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만권을 읽으면..

지상의 양식/앙드레 지드/민음사

다림영 2014. 4. 23.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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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때면 낯선 마을에서 낮 동안 흩어졌던 사람들이 가정으로 다시 모여드는 것을 보았다. 일하러 갔던 아버지는 피로하여 돌아오고, 어린아이들은 학교에서 돌아오고 있었다. 집의 출입문이 한순간 방긋이 열리며 빛과 따뜻함과 웃음을 맞아들이고 나서 다시 닫히면 밤이 왔다. 방랑하는 것들은 무엇이든 더 이상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바람은 밖에서 파르르 떨고 있었다.

 

가정이여, 나는 너를 미워한다! 밀봉된 가정, 굳게 닫힌 문, 행복의 인색한 점유(). 때때로 나는 어둠에 묻혀 어느 창유리에 몸을 수그리고 오랫동안 한 집안의 관습을 엿보기도 하였다. 아버지는 등불 옆에 앉아 있고 어머니는 바느질을 하고 있었다.

 

할아버지의 자리는 비었다. 어린아이 하나가 아버지 곁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러자 나의 가슴은 그 어린아이를 불러내어 길 위로 데려가고 싶은 욕망으로 부풀어 올랐다.

그다음 날 나는 학교에서 돌아오는 그를 보았다. 그리고 또 그다음 날에는 그에게 말을 붙였다. 나흘 뒤에 그는 모든 것을 버리고 나를 따라왔다. 나는 찬란한 벌판 앞에서 그의 눈을 열어주었다. 그 벌판이 그를 위해서 트여 있다는 것을 그는 깨달았다. 그리하여 나는 그의 영혼이 더욱 방랑에 맛을 들여 마침내 즐거움을 느끼도록 가르쳐주었다- 이윽고 내게서마저도 떨어져서 저 스스로의 고독을 맛보도록 가르쳐주었다.

 

나는 홀로 자부심의 세찬 기쁨을 맛보았다. 나는 새벽이 되기 전에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이 좋았다. 나는 밀밭 위로 태양을 불렀다. 종달새의 노래는 나의 환상곡이었으며 이슬은 새벽의 화장수였다. 지나칠 정도로 검소한 식사에 만족했다.

 

먹는 것이 너무나 적어서 머리는 가벼워지고 모든 감각이 나에게는 일종의 도취로 변했다. 그 후 나는 어지간히도 여러 가지 포도주들을 마셔보았지만 단식으로 인한 현기증, 태양이 떠오른 다음 낟가리 속에 파묻혀 잠들기 전에 훤하게 밝은 아침 속에서 넓은 들판이 넘실거리며 흔들리는 듯한 느낌을 맛보게 해주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길을 나서며 지니고 온 빵을 때로는 거의 실신 상태에 이르기까지 먹지 않고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 그럴 때면 자연이 덜 낯설게 느껴지는 듯했고 더욱더 자연이 나의 몸속으로 스며드는 것 같았다. 그것은 쇄도하는 외계의 분류(奔流)였다.활짝열어놓은 내 모든 감각을 통하여 나는 외계의 현존()을 맞아들였다. 모든 것이 나의 내부로 초대받는 것이었다.

 

나의 영혼은 마침내 시정(詩情)으로 가득차올랐지만 그것은 고독으로 인하여 날카로워지고 저녁녘이 되면 피로를 느끼게 하였다. 자부심으로 나 스스로를 지탱했지만 그럴 때면 지난해, 가만두면 너무 사나워지려고 하는 나의 기분을 어루만져 주던 일레르가 그리워 지는 것이었다.p85

 

 

나날들의 고요한 교차. 바람의 주기적인 순환. 이미 생기를 발하는 모든 것에는 조화로운 리듬이 깃들어 있다 . 모든 것은 기븜을 만들어낼 준비를 갖추니 바야흐로 그 기븜은 이내 생기를 얻어 나뭇잎들 속에서 제멋대로 파닥거리고 이름을 가지고 나뉘어 꽃 속에서 향기가 되고 과일 속에서 맛이되고 새속에서 의식과 목소리가 된다. 이렇게 하여 생명의 순환, 정보, 상실은 햇빛 속으로 증발했다가 이윽고 또다시 모여 소나기가 되는 물의 순환을 모방한다.

