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4월 30일 수요일
정민의 世設新語
임진마창(臨陳磨槍)
‘홍루몽’에 ‘적진과 마주해 창을 갈아봤자 아무 쓸데가 없다(臨陳磨槍,也不中用)’는 말이 나온다. 평소에 빈둥대며 놀다가 이제 막 전투가 시작되려는 참에 “잠깐, 창날 좀 갈고 싸우자!”고 외치는 꼴이란 말이다 . 200년 전 다산은 ‘군기론(軍器論)’에서 이렇게 말했다.
‘오늘날 각 고을에 보관된 군기(軍器)는 활을 들면 좀먹는 부스러기가 우수수 쏟아지고, 화살을 들면 깃촉이 쑥쑥 바진다. 칼을 뽑으면 날은 칼집에 꽂힌채 칼자루만 쑥 뽑힌다. 총을 보면 녹이 슬어 총구가 아예 막혀 있다. 하루아침에 화난이 있게 되면 온 나라가 모두 맨손인 셈이다.’
고을살이를 나가 무기고를 점검해보니 말할 수 없이 한심했다. 활은 좀을 먹어 시위를 당기자 줄이 툭 끊어지고 화살은 그저 들고만 있어도 삭은 깃촉에 땅에 우수수 떨어진다. 칼은 칼집 속에 박혀 나올 생각이 아예 없다. 총구는 녹슬어 구멍이 꽉 막혀 버렸다. 갑작스러운 변고라도 있게 되면 적수공권(赤手空卷)으로 적과 싸울 수밖에 없다. 군대의 일은 만에 하나 있을 변고에 대비하기 위함인데 지금 당장 일이 없다고 무사안일로 이리 방치하면 유사시에 어찌할 것인가?
다산이 200년 전에 한 염려가 오늘날 우리 사회를 관통하고 있다. 어디를 봐도 겉만 뭘쩡했지 속은 곪을 대로 곪아 고름이 터지기 직전이다. 호들갑 떨며 대충 시늉뿐이고 잇속 챙기기만 바브다. 문제가 생기면 돈으로 입막음한다.
관행이었다고 둘러대다 우리만 그랬느냐고 강변한다. 문제를 덮은 뒤엔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시치미를 떼고 다시 예전으로 돌아간다. 충격 상쇄용 기사를 만들어 국민의 관심을 딴 데로 돌리는 것이 국가기관의 위기 대응 매뉴얼이었다니 할 말이 없다.
성과 위주의 졸속과 한탕주의는 우리 사회 곳곳에 세균과 독버섯처럼 퍼져 있다. 일이 생기면 허둥지둥 우왕좌왕 정신이 하나도 없다. 구명보트는 처음부터 펴질 수 없는 상태였다. 국가의 재난 대응시스템도 그 구명봍의 몰골과 엇비슷한 수준이었다. 지금 우리가 더더욱 참담해진 이유다. 왜 늘 일이 벌어진 뒤에 뒷북만 치는가?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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