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7장의 "많은 것은 덜어내고 부족한 것은 채운다"를 <주역>에서는 손.익괘로 설명한다. 손(損)괘는 "손하익상(損下謚上)하여, 즉 아래를 덜어 위에 더하여 그 도(道)가 올라가 행함"이며 익(益)괘는 반대로 "손상익하(損上益下)하여 위를 덜어 아래에 더해 주니 백성의 기뻐함이 무궁하고 위로부터 아래를 낮추니 그 도(道)가 빛난다"라고 하였다.
손해와 이익, 늘어남과 줄어듦도 이러한 표리일체의 관계에 있다. 모든 사물은 반드시 한번 성(盛)하면 한번 쇠(衰)한다. 영허(영虛)소식(消息)을 반복한다. 손(損)괘와 익(益)괘도 그와 같아서 손(損)이 극에 달하면 채워주고 익(益)이 극에 달하면 반드시 덜어낸다는 자연의 이법(理法)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렇게 하는가? 그것은 어떤 외부의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 자신이 스스로가 그러하다는 것이다. 자연(自然)이다. 이 렇게 모든 사물은 반드시 극처에 달하면 원점으로 되돌아 온다는 것을 <주역>은 '극즉반(極則反)'이라고 하였고 노자는 '물극필반(物極必反)'이라는 말을 사용하였다.
양(陽)이 극에 달하면 음(陰)이 되고, 음이 극에 달하면 양이 된다. 음변양화(陰變陽化)다.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변화'이다. 음변양화, 즉 한번 양이 되면 한번 음이 되는 것을 <주역>에서는 도(道)라 일컫는다. p51
'모든 사람의 착하고 악함은 말로 형용되고 행실로 발현되어야만 사람들이 비로소 아나, 단지 마음에 싹트고 생각에 발할 뿐인 것을 귀신은 이미 아니, 이것이 군자가 혼자일 때를 삼가는 이유다." 그의 <외편>에 있는 말이다. 착한 것에 복을 주고 지나친 것에 화를 내리는 것은 누가 주관하는가?
소강절에 따르면 귀신이 그렇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귀신이 아는 것은 말과 행실이다. 그러면 선하고 악한 삶의 길흉화복은 누가 주관하는가? 그 역시도 귀신이 한다. 그러나 그 귀신은 말과 행실을 한 사람으로부터 소외되지 않는다. 귀신이 한 일이지만 그 귀신을 그렇게 만든 것은 자신의 말과 행실이다. 그렇다면 길흉화복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그것은 자신의 말과 행실이다. 자신의 말과 행실을 아는 사람은 시초를 빌어 길흉화복을 귀신에게 물어보는가?
그렇지 않다면 자신의 말과 행실을 돌아보겠는가? 그는 그렇게 묻고 있다.
그러므로 역(易)에 능한 사람은 점을 치지 않는다. 역(易)이 내 마음 속에 있기 때문이다.
한생각이 움직이지 않으면 귀신도 알지 못하나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 다시 누구를 말미암겠는가? 만약 일이 마음에서 싹트면 귀신이 그것을 먼저 알 것이다. 길흉(吉凶)과 회린(悔吝)에 각기 해당하는 수(數)가 있으나 내가 예단해서 아는 것은 어떤 도인가? 내 마음의 역(易)에서 구할 분이라고 말할 수 있다. p127
이렇기 때문에 적연하게 움직이지 않다가( 然不動),생각을 고요히 해서 정성을 보존하고 변화를 관찰하여 점을 살피면서 삼요(三要:귀와 눈, 마음)을 운용한다. 그러면 반드시 보지 못하는 것을 나는 볼 수 있으며, 듣지 못하는 것을 들을 수 있다. 때로는 형체가 나타나 보여 주는 것 같으며, 소리가 나타나 알려주는 것 같아서 '나의밝음'이 거울 같으면, 역(易)이 '복서(卜筮)의 도'가 되며 역(易)이 내 마음속에 있다 할 것이 . 소강절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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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밝음은 어디서 오는가? 소옹은 앞서에서 직(直)과 성(誠)을 강조한 바 있다. 지극한 성실만이 신명(神明)과 통한다는 것이다.