 

저마다의 동물은 한 뭉치의 기쁨에 지나지 않는다.

모든 것은 행복해지기 위하여 태어낫음을 물론 자연의 모든 것이 가르쳐주고 있거늘, 식물이 싹 트게 하고 벌집에 꿀을 채우고 인간의 마음에 선의를 채워놓는 것은 모두가 쾌락을 향한 노력인 것이다. p208

 

 

각자에게는 자신의 감각과 마음이 감당할 수 있는 정도에 따라 행복의 양이 할당되어 있는 것. 아무리 소량이라도 그것을 빼앗기면 그것을 도둑맞은 것이 된다. 내가 존재하기 전에는 내가 생명을 요구했는지 어떤지 알 수 없지만 내가 태어나 살고 있는 지금은 모든 것이 나의 몫으로 주어진 것이다.

 

그러나 감사하는 마음은 너무나도 감미롭고 사랑한다는 것이 내겐 너무나도 당연하게 감미로워서 지나가는 바람의 조그만 애무도 내 마음속에 감사하는 마음을 불러일으켜 준다. 감사하는 마음의 필요성은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하라고 가르쳐준다.P220

 

 

 

미덕은 어느 것이나 다 자기희생에 의하여 비로소 완성된다.과일의 더할 수 없는 단맛은 오직 싹이 트는 것을 지향할 따름이다.

진정한 웅변은 포기한다. 개인은 자기를 망각할 때 비로소 자기를 긍정한다. 자기 생각에 빠진 자는 자신의 방해물이 된다.

 미인이 자기가 아름답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을 때보다 더 내가 아름다움에 감탄해 본 적은 없다. 가장 감동적인 선()은 가장 체념한 상태의 선이다. 그리스도가 진정으로 신이 되는 것은 스스로 신성을 포기함으로써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 속에서 자기를 버림으로써 신은 창조된다. p224

 

 

나는 가끔 , 대개는 심술궂은 마음을 가지고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남에 대해 나브게 이야기하고, 비겁한 마음을 가지고 많은 작품들에 대하여 실제 생각 이상으로 좋게 말했다.

 

책이든 그림이든 그 작품의 작자들을 나의 적으로 만들어놓을가봐 두려워서 말이다. 나는 때때로 조금도 재미있다고 여기지 않는 사람들에게 미소를 지어보였고, 이러석은 말을 무척 고상하다고 느기는 척도 했다. 또 때로는 다분해 죽을 지경인데도 재미나는 척했고, 사람들이 좀 더 있다 가시죠....” 하는 말 때문에 자리에서 일어설 용기를 못 내고 앉아 있기도 했다.

 

나는 너무나 자주 마음의 충동을 이성으로 제지했다. 반면에 마음은 침묵하는데도 말을 하는 일이 지나치게 잦았다. 나는 가끔 남들의 동의를 얻기 위하여 어리석은 짓들을 했다. 반대로 내가 반드시 해야 한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남들이 동의해 주지 낳을 것을 알기에 감히 하지 못한 일도 많다. p270

 

 

 

변화시켜야 할 것은 이 세계뿐만이 아니라 인간도 마찬가지다. 그 새로운 인간이 어디서 솟아날 것인가? 분명 밖에서 솟아나지는 않을 것이다. 동지여, 그대 자신 속에서 그를 발전해 내도록 하라. 그리하여 광석에서 찌꺼기가 없는 순수한 금속을 추출해 내듯이 그대에게 대망의 새로운 인간을 요구하라.

