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만권을 읽으면..

젊은날의 초상/헤르만 헤세/가람문학사

다림영 2014. 2. 28.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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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서, 눈앞에서 벌어진 일들을 충분히 자각하고 운명을 감수하며 좋은 일과 궂은 일 모두를 충분히 겪은 다음, 외적인 운명과 더불어 우연과는 다른 내적인 운명을 획득하는 일은 더없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런 면에서 봤을 때 내 생은 그렇게 가난하지도 나쁘지도 않았다.

내 외적인 운명은 비록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거역할 수 없는 신의 힘으로 인해 내 삶을 스쳐지나가 버렸지만, 그럼에도 내 내적인 운명은 어디까지나 나 자신의 몫이었으며, 쓰든 달든 나 혼자만의 책임이었다. p61

 

 

, 어찌하여 인생이란 이토록 혼란스럽고 부자유스러운 것일까. 어찌하여 인간들의 세상에는 거짓과 악과 증오만이 존재하는 걸까. 아무리 미미한 노래도 아무리 평범한 음악도 밝게 조화된 멜로디의 순수함만이 천국의 문을 열어주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음에도 나는 내 삶에서만큼은 어떤 노래도 어떤 순수한 음악도 만들어낼 수 없었다.

그러나 이것은 내 탓만은 아니다. 인간의 생활은 본래부터 우연과 부조화로 가득 차 있어, 어느 곳을 두드려도 순수하고 맑은 소리는 울려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p63

 

 

나는 때때로 막연하게나마 삶을 어렵다고 느꼈다. 그리고 지금 나는 곰곰이 생각해야 할 시기에 도달해 있다. 그 인식 속에 뿌리박혀 있는 모순의 감정은 오늘날까지 단 한순간도 사라지지 않았다. 삶이 아무리 어렵다 한들 때로 그것은 타인이나 스스로에게 깊고 슬픈 밤처럼 생각된다.

 

 그것은 번갯불의 순간적인 섬광이 커다란 위안을 주듯, 그 몇 초간이 어둠의 세월을 씻어줄 수 있는 것과 비슷하다.

어둠, 위안 없는 암흑, 이것이야말로 일상의 무서운 순환이다.

 

 

우리는 과연 무엇 때문에 아침에 일어나 먹고 마시며, 그리고 다시 잠드는 것일가? 어린아이들이나 야만인, 건강한 젊은이나 동물들은 이러한 순환을 절대로 고민하지 않는다. 사색하지 않는 이들, 고민하지 않는 이들은 아침기상과 음식을 즐기고, 거기서 만족을 발견해 변화를 바라지 않게 된다.

 

 

그러나 이를 당연히 생각할 수 없게 되어버린 사람들은 흐르는 나날 속에서 굶주린 듯한 참다운 생활의 순간을, 그 반짝임을, 전체적인 의의와 목적으로 향한 그 엄청난 시간과 가정들을 추구한다. 그러한 순간 그들은 창조자와의 결합을 느끼며, 보통 때라면 우연이라 여겼을 것들가지도 의욕적이고 능동적인 것으로 느끼게 된다. p71

 

 

오늘날의 고통은 우리에게 모든 존재 방식을 결속시켜주는 위대한 연대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언제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인내할 수 없다는 말은 반드시 극복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p104

 

한번이라도 자신을 내던져본 사람이라면, 한번이라도 위대한 확신을 실행하고 운명에 스스로를 내맡겼던 사람이라면 그는 실로 절대적인 자유를 누릴 준비가 되어 있는자다. 그는 더 이상 지상의 법을 따를 필요가 없으며, 대신 세계 속으로 홀로 떨어져 전체의 움직임을 따라야 한다. 이것은 매우 간단한 원리를 통해 행해지는 일이므로 아주 어린아이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p129

 

 

 

생의 모든 형태는 그의 곁에 있었다. 그는 모든 사랑의 환영과 슬픔, 자신의 죽음에 대한 수백 가지의 불안에 끈질기게 시달리며 살아왔다. 그는 단두대 위에 서 있는 자신을 보았고, 목 위로 서늘한 칼날이 내리쳐지는 것을 느꼈으며, 관자놀이에 탄환이 날아와 박히는 아픔을 체험했다.

 

하지만 직접 경험하는 순간, 그 두려움은 매우 쉽고 간단한 것이되며, 기쁨과 승리가 된다. 이 지상에 두려운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착각과 망상 속에서 스스로 두려움을 만들어낼 뿐이다. 불안에 가득 찬 마음은 선과 악을 가치와 무가치를 , 소망과 두려움을 만들어 우리 안에 자리잡게 한다. p131

 

 

 

우리에게 말이란, 화가의 물감과 같다. 말은 끊임없이 소멸하고 탄생한다. 그러나 진정으로 훌륭한 말은 많지 않다. 나는 지난 70년간 말에 있어서만큼은 새로운 경험을 해보지 못했다. 물감은 농도와 혼합을 통해 셀 수 없이 많은 색감을 가지지만, 그렇다고 제멋대로인 것은 아니다. 이처럼 말도 수없이 많은 종류가 있다 해도 크게 분류해 보면 모두가 좋아하는 말, 정감 없는 말, 사랑스러운 말, 거리는 말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천만 번을 써도 별상관없는 일상적인 말이 있는가 하면, 더없이 조심스럽고 정중하게 써야 하는 말고 있고, 절대 내뱉어서는 안 되는 무서운 말도 있다.

 

 

내게 행복이라는 것은 이 모든 것에 해당되는 말이다. 그것은 내가 늘 사랑해오며 즐겨 들었던 말인 동시에 아름다운 것, 좋은 것, 슬픈 것, 무서운 것이었다.

