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궁해지면 넘친다
군자는 곤궁함을 지키지만 소인은 곤궁해지면 넘치게 된다.<공자세가>
공자에게도 어려운 시절이 있었다. 자신을 서줄 군주를 찾아 상갓집 개처럼 초라하게 천하를 주유하던 어느 날 그는 자신의 삶이 서글퍼졌다. 공자가 조나라를 떠나 송나라에 도착해 큰 나무 아래에서 예에 대해서 강의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나타난 송나라의 사마환퇴가 공자를 위협하면서 나무를 뽑아버리는 등 모욕감을 주었다. 제자들이 서둘러 떠날 것을 재촉하자, 공자는 하늘이 자신에게 덕을 이을 사명을 주셨는데 환퇴가 나를 어찌하겠냐고 되물었다 . 그러나 결국 공자는 그곳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공자는 가는 곳마다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았다. 그가 하는 말은 아무런 메아리 없이 허공 속에 사라졌다. 성미 급한 자로가 “군자도 이처럼 곤궁할 때가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공자가 위와 같이 답변했다. 군자란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자신의 길을 벗어나지 않으며 어려운 때일수록 정도를 걷는다. 늘 일정하기에 평정심을 유지하고 고요한 내면에서 깊은 사유가 우러나온다. 날뛰다가 수그러들기를 반복하는 삶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열쇠는 상대편에게 있다
젊었을 때부터 흰머리가 되도록 사귀었으면서도 새로 사귄 듯한 이가 있는가 하면, 길에서 우연히 만나 잠깐 이야기하고도 옛날부터 사귄 것 같은 사람이 있다.<노중련.추양열전>
제나라 출신의 유세가로서 양나라 효왕의 문객이 되었던 추양은 동료 양승.공손궤등의 참소를 받아 타국에서 객사할 처지에 놓인다 . 간신들의 헐뜯음에 속아 넘어간 효왕은 옥리에게 명해 그를 감옥에 잡아넣었고, 여기서 추양은 자신을 변호하는 장문의 상소를 올리게 된다.
모든 것에는 흠결이 있다
황금에도 흠이 나고 백옥에도 티가 생길 수 있는 날이 있다. 일에는 빨리 해야 할 것과 서서히 해야 할 것이 있으며, 사물에는 <단점에>구속되는 경우와<장점에>의지하는 경우가 있으며, 그물에는 촘촘한 것과 성긴 것이 있다.
마찬가지로 사람에게는 잘하는 점도 있고 못하는 점도 있다. 어떻게 하는 것이 모두 옳을 수 있으며 사물 또한 완전할 수 있겠는가? 하늘도 오히려 완전하지는 못하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집을 지을 때는 기와 세 장 모자라게 덮어 하늘의 완전하지 못함에 맞춘다. 천하에는 등급이 있고, 만물은 완전하지 못한 채로 나온다.<귀책열전>
송나라의 원왕 때 누군가가 한 말이다. 원왕은 귀갑을 싸리나무 가지로 태워 점을 쳤다. 귀갑을 태우면 그 거북의 등딱지 위에 하나의 모양이 나타났다. 줄이 서로 엉키고 무늬는 조화를 이루었다. 복공에게 이것을 점치게 하면, 말하는 것마다 모두 맞았다. 그래서 나라의 귀중한 보물로 간직했는데, 이 사살이 이웃 나라에 까지 알려졌다. 또 소를 죽인 뒤 그 가죽을 벗겨 정나라에서 나는 오동나무에 씌워 북을 만들자, 풀과 나무가 각각 흩어져 무장한 군사로 바뀌었다.
싸우면 이기고 치면 빼앗는 데 있어서 원왕을 따를 사람이 없었다.
살다보면 우연의 일치가 계속될 때가 있고, 좋은 일이 연이어 벌어질 때가 있다. 오만하고 자기 중심적인 인간은 이것이 모두 자기가 잘난 탓이라고 생각한다. 거북점이 숭배되는 것도 이러한 이치에서다. 그러나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다. 좋은 일이 이어질수록 더욱 대비하고 몸을 가지런하게 해야한다.
곧은 길은 굽어 보인다
너무 곧은 것은 굽어 보이고, 길은 본래 꾸불꾸불하다.<유경, 숙손통열전>
숙손통에 대한 사마천의 논평이다. 도가의 지혜와 능력을 갖춰 말과 용모를 살피기에 뛰어났고 세상 돌아가는 이치에 밝았던 손숙통이 나아가고 물러나는 절차를 시세의 변화에 맞추어 바꿔서 마침내 한나라 유학이 종정이 된 이유를 그 사고의 유연성에서 찾은 것이다. 숙손통의 삶은 자칫 변절자의 것으로 비칠 수 있으나 그건 말이 억양의 굴곡과 악센트의 강약에 실려서 의미를 전하듯이 우리에게 무언가를 전한다는 것이다. 삶의 본질을 길의 리듬으로 비유한 명언 중의 명언이다.
