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속담에 “가루 팔러 가니 바람불고, 소금 팔러가니 이슬비 온다”라고 했다. 바람을 탓할 일도 비를 탓할 일도 아니다. 날씨는 생각지도 않고 가루며 소금이며 팔겠다고 나선 자신을 탓해야 하는 문제다.
손자의 관점에서 보면 제갈량이 말한 ‘하늘의 뜻’ 조차도 싸움에 앞서 미리 검토했어야 했다. 제갈량 자신도 적벽대전 때 한겨울에 동남풍을 부르지 않았던가. 외부 조건을 만들어 낼 수 없다면 최소한 기다릴 수는 있다. 강태공은 평생 낚시만 하며 자신의 뜻을 펼칠 날을 기다렸다. p24
싸움은 속임의 미학이다.
적이 튼튼하면 약하게 만드는게 승리의 비결이다.
약점을 드러내는 순간 공격하면 백전백승이다.
지는 싸움 앞에선 꼬리를 내릴 줄 알아야 한다. p36
누구나 이기는 싸움만 하고 싶어한다. 지는 싸움은 피하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다. 이기는 싸움에서 어깨 펴고 나아가지만, 지는 싸움에는 꼬리부터 내린다. 이기는 싸움과 지는 싸움의 판단 기준이 바로 세勢 다.
유리한 세는 장마철 계곡물이 바위를 굴리듯, 천 길 낭떠러지에서 목석이 구르듯, 병사들을 싸움에 휘몰아 넣는다. 그러나 바위를 굴리는 건 꼭 불어난 계곡물만이 아니고, 목석을 굴리는 데는 천 길 낭떠러지만이 가능한 게 아니다. 단지 불어난 계곡물처럼 보이기만 하면 되고, 천 길 낭떠러지처럼 보이기만 하면 된다.
사람은 보고싶은 것만 보기 마련이다. 사람을 움직이자면 보고 싶어하는 것을 보여주면 된다. 계곡물을 보고 싶어하는 바위에겐 세숫대야에 담긴 물도 계곡물로 보이고, 한사코 움직이지 않을 것 같은 목석도 서안 위에 올려 놓기만 해도 얼마든지 구를 수 있다. 싸움은 세가 결정한다. 그러나 세는 미리 결정된 게 아니다. 만들어 낼 수 있다. p106
손자는 “사람에게 책임을 지우지 말고 세에서 싸움의 답을 찾아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사람의 마음은 간사해서 마음의 주인인 자신조차도 믿을 수가 없다. ‘나 오늘부터 담배 끊겠어’라고 마음먹은 순간에는 진심이지만, 몇 시간 도 지나지 않아 다시 담배를 물게 된다. 그래서 한비자는 “믿을 건 세뿐 사람이 아니다” 라고 했다.p120
정약욕의 <목민심서>에도 허장성세 전술을 사용한 이야기가 있다.
“정승 이완이 숙천부사로 있을 때의 일이다. 청나라 장수 용골대가 안주를 기습 점령했다. 이완은 즉시 군마를 출동시켜 깃발을 펄럭이고 북을 크게 울리면서 굉장한 기세로 성 밖을 지나 산골짜기에 진을 치고는 밤에 습격하리라는 소문을 냈다. 그러자 용골대는 병사들을 돌려 황급히 돌아가버렸다.”
사람을 움직이는 건 ‘사실’이 아니라 ‘생각’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사실이라고 믿는 생각을 갖고 행동한다. 행동을 이끌어내기 위해 사실을 제시할 필요는 없다. 사실이라고 믿을 만한 그거만 제공하면 된다. p122
매사에 서두른다고 능사가 아니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처럼, 마음만 급해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때로는 바람처럼 빨리 움직여야 하지만 숲처럼 조용히 있어야 하고, 때로는 불같은 기세로 쳐들어가야 하지만 산처럼 꿈쩍하지 않아야 한다. 반면에 움직임은 그림자처럼 알 수 없으면서도 번개처럼 순식간에 이뤄져야 한다.
그러자면 기와 마음, 힘, 변화를 다스려야 한다. 사정만 볼 것도 아니고 적의 사정만 볼 것도 아니다. 마음의 준비가되지 않았는데 죽음을 각오하고 덤빌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적이 죽기를 각오하고 지키는데 들이친다면, 다 이긴 싸움도 망치기 십상이다. 싸움은 마음을 다스리는데서 시작한다. p156
우회로가 지름길이다.