 

이 짧은 단어 하나에 놀랄 만큼 무겁고 빛나는 것, 즉 황금을 연상시키는 어떤 의미가 내포되어 있음을 깨달을 수 있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구름 속의 번갯불과도 같은 철자의 짧은 광채, 웃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울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근원적인 매력과 감성으로 가득찬 단어 , 이를 제대로 느끼고 싶다면 그 곁에 얄팍하고 거친 니켈 조각처럼 매력 없는 단어를 놓기만 하면 된다.

 

 행복이라는 단어는 사전이나 교실로부터 생겨난 말이 아니다. 그것은 창출되거나 합성된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완전하고, 이미 완성되어 있는 것이다. 햇빛이나 꽃처럼 하늘과 땅으로부터 온 것이다. p184

 

 

 

또한 부유함으로 나를 지배했던 대중들 앞에서 경멸의 말을 듣고 부르르 떨며 주먹을 쥐었던 순간들, 손수 기운 웃옷을 입고 모임에 참석했던 어느 겨울밤, 잠 못 이룬 채 누워 과연 무엇 때문에 이 삶을 계속 지속시켜가야 하는지를 고민했던 그 모든 밤들, 여관의 식탁에 앉아 함께 웃고 익살을 떨면서도 정작 마음은 비참하고 슬펐던 그 모든 밤들, 가망 없는 사랑과 이상을 잃은 채 실패로 돌아가 버린 계획들과 치명적인 자기 조소의 시간들, 그러나 불행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과연 나는 이 중에서 어떤 것을 가장 내 기억에서 삭제하고 싶어할까?

 

 

그러나 그래서는 안 된다. 그 어떤 것 하나도, 심지어는 가장 괴로웠던 시간조차 내 마음대로 지워서는 안 된다. 나는 이러한 시간들을 통해 나를 찾아왔던 수백 가지의 기억들을 꿈꾸듯 굽어본다. 그토록 많은 낮과 밤, 그 많은 시간들, 그 많은 밤들을 차분히 곱아본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아무리 합해도 내 삶의 십분의 일도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다른 삶들은 어디로 사라져버린 것일까? 수천번의 낮과 수천번의 밤들, 수백만 번의 순간들은 어디로 그 모습을 감춰버린 것일까? 나는 더 이상 그것들을 기억할 수 없고, 그것들 역시 더 이상 눈을 떠 나를 바라보려 하지 않는다. 그날들은 모두 희미한 과거가 되어버린 채, 돌이킬 수 없이 내 삶을 스쳐지나간 것이다.

 

 

오늘 저녁 나는 어디에 머무르게 될까? 그것들이 다시 한번 깨어나 내 마음에 모든 것을 명료히 일깨우고 그토록 갈망하던 과거의 시절들을 환영처럼 불러일으킬 순간은 과연 다시 올 것인가?p205

 

 

인간이 삶이 개미나 새의 그것보다 힘들다고 생각지 말라. 오히려 우리는 그들보다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우리는 삶의 잔인성과 죽음의 불가피성을 비탄이 아닌 순수한 절망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사람들은 자연의 무의함, 혹은 잔인성을 받아들인 뒤에야 비로소 그것에 맞서 그 모든 것을 하나의 의미 구조로 환치시킨다. 그것이야말로 개미나 새가 아닌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유일한 행위이며, 그 외의 것들은 그저 삶을 조금 더 윤택하게 만들어주는 작은 도구에 불과하다.p207

 

 

이처럼 누군가와의 재회는 그리운 과거, 되찾기 힘들지만 다시 불러낼 수 있는 과거와 일맥상통한다. 과거를 통해 지금의 내모습을 가늠해보는 일은 언제나 기쁨과 슬픔을 동반한다. 즐거움과 부끄러움을 함께 느끼도록 만든다. p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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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세의 책 앞에서는 늘 서성인다.

거듭 읽게 된다.

지나고 보면 다시 구름처럼 지나가버린 이야기..

하지만 다시 또 그분과의 교류가 또 이어지고 말 듯...

 

 어느새 삼월이다. 짧은 이월이 지루했다. 막막한 마음으로 자식들을 바라보았다. 백팔배를 넘어서 이백배로 하루를 시작했다. 내일이면 꾀가 날지도 모른다. 남편보다 자식들이 나를 더 아프게 할 것이라는 스님의 말씀을 절절히 느끼며 어느 결에 눈부신 봄 앞에 선다. 환한 세상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묵묵히 나를 지나치지만 그들의 가슴속엔 어떤 문제들이 도사리고 있을까. 사람들, 어미들의 얼굴에는 상심의 그늘이 앉은 듯 보인다. 나또한 누군가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으리라.

 

하나를 넘고 나면 또 하나의 고개가 앞을 가로 막고 그것을 다시 넘으면 더 큰 고개가 버티고 있다. 그것이 인생이란 것을 알면서도 헤어나지 못하는 중생이 되고 있다. 한 고개를 넘으면 고개를 넘지 못할 때와는 이미 다른 사람이 되어 있는 것인데, 그러며 깨닫고 성숙해지는 것인데, 달게 받으며 깊은 사람으로 나아감을 주저 말아야 할 것이다.

 

들뜬 거리가 보인다. 사람들의 걸음이 바쁜 듯 즐거운 듯도 느껴진다. 이 순간만이라도 이 자리에서 깨어있어야 하겠다. 문제에는 분명 해답이 있을 것이다. 지금은 다 놓아두고 경쾌한 음악에 마음을 싣고 봄을 맞이해야 하겠다. 기지개를 펴며 일어서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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