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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주말의 일기

다림영 2014. 1. 13.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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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밤 꿈속은 장황했다. 어딘지 모를 방이었는데 바닥에 물이 넘치고 있었다. 가족과 작은 아이들도 왕왕 보였다. 스님께서는 꿈은 꿈 일뿐이라 하셨으나 들은풍월로 물이 넘치니 내용은 상관치 않고 내심 기대를 하게 되었다.

 

날씨가 좋아서였는지 거리는 들떠보였고 내겐 단 한 분의 손님도 없었다 . 꿈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마음을 접을 무렵, 3주 전 쯤 물건을 구입한 여자가 쭈뼛거리며 들어왔다. 알고보니 어린 시절 학교 후배였고 먼저 가져간 것을 다른 것으로 바꾸고 싶어 했다. 물건의 상태도 괜찮은 듯 보여 거절할 수는 없었다. 그녀와 상담을 하고 있을 때 단골손님이 앞의 손님과 같은 문제로 나를 방문했다.

 

두 사람의 일이 진전이 되고 있지 않은 상태였다. 첫 번째 손님은 도저히 고르지 못하겠다며 누군가에게 전화를 하더니 그를 가게로 불러냈다. 그때 인사하고 지내던 중년의 여자가 딸을 데리고 반갑게 들어왔으며, 뒤를 이어 안면이 있는 동네 할머니까지 맞이하게 되었다. 좁은 가게 안이 사람으로 꽉 차게 된 것이다. 꿈속처럼 물이 넘치듯 정신없는 일이 짧은 몇 분 사이에 벌어졌다. 경기가 좋지 않아 하루에 한 분의 손님도 오지 않는 경우가 가끔 있는 시절, 처음 겪는 일이었다.

 

스님의 법문으로 하루하루 내 안을 살피는 날들 속에서 누구에게도 서운케 말아야 하는데 하는 마음뿐이었다. 손님들이 원하는 대로 물건을 꺼내주며 일을 보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좀 걸렸다. 세 번째 들어왔던 모녀는 소근 거리며 그들 나름대로 구경을 하고 있었다. 나는 모녀에게 특별한 마음을 쓰지 못했고 그저 조금 기다려주려니 했다. 나의 행동이 그들을 서운케 한 것은 분명해 보였다. 모녀는 불현 듯 짧은 인사를 남기고 총총히 나가 버렸다. 들어온 순서대로 일을 마쳐야 하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웃으며 미안하다고 인사를 건네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모든 손님을 어찌 어찌 해결을 다하고 보낸 후 계산기를 다시 두드리는 순간, 아차 싶었다. 그랬다. 계산 착오로 첫손님에게 적지 않은 금액을 더 내준 것이다. 뒤에 기다리는 손님 때문에 서두르고 침착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내내 마음이 아리고 쓰리고 지속적으로 그런 것들이 올라왔다. 그 금액이면 주말의 장을 보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을 먹일 수 있었을 터인데 하며, 가슴 한쪽이 예리한 칼날에 비인 듯 아파왔다. 큰 손해가 나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으로 여기며 마음을 재워야 했다. 시간이 좀 지나자 이것저것 많이 먹어봐야 좋을 것도 없으니, 관두게 되어 잘 되었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저녁식사시간이 되어도 밥을 먹고 싶은 생각이 일지 않았다. 손님들을 다 보내고 헛헛한 기운이 들어 빵 한 조각을 먹은 터였다. 밤은 깊어가고 배는 지속적으로 어떤 신호를 보내왔으나 식사는 그것으로 끝내기로 했다. 오후 사건의 여파만은 아니었다. 언젠가 하루 한 끼를 건너뛰는 것, 간헐적 단식이 건강에 좋다는 얘길 들은 기억이 있어서였다.

 

건강에 있어서 내가 먹는 것이 나를 만든다라는 일념으로 살고 있다. 요즘 들어 달콤한 것으로부터의 유혹에 넘어가는 경우가 종종 생겨나 다짐하던 차였다. 물 한 잔을 들고 오늘을 돌아보며 정리한다. 적지 않은 금액으로 가족들에게 맛난 것을 먹이며 즐거워 할 수도 있었지만 그로 하여 몸은 무거워졌을 것이다. 나이 들며 육체적 건강을 무엇보다 앞에 두어야 하지만 마음건강은 그보다 먼저 챙겨야 함을 알고 있다. 순간순간 욕심에 물들지 않으며 맑은 기운으로 빈 듯이 늙어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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