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만권을 읽으면..

연암 박지원의 글 짓는 법/박수밀/돌베개

다림영 2014. 2. 7.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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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땅이 아무리 오래되어도 끊임없이 생명을 낳고 , 해와 달이 아무리 오래되어도 그 빛은 날마다 새로우며, 서적이 아무리 많아도 그 담긴 듯은 제각기 다르다. 그러므로 날고 헤엄치고 달리고 뛰는 생명체 중에는 아직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것도 있고, 산천초목에는 반드시 신비한 영험함이 있다. 썩은 흙에서 버섯이 자라나고, 썩은 풀에서 반딧불이가 생긴다.

<초정집 서문>

 

사람과 사물이 생겨날 때는 진실로 원래는 구별이 되지 않았으니 , 남과 나는 모두 사물이었다. 하루아침에 자기를 남과 대비해서 라 일컬으며 달리하게 되었다. 이에 천하의 무리들이 비로소 어지러이 자기를 말하고 사사건건 라 일컬었으니, 이미 그 사사로움을 이겨낼 수 없게 되었다. <에오려 기문>

 

무릇 동물의 성질도 사람과 같아서 피로하면 쉬고 싶고, 답답하면 시원하게 뻗치고 싶으며, 구부리면 펴고 싶고, 가려우면 긁고 싶다. 말이 비록 사람에게 먹이를 얻어먹기는 하지만 때때로 제 스스로를 풀어서 물이 있는 연못 사이에 내달리게 해 울적하거나 근심스러운 기분을 마음껏 발산하도록 해 주어야 한다. 이것이 동물의 성질에 순응하고 기분에 맞게 하는 방법이다.<열하일기>,<태학 유관록>

 

친구가 없다고 탄식할 것이 없이 책과 함께 노닐면 된다. 책이 없으면 구름과 놀이 내 친구고, 구름과 놀이 없으면 하늘을 나는 갈매기에 내 마음을 의탁하면 된다. 나는 갈매기가 없으면 남쪽 마을의홰나무를 바라보며 친구 삼아도 되고 잎 사이의 귀뚜라미도 구경하며 즐길 수 있다.무릇 내가 사랑해도 그 시기하거나 의심하지 않는 것은 모두 나의 좋은 친구다.<선귤당농소>

 

 

만물을 관찰할 때는 제각기 안목을 갖추어야 한다. 나귀가 다리를 지날 때엔 오직 귀가 어떠한가를 보고, 비둘기가 뜰에서 거닐 때는 오직 어깻죽지가 어떠한가를 보아야 한다. 매미가 울 때는 오직 가슴이 어떠한가를 보며, 붕어가 물을 삼킬 적엔 오직 아가미가 어떠한가를 보아야 한다. 여기에 모두 정신이 드러나며 지극한 오묘함이 붙어있다. <이목구심서>2

 

좋은 벗이 마음에 있어도 오래 머물게 하지 못하는 것은 꽃가루를 묻힌 나비가 올 제는 즐겁고 잠깐 머물면 마음이 바쁘다가 가 버리고 나면 애틋해지는 것과 같다.<선귤당농소>

 

참된 정이 드러남은 고철이 못에서 활기차게 뛰놀고, 봄 죽순이 성낸 듯이 흙을 뚫는 것 같고, 가식된 정이 나타남은 먹물이 평평하고 매끄러운 돌에 발린 것 같고, 기름이 맑은 물에 떠 있는 것과 같다. <이목구심서>2

 

 

개구리 소리는 마치 멍청한 원님 앞에 사나운 백성들이 몰려와 소송을 제기하는 것 같고, 매미 소리는 공부를 엄격하게 시키는 서당에서 시험 일이 닥쳐 글을 소리 내어 외는 것 같으며, 닭 울음소리는 올곧은 한 선비가 자기 임무로 여기고 바른 말 하는 것 같았다. <추해서 운종교를 거닌 이야기>

 

내가 번번이 잠자코 응하지 않으면, 발끈해서 낯빛을 붉히고 손을 치켜들고 노려보는데, 눈썹은 개 자 모양으로 찡그리고 손가락은 마른 마디 같아, 굳세고 삐죽삐죽한 모습이 문득 대나무 모양이었다.<죽오기>

 

 

우리나라의 서화담 선생이란 분이 외출 나갔다가 길에서 울고 있는 자를 만났다오. “너는 외 우느냐?”물으니 , 그가 이렇게 대답했다오. “저는 세 살에 눈이 멀어 지금 마흔 살입니다. 예전에 길을 갈 때는 발에 보는 것을 맡기고, 물건을 잡을 때는 손에 보는 것을 맡기고, 소리를 듣고서 누구인지를 분간할 때는 귀에다 보는 것을 맡기고, 냄새를 맡고서 무슨 물건인가를 살필 때는 코에다 보는 것을 맡겼습니다.