항상의식을 깨워 경계하라
일어날 때는 반드시 쇠락할 것을 염려하고, 편안할 때는 반드시 위태롭게 될 때를 생각하라.<사마상여열전>
천자가 사마상여가 올린 글에 화답하는 노래를 지은 것 가운데 일부다. 은나라 탕왕과 주나라 무왕은 지극히 존엄한 지위에 있으면서도 존경하고 삼감을 잃지 않앗으며,순임금은 큰 법칙을 밝혀서 언제나 스스로 되돌아보고 자신의 잘못을 살폈던 것을 두고 한 말이다. 편안하면 곧 불편해하고 더 편안한 것을 좇는 인간들의 입장에서 이 실행은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
하늘과 사람과 땅의 이치
충만함을 지속하려면 하늘과 더불어 가야하고, 기울어지는 것을 안정시키고자 하면 다른 사람과 함께해야 하며, 사리를 절제하고자 하면 땅의 이치로 해야 합니다. 말을 낮추고 예물을 두텁게 해서 그에게 보내십시오.<월왕구천세가>
범려의 간언을 듣지 않고 군사를 일으킨 구천은 정예병사를 모두 동원한 오나라 군대에게 부초산에서 졌다. 구천은 남은 병사 5천 명을 후퇴시켜 회계산을 지키게 했는데, 부차는 추격하여 그들을 포위하면서 그의 숨통을 죄어오고 있었다. 이때 범려가 한 말이다. 결국 구천은 용서를 빌어 오왕의 신하가 되었고 그후 회계산의 치욕을 씻기 위하여 쓸개를 핥으면서, 복수를 노려 종국에는 부차를 무찌르고 자결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것은 목숨을 구하는 애걸복걸의 편지가 아니라, 왕의 어리석음을 꾸짖는 준엄한 문장이었다. 충신을 멀리하고 간신을 가까이했다가 비참한 말로를 맞은 국왕들의 연대기를 제시하면서 효왕에게 올바른 판단을 촉구하는 글은 비장미가 흘러 넘친다. 위의 인용문은 그 한 대목이다.
사람을 알고 모르고는 오래 사귄 여부에 있지 않고 상대방을 진심으로 대하는가에 달려 있다는 말이다. 진심으로 대하면 지나는 길에 일산 밑에서 잠깐 얘기를 나눌지라도 서로의 마음이 스며들어 일체가 되지만, 사귐의 목적이 따로 있다면 평생을 사귀어도 기름과 물처럼 겉돈다는 말이다. 또한 그 사람이 진정 사귈만한 사람인지를 먼저 알아보아야 한다는 뜻도 넌지시 전하고 있다.
이 글을 본 효왕은 사람을 보내 추양을 풀어주고 마침내 상객上客으로 삼았다.
깃털이 배를 가라앉힌다
깃털도 많이 쌓으면 배를 가라앉히고, 가벼운 물건도 많이 실으면 수레의 축이 부러지며, 여러 사람의 입은 무쇠도 녹이고, 여러 사람의 비방이 쌓이면 뼈도 녹인다.<장의열전>
장의가 연횡책을 기치로 내걸로 위나라로 떠나기 전에 한 말이다. 위나라는 영토도 좁고 병사도 적은데 사방에서 초나라나 한나라 같은 강력한 제후들이 핍박하고 있으므로, 그것이 쌓이고 쌓이면 결국 망하는 수순을 밟는다는 얘기다. 힘 있는 진나라를 섬기게 되면 초나라나 한나라가 공격할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결국 애왕은 합종에서 빠져나와 진나라와 우호조약을 맺었다.
손쓸 수 있을때를 지나치지 말라
나는 죽은 사람을 살려내지는 못한다. 이는 내가 스스로 살 수 있는 사람을 일어날 수 있도록 한 것뿐이다.<편작, 창공열전>
편작의 말이다. 월인은 편작의 이름이다. 그가 어떤 태자의 몸을 낫게 해 사람들이 죽은 사람도 살려낼 수 있는 명의라고 칭송하자 엄격히 구분하여 말한 것이다. 편작은 신통한 능력으로 환자의 오장을 투시할 수 있었다. 그러다보니 질병의 뿌리가 훤히 보여 맥을 짚지 않고도 처방을 할 수 있어 맥을 짚는 척만 할 정도였다. 그는 의원이 되어 제나라에 머물기도 하고 조나라에 머물기도 하였는데, 조나라에 있을 때 편작으로 일컬어졌다.