군쟁이 어려운 이유는 에둘러 가는 길이 곧장 가는 길이고 걱정 거리가 이익이된다는 역발상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회로를 지름길로 삼고 이익으로 적을 끌어들일 줄 알면 적보다 늦게 출발해도 먼저 도착한다. 이걸 두고 우지지계迂直之計적라고 한다. p159
우리 속담에 “사흘 길에 하루가서 열흘씩 눕는다”라고 했다. 천천히 가면 사흘 만에 갈 길을 서둘러서 하루 만에 가면 앓아 눕는 바람에 열흘을 더 보낸다는 뜻이다. 서두른다고 능사가 아니다. 목적을 잊으면 망한다. p164
예전에 어느 대통령이 봉투를 하사하면, 그 안에는 받는 사람이 생각한 것보다 동그라미가 하나 더 있었다던가. 내 주머니 채우려고 욕심내다가는 인심 잃고, 사람도 잃는다. 깨 주우려 덤비다 기름 엎지르는 격이다. 기와 한 장 아끼려다 대들보 썩히는 짓이다. 노적가리에 불 지르고 싸라기 주워 먹는 짓이다. p172
이겼다고 생각한 순간이 위험하다.
돌아가는 군사를 막아서지 마라.
포위 공격할 때는 반드시 구멍을 만들어놔라.
궁지에 몰린 적에게 덤비지 마라. p184
한비자는 “두려워 하며 하루하루를 조심하라”고 했다. 상대도 사람인지라 실수 할 수 있으며, 언제 어디서 실수할지 대체로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상대의 실수를 바랄 수만은 없다. 실수를 밥 먹듯이 하는 상대도 갑자기 정신 차리고 실력을 발휘할지 모른다.
제갈량은 자신의 병법서<장원>에서 요행을 바라는 사람들을 “천막안에 둥지 튼 제비”와 “냄비 안에서 헤엄치는 물고기”로 비유했다. 세상모르고 편히 잘 살고 있다가 어느 순간 밥상에 오를지 알 수 없는 존재들이다. p193
“전술은 물과 같다.”
물을 막으면 넘친다. 흐름은 거스를 게 아니라 타야 한다. 죽자고 덤비면 죽이면 그만이고, 살겠다고 안간힘을 쓰면 살길을 터주면 순순히 항복한다. 성미가 불같은 사람은 작은 미끼만 던져줘도 쉽게 문다. 깨끗하다고 자부하는 사람에게는 부정하다는 오명을 씌우면 스스로 무너진다. 인정에 쉽게 이끌리는 사람에게 인질은 쇠사슬을 채운 것이나 다름없다. p196
모든 일에는 전조가 있다. 무엇이 됐든 하늘에서 갑자기 뚝 떨어지는 일도 없고, 땅 속에서 갑자기 솟아나는 일도 없다. 구름이 모여 비를 만들어내듯 세상만사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작은 일들을 무시하면 나중에 큰 코 다친다.
작은 일에 의미를 부여하려면 사소한 데 관심을 가져야 한다. 누가 결혼을 하고 초상을 치르는지 같은 관혼상제만 챙길 게 아니라 소소한 일들도 챙겨야 한다. 무조건 자세히 들여다 본다고 될 일도 아니다. 나무만 보면 숲을 놓치기 쉽다. 자세히 보되 객관화된 눈으로 봐야 한다. 그러자면 한발 떨어져서 봐야 한다.
높이 나는 새는 멀리 보지만 자세히 보지 못한다. 자세히 볼 일이 있고 멀리 볼 일이 있다. 때로는 한발 떨어져서 봐야 잘 보이고 때로는 한발 다가서야 잘 보인다. 나의 일은 한발 떨어져서 보고 남의 일은 한발 다가서서 본다.
입장 바꿔보는 것이 정답이다. 타인을 위한 입장 바꾸기가 아니라 나를 위한 입장 바꾸기다. p207
싸움의 시작은 마음가짐이다. 마음을 잡으려면 감동을 줘야 한다. 그러나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는 감동은 말처럼 쉽지 않다. 마음은 다잡도록 하는게 가장 손쉽고도 효과적이다.
마음가짐은 상황에 따라 바뀐다. 유리한 상황에서는 느긋해지고 여유로워지는 반면, 불리한 상황에서는 조급해지고 위축된다. 극단적으로 불리한 상황이 되면 이판사판 죽기를 각오한다. 죽기를 각오하면 못할 일이 없다. 살기위해서 뭐든 한다. 그래서 기왕 불리한 국면을 맞이했다면, 상황을 극단적으로 끌고 갈 필요가 있다.
극단적인 상황을 연출하기 위해서는 정보 통제가 필요하다. 정확한 상황 파악은 스스로의 판단을 이끌어낸다. 위기 국면에서 개별적 판단과 개별적 행동은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판단을 통제하려면 정보를 통제해야 한다. 통제된 정보는 상황을 규정하고, 극단적으로 치닫는 상황은 마음을 다잡게 한다. 죽음을 각오한 마음가짐이 승리를 이끌어낸다. p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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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에 읽었어야 할 글을 쉰이 넘어 읽는다.
간간이 뒤적였던 손자병법....
병법에서뿐만이 아니라 필히 터득해야 할 사전속의 말씀은 아닐지.
누구를 꼭 이겨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다치지 않으려면 알고는 있어야 할
비켜갈 것을 비켜가고
건너뛸 것은 건너뛰고
눈을 감아야 할 것은 눈을 감고
잊어야 할 것은 잊어버리는
유유히 살고 싶지만
인생은 그렇게 녹록치 않으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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