 

 사람들은 두 눈만 가졌지만 저에게는 손과 발과 코와 귀가 눈 아닌 것이 없었습니다. 또 어찌 손과 발, 코와 귀뿐이겠습니까? 해가 뜨고 지는 것을 낮에는 피곤함으로 보고, 물건의 모습과 빛깔은 밤에 꿈으로 보앗습니다. 아무런 장애도 없고 의심과 혼란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길을 가는 도중에 두 눈이 별안간 맑아지고 눈동자가 저절로 열렸습니다. 천지는 드넓고 산천은 뒤섞여 온갖 사물이 눈을 가리고 온갖 의심이 마음을 막았습니다. 손과 발, 코와 귀는 뒤죽박죽 착각을 일으켜 온통 예전의 일상을 잃어버렸습니다.

 

집이 어디인지 까마득하게 잃어버려 홀로 돌아갈 방법이 없기에 울고 있습니다.“ 그러자 화담선생이 말했다오. ”네가 네 지팡이에게 물어본다면 지팡이가 응당 저절로 알 것이다.“

 

그러자 소경이 말했다오. “제 눈이 이미 밝아졌으니 지팡이를 어디에다 쓰겠습니까?” 화담선생이 말했다오.“도로 네 눈을 감아라. 바로 거기에 네 집이 있을 것이다. ” <요술이야기 후지>

 

 

 

글이란 뜻을 드러내면 그만일 뿐이다. 제목을 앞에 두고 붓을 들때마다 옛말을 더올린다거나, 애써 경전의 뜻을 찾아내 그 뜻을 빌려 와서 근엄하게 만들며 글자마다 무게를 잡는 자는, 비유하자면 화공을 불러서 초상화를 그리게 할 때 용모를 가다듬고 화공앞에 앉는 자와 같다.

 

눈동자는 움직이지 않고 옷의 주름은 쫙 펴져 있어 평상시 모습을 잃어버리니, 아무리 훌륭한 화공이라도 그 참됨을 얻기는 어렵다. 글을 쓰는 것도 또한 이것과 뭐가 다르겠는가? <공작관문고자서>

 

말이란 꼭 거창할 필요가 없다. 도道는 터럭과 같이 아주 미세한 데서 갈린다. 도에 부합한다면 기왓조각이나 벽돌이라고 해서 왜 버리겠는가? 그러므로 도올禱은 흉악한 짐승이었지만 초나라의 역사책에서는 그 이름을 사용했고, 몽둥이로 사람을 때려죽여 매장하는 자는 아주 악한 도둑이지만 사마천과 반고는 그에 대해 썼던 것이다. 글을 짓는 사람은 오직 참되면 된다. <공작관문고 자서>

 

한 점의 먹을 찍는 사이는 하나의 눈을 깜박이거나 숨을 한 번 내쉬는 시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눈 한 번 깜빡이고 숨 한 번 내쉬는 사이에 벌써 작은 옛날, 작은 지금이 이룩된다. 그렇다면 하나의 옛날과 하나의 지금도 역시 크게 눈 한 번 깜빡이거나 크게 숨을 내쉬는 순간이라 이르지 않을 수 없다. <일산수필 서문>

 

 

 

사람들은 단지 일곱가지 정 가운데 슬퍼야만 눈물이 나오는 줄 알 뿐, 일곱가지 정이 모두 울음을 자아내는 줄은 모른다네. 기쁨이 지극하면 울 수가 있고, 분함이 사무쳐도 울 수가 있네. 즐거움이 넘쳐도 울 수가 있고, 사랑이 극에 달해도 울 수가 있네. 즐거움이 넘쳐도 울 수가 있고, 사랑이 극에 달해도 울 수가 있지. 너무 미워해도 울 수가 있고, 욕망이 가득해도 울 수가 있다네. 맺힌 감정을 푸는 데는 소리보다 더 효과가 빠른 것이 없지. 울음은 하늘과 땅 사이의 우레에 견줄 만하네. 지극한 정을 펼친 것이 저절로 이치에 맞아 떨어진다면 울음이나 웃음이나 뭐가 다르겠는가? 사람의 정이 지금껏 이러한 지극한 감정을 겪어 보질 못해 교묘하게 일곱가지 정으로 나누어, 슬픈 감정에 울음을 짝지은 것이라네.<통곡하기에 좋은 장소>

 

 

 

연암골에 계실 때 일이다. 아버지는 하루 종일 대청에서 내려오시지 않는 날도 있었고, 간혹 사물을 응시하며 한참 동안 묵묵히 말이 없으시기도 했다. 당시 아버지는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비록 지극히 미미한 사물들, 이를테면, , , , 벌레와 같은 것도 모두 지극한 경지를 지니고 있단다. 그러므로 이들에게서 하늘이 부여한 자연의 현묘함을 엿볼 수 있지.”