어떤 상황이든 손쓸 수 없는 경지에 이르면 그땐 어떤 처방도 효험이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말하고 있다.
포물선의 법칙
만물이 왕성해지면 곧바로 쇠약해져 떨어지는 것은 천지의 변하지 않는 이치입니다. 나아가고 물러가는 것, 굽히고 펴는 것 이때에 따라 바뀌는 것은 성인의 영원한 도리입니다. 그래서 나라에 도가 시행되면 나아가서 벼슬하고, 나라에 도가 시행되지 않으면 물러나 숨어야 합니다.<범저.채택열전>
채택이 진나라 범저에게 공을 세웠으니 마땅히 물러나야 한다고 권한 것이다. 인생은 포물선을 그린다. 현명한 사람은 자신이 포물선의 정점에 위치한 순간을 잘 감지한다. 세상은 쇠락한 뒤 다시 피어난다. 변화에 순응하지 않는 삶은 꺾이게 마련이다. 포물선의 아래쪽에는 또 다른 삶이 나를 기다리고 있지만, 단지 떨어지는 느낌이 싫어서 이를 거부하니 비극이 시작된다.
높을수록 편한 것과 위태로운 것
도란 높을수록 더욱 편하지만, 권세는 높을수록 더욱 위태롭다. 혁혁한 권세를 가진 자리에 있으면 몸을 망치는 날이 오게 마련이다.<일자열전>
사마계주의 충고를 듣고 나서 사흘 뒤, 송충과 가의는 궁궐 문밖에서 마주쳤다. 두 사람은 서로 잡아당겨 다른 사람을 피해 대화하다가 서로 스스로를 탄식하며 이와 같이 말했다. 이들은 세상의 이치를 알아가는 듯했다. 그러나 어찌하랴? 생각만 그러할 뿐 권력에서 몸을 빼낼 수 없을 만큼 깊이 들어가 있는 상태였던 것을.
인재는 덕을 먹고 자란다
1년을 살려거든 곡식을 심고, 10년을 살려거든 나무를 심으며, 백 년을 살려거든 덕을 베풀어야 한다. 덕이란 인물을 두고 하는 말이다.<화식열전>
결국 인물을 키우라는 말이다. 교육은 백년지대계라는 말도 한 인물을 키우는데 얼마나 많은 힘과 노력이 필요한지 설명해 준다. 당시 시대적 상황이 모든 인물들을 받아들일 만큼 여유롭지 않았지만, 그것은 역설적으로 뛰어난 인물들이 생각의 나래를 펼칠 더 넓은 공간을 마련해 주었다.
나의 허물을 통찰하라
(눈동자는)다른 곳의 미세한 털은 볼 수 있어도, 자신의 눈썹은 보이지 않는 법입니다.<월왕구천세가>
사람은 가까운 자신의 허물은 못 보고 항상 멀리 있는 남의 허물을 보려 한다. 반대로 자신이 아픈 것은 잘 알면서도 남이 아픈 것은 역시 잘 모른다. 허물은 바로 자신의 몸에 있지만 멀리 있다고 생각하고 자신이 꼬집은 살이지만 그 아픔을 능히 짐작하지 않는다. 이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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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두고 종종 들여다 보면 참 좋을 책이다. 다시금 들춰보며 마음에 새겨본다.
아직도 얼굴이 화끈거리고 붓기가 가라앉지 않았다.
어젯밤 우유가 상한 것을 버리지 않고 얼굴에 발라두었는데 하도 매끈거리고 좋은 느낌이어서 그냥 바르고 잔 것이 문제가 되었다. 한 시간만 두고 씻었더라면 좋았을 터인데 욕심을 부리다가 화를 불러온 것이다. 그 화기가 눈까지 올라왔고 볼과 눈 주변이 온통 붉은 빛이 되었고 조금씩 가렵기도 하고 술을 먹은 이 같기만 한 것이다. 얼음찜질도 하고 출근길에는 아이스크림을 사서 얼굴에 대고 있었고 또 일터에서는 녹차 팩으로 열을 식혔다. 아침보다는 덜 한 것 같지만 여전히 화기가 남아 불편하고 보기에도 흉했다.
어떤 일에서든 욕심은 반드시 화를 불러옴을 새삼 깨닫는 주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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