 

그 새로운 인간을 그대 자신에게서 얻어내라. 대담하게 그대 자신이 되라. 적당히 넘어가지 말라. 저마다의 존재 속에는 놀라운 가능성들이 잠재해 있다. 그대의 힘과 그대의 젊음을 굳게 믿어라.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다짐할 줄 알아야 한다. “오로지 나 자신에 달린 일이다.”라고 p282

 

 

 

인간이 좀 덜 잔인하게 굴 경우, 가장 많은 경우엔 빈곤으로 야기되는 고통들을 면할 수 있엇다. 이것은 결코 가공적인 유토피아가 아니라 우리 인간들의 고통 대부분은 결코 숙명적인 것도 필연적인 것도 아니며 다만 우리들 자신 탓으로 생긴 것 뿐이라는 단순한 확인이다.우리가 피해갈 수 없는 고통들의 경우에도, 우리가 여러 가지 병에 걸릴 수 있지만 우리에게는 또한 약이라는 것이 있는 것이다.

 

나는 어느 면으로 보나, 인류가 보다 더 기운차고 건전하고, 나는 어느 면으로보나,인류가 보다 더 기운차고 건전하고, 그리하여 보다 더 즐거울 수 있으며,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거의 대부분의 고통은 그 책임이 우리 자신에게 있다고 믿는 바이다."p 289

 

 

 

“<지상의 양식>은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앙드레 지드의 사상적 자서전이자, 전 세계 젊은이들에게 보내는 육체와 정신의 해방 찬가이다. 지드는 아프리카 여행을 통해 모든 구속에서 벗어나 강렬한 생명력을 향유하는 것이 삶의 길임을 깨닫고 이 책을 썼다. 그는 영혼의 문을 활짝 열어놓고 모든 감각을 통하여 자연과 생명을 맞아들이라고 말한다. 이책은 감각으로 먼저 느껴 보지 못한 지식은 무용할 뿐이며, 머리로 배운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비워 버리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교육의 시작이라고 가르치는 역설의 교과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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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무거워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어찌 책을 읽었는지..그저 뒤적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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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일 방영되는 사고의 뉴스.... 아이들 부모들의 심정, 생전 처음 두려움 속에서 떨다가 춥고 아팠을 아이들.... 누구도 그렇게 세상을 떠날 줄 몰랐으리라. 아무도 자신이 물속에서 차가운 모습으로 이 환한 봄날에 아프게 갈 줄은 짐작도 못했으리라.

숨쉴 수 있는 그곳까지 물이 차고 아찔했던 그 순간 분명 누군가 구해주러 올 거야, 잠깐 기절하는 걸 거야 하며 스스로 체면을 걸었으리라. 눈을 뜨면 엄마 아빠를 따뜻하게 만나고 푸른 시트위에서 여린 눈으로 세상과 마주보게 될 것을 믿었으리라.

 

이 가족들의 아픔을 어찌 짐작이나 할까. 그 와중에도 잠이 오는 스스로를 책망하며 눈을 뜨면 엄마’- 하고 엷은 미소를 띄는 아이를 매일 밤과 낮으로 흔들거리며 만났을 것이다.

 

나의 막내도 고등학교 이학년이다. 사고 나기 며칠 전 제주도에 수학여행을 다녀왔고 큰 녀석도 배를 타고 섬에서 건너왔다. 배는 몹시 흔들렸지만 어떤 위험도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고 한다. 배는 원래 그런 것이려니 했다고 한다.

 

아이들이 그 얼마 전 배를 타고 무서운 바다를 건너왔다는 것에 소름이 돋는다.

사고가 날 수 밖에 없었던 배였다. 언제든 어느 누가 되었든 부딪치게 되어 있었다. 기막힌 사실들이 낱낱이 드러나고 있다.

제 몸밖에 안중에 없었던 파렴치범들 ....어떤 이유로도 용서받을 수 없다.

 

풋풋하던 아이들이 거대한 바다 밑 춥고 어두운 곳으로 하루아침에 사라졌다. 이 아픔과 슬픔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어디에도 없다.

 

무수한 생명의 씨앗들이 움트는 봄날, 꽃 같은 아이들이 아프게 떠나갔다. 다리를 힘껏 내딛을 따뜻한 흙 한줌 없는 깊고 깊은 어두운 바다 속으로 가라앉았다.

아물 수 없는 기막힌 상처 속에서 아이들의 부모들은 이 한세상을 어찌 살아내야 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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