아버지는 매양 시냇가의 바위에 앉으시기도 하고, 나직이 읊조리며 천천히 산보하시다가 갑자기 멍하니 모든 것을 잊으신 것 같은 모습을 하기도 했다. 때때로 묘한 생각이 떠오르면 반드시 붓을 들어 써 두셔서 잔글씨로 쓴 종잇조각이 상자에 가득 찼다.

 

 

 

무릇 하늘과 땅 사이에 흩어져 있는 것들은 모두가 이 책들의 정기라네. 본시 방 가운데서 제 몸과 물건을 바싹 가로막고 본다고 해서 구할 수 있는게 아니지. 그러므로 포희씨가 문文을 관찰한 것에 대해 우러러 하늘을 살피고 굽어 땅을 살폈다고 한 것이네. 공자는 포희씨가 문을 관찰한 것을 훌륭하게 여겨 이어 말하길, ‘가만히 거처할 때는 그 말을 완미玩味한다했네. 무릇 완미한다는 것이 어찌 눈으로 보고 살피는 것이겠는가? 입으로 맛봐야 그 맛을 얻고, 귀로 들어야 그 소리를 얻으며, 마음으로 이해해야 그 정수를 얻는 것이라네.<소완정에 대한 가문>

 

 

 

(글을 끝마쳤으면)잠시 내버려 글상자에 넣어두고, 눈으로 보지 말고 또 가슴에서 깨끗이 싯어 몰아내어 마음에 담아 두지 않습니다. 그렇게 하룻밤 또는 2,3일을 잔 뒤에 일어나 다시 그것을 취해봅니다. 내가 내 글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느슨하게 만든 뒤에 남의 글을 보듯이 하면, 옳은 것은 즉시 그 옳음이 드러나고 그른 것은 즉시 그 그른 점이 드러납니다. 그른 것은 버리기 어렵지 않습니다. 이건창<답우인논작문서>

 

나는 지금에야 진리를 알았다. 마음에 선입견을 갖지 않는(寫心)사람은 귀와 눈이 폐가 되지 않으나, 귀와 눈만을 의지하는 사람은 보고 듣는 것이 자세하면 할수록 병통이 된다.<하룻밤에 강을 아홉 번 건넌 기록>

 

소리와 색은 외부의 허상, 곧 외물外物이다. 외물이 항상 귀와 눈에 폐를 끼쳐 사람으로 하여금 그 보고 듣는 올바름을 이와 같이 잃어버리게 한다. 하물며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그 험하고 위험함이 강을 건너는 일보다 더 심해, 보고 듣는 것이 수시로 병폐가 됨에랴! 나는 장차 연암 산중으로 돌아가 다시 앞의 시냇물 소리를 들으며 이를 검증해 볼 것이다. 아울러 자기 몸 챙기는 데 약삭빠르면서 자기의 총명함을 스스로 믿는 자들에게 경계하고자 한다 <하룻밤에 강을 아홉 번 건넌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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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없다고...’를 적으며 불현 듯 돌아가신 친정아버지가 떠올랐다. 조막막한 우리에게 먹을 갈게 하시고 신문지를 활짝 펴서 그곳에 글을 쓰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보였다. 돌아보니 한적한 휴일의 오후 그렇게 먹을 갈고 글을 쓰며 친구처럼 마음을 의탁 하셨던 게다.

지금의 내 모습을 보니 그때의 아버지 같다. 특별한 교류의 친구가 없어도 늦은 밤 일터에서 책과 벗하며 지극한 음악을 듣고 있으니 아무런 마음이 일지 않으며 평온하기만 하다.

어느덧 해가 또 그렇게 넘어가고 어둠이 깊어간다. 어쩌면 바이올린 선율이 이리도 깊은지 ..

연암의 글을 다시 뒤적이며 오늘을 접는다.

언젠가 나도 깊은 글을 지을 수 있으리라 믿어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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