"성(誠)하면 명(明)한즉 성(誠)하다"는 <중용>이 왜 '소주역(小周易)'이라고 일컬어지는지 가늠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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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정은 <과욕설(과欲設)>에서 말한다.
마음을 기르는 데에는 적은 욕심을 적게 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다. 적어지고 또 적어져서 적어질 것이 없는 데가지 이르면 마음이 비고 신령스러워진다.
'기심허명(基心虛明)'이다.p128
토정은 <대인설>에서 말한다. "신령스러움은 알지 못하는 것보다 더 신령스러움이 없다. 알지 못하면서 능히 신령스럽고, 다투지 않으면서 능히 강하며, 욕심을 내지 않으면서 능히 부(富)하고, 벼슬하지 않으면서 능히 귀한 것은 오직 대인(大人)이 할 수 있는 것이다."(<토정유고>)
알려고 하지도 않으면서 능히 신령스러운 경지. 그것은 허령(虛靈)이 아니고서는 가능하지 않다. 무심(無心)이 그냥 지나가는 흔적일 분, 배워서 도달하는 앎(有心)이란 무심만 못하다는 것을 토정은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 p130
소강절은 죽음에 임하여 삶과 죽음이란 모두 보통 있는 일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임종을 앞둔 화담은 제자에게 이런말을 남겼다. "삶과 죽음의 이치를 안 지 이미 오래이니 심경은 편안하기만 하다." p136
기가 모이면 일정한 사물이 이루어지고, 흩어지면 소멸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뜻에서 화담은 이 세상에는 "기의 취산이 있을 뿐, 사물의 유무가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또한 화담은 <귀신 생사론>에서 생사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정이천은 죽음(死)과 삶(生),사람(生)과 귀신(死)은 하나면서 둘이며, 둘이면서 하나라 했으니 이것으로써 다 말한 것이다. 나도 사(死)와 생(生), 인(人)과 귀(鬼)란 다만 기(氣)의 뭉침과 흩어짐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p137
"만물은 어디로부터 왔다가 또 어디로 가는가?
음과 양이 모였다 흩어졌다 하는 이치와 빌미는 오묘하도다.
구름이 생겼다 없ㄷ어졌다 함을 깨우쳤는가?
만물의 이치를 보면 달이 차고 기움과 같다.
시작을 밝히면 끝으로 돌아가는 것이니
항아리 치며 노래한 뜻 알겠고
몸이 풀리어 혼백이 떠남은 본시 목표로 돌아감과 같다.
아아, 인생이 약상(弱喪)같다는 이 그 얼마나 되는가?
제 집으로 돌아가는 걸로 생각함이 정해진 하늘의 뜻 깨친 걸세."p138
남명은 말한다.
