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자 부스러기에 액체로 된 약품을 서너 방울 떨어뜨렸다. 꽃이 있는 화분마다 조금씩 놓아두었다. 이젠 저도 두 손을 들겠지, 백기를 들것이다 하고 손을 탁탁 털었다.
다음날 출근하면서 철문을 올리는데 후다닥 도망가는 녀석 때문에 나는 또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 분함을 감출길이 없었다. 꽃 목을 있는 데로 부러뜨려 놓았다. 그리고 퇴근하면서 약품과 함께 화분에 살짝 얹어두고 간 조그만 그릇들을 엎어놓았다. 먹을 것에 약을 뿌려 놓은 것이 녀석의 화를 돋구었나보다. 꽃의 뿌리가 허옇게 드러나도록 화분의 흙을 있는 데로 파 헤쳐 놓았다. 꽃대가 기운 없이 휘청 이고 있었다.
나는 또 다시 머리를 써야 했다. 이것이 도대체 몇 번째인가. 문을 열자마자 약국으로 달려가 쥐를 잡는 끈끈이를 샀다. 이제 넌 정말 죽었다! 난 더 이상 너를 용서 못해! ...
끈끈이를 녀석이 들어오는 틈으로 두 개나 놓고 퇴근했다.
세상에 이럴 수는 없었다. 꽃의 목을 또 분질러 놓고 그 자리만 살짝 피해 다녀간 것이다.
이런 나쁜 놈이 있나! 동생말로는 백년은 먹은 쥐 일지도 모른단다. 사람 머리꼭대기에 올라가 세상을 다 내려다보고 있는 것 만 같았다. 무서웠고 두려웠다. 만약 가게 안에라도 침입한다면....
그러면 나는 끝장이다. 언젠가 한번 쥐 때문에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것이다.
다시 다음날, 먹으면 밝은 곳에 나와 죽는다는 쥐약을 사서 여기저기 뿌려놓았지만 거들떠도 보지 않는 녀석을 볼 수 있었다. 날마다 나의 꽃만이 목표인지 모조리 꺾어 구석에 쌓아놓는 쥐 때문에 속을 끓이는 나날이었다.
도서관에서 빌려온 <모던수필>이란 책을 읽게 되었다. 그중 김광섭의 ‘꽃을 먹는 쥐’ 라는 수필이 내 눈을 번쩍 뜨게 했다.
“..생각하니 바로 세모거나 연초의 일이다. 밤을 자고 나니 이군의 책상위에 꽃이 다 없어졌다. 밤새 쥐가 달려들어 다 먹어 버린 것이 주위의 사정으로 판명되었다. 이 이야기를 듣고 나는, ‘쥐가 꽃을 먹는다!’
이렇게 부자연한 마음으로써 웃고 말았다. ‘아마도 부잣집에 오는 쥐와 가난한 문학 학도의 방에 오는 쥐는 미각이 좀 다른갑다.’ 하고....“
난 이 글을 읽고 굉장한 것을 발견한 아이처럼 손뼉을 쳤다. 아하 쥐가 꽃을 먹는구나! 꽃을 먹고 꽃의 향기를 즐기고 꽃을 좋아하는구나!....
반평생을 살면서 귀족 같은 쥐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몇 며칠 쥐를 잡는데 일조를 한 동생도 웃기만 하였다.
그러나 제아무리 고상한 쥐라해도 그냥 놓아둘 수는 없었다. 더 이상 쥐 때문에 속을 끓이고 싶지 않았고 나의 예쁜 꽃이 하루아침에 목숨을 잃는 것을 두고만 볼 수 없었다.
쥐약으로도 잡을 수 없는 쥐, 꽃을 먹고 사는 쥐....
화분을 모두 가게 안으로 들여놓으면 될 일이지만 손이 너무 많이 가는 일이었고 나의 천일홍은 늦은 봄에 씨를 뿌렸던 탓에 아직도 만개 중이었다. 앞으로도 최소한 이십 일이상은 볼 수 있는 꽃이다. 갑자기 반짝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래 녀석이 들어오는 틈을 막으면 되는 거지, 그 간단한 방법을 여태 모르다니 내 자신이 너무나 한심했다.
버려진 무거운 벽돌을 주워 와 가게 철문을 내린 후 그 틈을 벽돌로 눌러놓기 시작했다. 며칠이 지났지만 아무런 이상이 없고 철문을 올릴 때마다 시달리던 후유증에 주춤하고 숨을 죽이며 가만가만 문을 올리고 있다.
이제 녀석은 얼씬도 못한다. 어디선가 무더기로 피어있는 천일홍 꽃향기와 기막힐 꽃 맛을 그리워하며 인적이 끊긴 깊은 가을 밤 시인처럼 고뇌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오늘 나는 청소하다가 문득 꽃잎하나 입에 넣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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