군 조안면 능내리
금강산 이남에서 가장 빼어난 곳
충북 괴산군 청천면 외선유동
조선시대 최고 아웃사이더의 안식처
충남 부여군 외산면 무량사 아래 무량마을
김시습은 회한에 찬 그의 생애를 그린 듯 다음과 같은 시 한 편을 남겼다.
그림자는 돌아다봤자 외로울 따름이고
갈림길에서 눈물을 흘렸던 것은 길이 막혔던 탓이고
삶이란 그날 그날 주어지는 것이었고
살아생전의 희비애락은 물결 같은 것이었노라
전통적인 길지에 친환경도시가 들어서다
경남 함양군 지곡면 개평리
마음이 아름다워지는 땅
경남 남해군 이동면 상주리
그곳에 가면 사람이 있다
전남 강진군 도암면 다산초당
생각만 해도 마음 설레는 그리움의 땅
경기도 강화 교동도의 남산포
영험을 지닌 신비의 사찰
경북 영주시 부석면 부석사
베일에 싸인 명당의 행방
충남 보령군 성주면 성주리 성주사지
시간을 거슬러 조선 고택의 대문을 두드리다
경남 거창군 위천면 강천리 수승대와 동계 정온 고택
시름은 사라지고 입가에 미소가 잡히네
충남 가야산 기슭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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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옛날 맑은 선비들이 살았던 것처럼 언젠가 나도 아름다운 자리에 머물 수 있을까?
가끔 꿈에 젖어 공상에 빠져보기도 한다.
자리는 잡지는 못하더라도 어쩌다 한번 봇짐이라도 챙겨 길을 나설 수 있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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