"사람들은 때때로 곤궁함을 걱정하지만, 나에게 있어서는 곤궁함이 바로 통달함이다...때로는 굶주리다가 때로는 먹고 때로는 근심하다가 때로는 즐거워하였으니, 나의 곤궁함을 세상 사람들의 통달함과 바꿀 수 있겠는가? 나는 바꾸지 않으리라, 다만 다리 힘이 없어서 용감히 가서 힘껏 행하지 못할까 두려울 뿐이다."p146
봄 산 어디엔들 향기로운 풀이 없으리오 春山低處 無芳草
다만 천왕봉이 상제와 가까움을 사랑해서라네.只愛天王 近帝居
빈손으로 왔으니 무얼 먹고 살거나 白手歸來 何物食
은하계 10리이니 먹고도 남으리 銀河十里 喫有餘p161
'탐주정랑'이란 "물속에 빠뜨린 구슬을 찾으려면 물결이 고요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물결은 사람의 탐욕과 번뇌를 지칭하고, 구슬은 내 안에 들어 있는 지혜를 일컫는다. p253
"사람의 마음이 멈춘 물과 같으면 바르게 되고, 바르면 고요하고, 고요하면 밝게 되는 것"이라고 소강절은 언급했다.p254
"산(艮)은 고요히 서 있는데, 위에는 불(離)이 타오르며 가만히 있질 않는다. 그러므로 그들은 함께 머물지 못한다. 낯선 곳, 그리고 작별이 나그네의 운명이다.(...)나그네로서, 이방인으로서는 무뚝뚝해서도 안되고 오만하려 해서도 안 된다. 아는 사람들도 별로 없으니 잘난 체해서도 안 된다. 조심스럽고 겸손해야 할 것이며, 그렇게 함으로써 악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다. 다른 사람들보다 앞서 가야 성공을 거두게 된다. 나그네는 일정한 집도 없으니, 거리고 곧 그의 고향이다. 그렇기 대문에 그는 내면적으로 옳고 확교해야 하며, 온당한 곳에만 머물고 선한 사람들만 교제하도록 조심해야 한다. 그러면 그는 복을 얻게 되고 무리없이 자기 길을 갈 수 있다." p274
떨어지는 벚꽃
남아 있는 벚꽃도
떨어질 벚꽃.
양관(良寬)선사의 시구가 입안에 멤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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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데서 깨닫고 속세로 돌아가라'는 그의 문학관도 어찌보면 노자의 화광동진(和光同塵)에 뿌리를 잇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p288
육우는 말한다.
근심과 번뇌를 벗어나려면 술을 마시고, 정신을 맑게 하려면 차를 마셔라."
<본초(本草)>에도 고다(苦茶)는 성질이 쓰고 차서 기운을 내리게 하며 머리와 눈을 맑게 하고 사색에 유익하다고 하였다. 당나라 사람 배문(裵汶)은 "차의 성품이 정청(精淸)하고 그 맛이 호결(浩潔)하며 그 공효(功汶)는 중화(中和)를 이루게 해준다"고 기록했다. p316
강물은 주야로 흐르지만 끝내 줄어들지 않고, 달은 영허소장을 거듭 하나 끝내 없어지지 않는다. 현상세계의 본질은 <반야심경>의 부증불감(不增不滅)이다. 이때의 만물과 나는 영원한 것을, 어찌 인생이 짧다고 비탄에 잠길 필요가 있겠느냐고 그는 객을 위로한다. p334
이름이란 어떤 존재와 만나는 순간, 그 역할에 맞게 알 수 없는 어떤 작용력을 부여받게 되는 것 같다. 가령 무명베를 싹둑 잘라 한 토막을 '수건'이라 하고 다른 한 토막을 '걸레'라고 이름 지었을 때, 설령 걸레가 더 깨끗해 보여도 걸레로 얼굴을 닦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사물이란 이렇게 이름으로 불리게 된 순간, 불린 존재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이름에 걸맞은 어떤 운명의 작용력도 함께 생겨나는 것 같다.
p374
인생은 어차피 허깨비(人生似幻化)
끝내는 공(空)과 무(無)로돌아가리(終當歸無空)
-<귀원전거 4(歸園田居其四)p3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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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그치지 않는 날이 없다라
겨울 다음에는 봄이더라
비는 매일 쏟아지지 않더라
밤이지나면 아침이 오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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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담스님의 말씀으로 아침을 열고 오후를 내딛는 휴일..
맹난자 선생님의 주역에 대한 말씀을 이제야 정리한다.
오늘은 바람이 제법 부는듯하다.
지당하고 지당한 스님의 말씀을 기억하며 책속의 귀한 말씀들을 떠올리며
가까운 산을 만나러 가야 하겠다.
모든 '덕분에'로 귀결하며...일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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