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만권을 읽으면..

의자/정호승/열림원

다림영 2013. 9. 17.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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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오랜만에 고향을 찾았다. 아침에 차를 몰고 집을 나올 때만해도 꼭 고향을 찾겠다는 생각은 없었으나, 어느새 고향이 내려다보이는 언덕길에 차를 세워놓고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는 먼저 부모님 무덤에 들러 엎드려 절을 올렷다.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눈물이 소주인 양 한참 동안 무덤가에 뿌리고 돌아서자 발길은 자연히 어릴 때 살던 집으로 옮겨졌다. 이태 전에 어머니마저 돌아가신 후 낡은 기와집엔 이제 아무도 살지 않는다.

 

오직 감나무만이 대낮인데도 환하게 불을 밝힌 듯 주렁주렁 홍시를 매달고 서 있었다.

그는 땅에 떨어진 홍시를 몇 개 주워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늘 감나무 아래에 놓여 있던 의자에 앉아 가게를 처분하고 다시 빈털터리가 된 자신의 처지를 잠시 생각했다.

다시 힘을 내야지. 어머니,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를 주세요

그는 속으로 혼자 중얼거리면서 의자를 쓰다듬었다.

그의자는 아버지가 어머니를 위해 손수 나무로 만드신 것인데 어머니는 늘 이 의자에 앉아 텃밭 위로 흐르는 구름을 바라보곤 하셨다.

 

그는 옛집을 떠나면서 의자를 차에 실었다. 이제는 왠지 감나무 밑에 그대로 버려두고 싶지가 않았다. 마침 아파트 베란다를 정리해 둥근 탁자를 놓고 가끔 차를 마시면서 멀리 산등성이를 바라보곤 했는데 늘 의자 하나가 더 있었으면 하던 참이었다.

아니, 무슨 이런 지저분한 걸 가져왔어요?’

그의 아내는 몹시 못마땅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당신하고 베란다에 같이 앉아서 술이나 한잔하려고하고 말하고는 더 이상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아내는 여전히 싫어하는 표정이 역력했지만 그는 오히려 의자에 앉을 때마다 어머니의 온기가 따스하게 느껴져서 마음이 편안했다.

 

그러던 어느 흐린 날이었다. 그러니까 그의 아내가 생활비를 벌기 위해 백화점으로 출근을 하기 시작한지 며칠 되지 않은 날 오후였다.

그는 그날 혼자 술을 마셨다. 아내를 생활전선으로 내보내고 집안에 박혀 있게 된 울적한 마음에 딱 한잔만 하겠다고 생각했던 게 그만 거푸 술을 들이켜게 되었다.

 

그런데 그날은 이상하게도 앉을 때마다 의자가 자꾸 뒤뚱거렸다.

아니, 이 의자가 왜 이렇게 흔들거리지? 이런 의자에 엄마가 평생을 앉아 있으셨단 말이야?“

술기운 때문인지 그는 의자가 자꾸 뒤뚱거리자 짜증이 났다.

에이, 다리를 잘라내든지 해야지 안 되겠어, 다리의 길이가 고르지 못하니까 이모양인 게야.’

 

그는 집안을 뒤져 예전에 가게를 운영할 때 요긴하게 쓰곤 했던 톱을 꺼내 의자를 한쪽 다리 끝을 조금 잘라냈다. 결국 아버지의 유품을 톱질한 셈이지만 의자가 제대로 반듯한 모습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의자는 여전히 뒤뚱거렸다.

아니 , 이거 왜 이러는거야?”

 

그는 혼자 중얼거리면서 다시 다른 쪽 의자 다리를 조금 잘랐다. 그런데 이번에도 의자가 뒤뚱거렸다.

, 그것 참 이상하네. 도대체 왜 이러는거야?”

그는 소주 한잔을 벌컥 들이켜고는 또 다른 쪽 다리를 잘라보았다. 그래도 의자는 여전히 뒤뚱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야아, 이거, 내 톱질 솜씨가 이 정도밖에 안 되나, 잘 될 때까지 어디 끝가지 한번 해보자.’

 

그는 포기하지 않고 눈대중을 해가며 네 군데나 되는 의자 다리를 골고루 잘랐다. 그러기를 몇 차례나 되풀이했다. 그러나 의자에 앉아보면 의자는 여전히 어느 한쪽이 짧아 자꾸 뒤뚱거렸다. 그리고 의자의 높이마저 낮아져 앉아 있기에도 몹시 불편했다.

 

그는 화가났다.술기운 탓도 있지만 이 정도 의자 하나 제대로 해놓지 못한다 싶어 더욱 화가 치밀었다.

그는 이대로 의자를 베란다 밖으로 확 집어 던져버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부모님의 유품이나 다름없는 의자를 그럴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는 하는 수 없이 마음을 가라앉히고 뒤뚱거리는 의자에 앉아 다시 술잔을 들었다. 날은 더욱 흐렸다. 어느새 창밖에는 비가 뿌리고 있었다.

 

그는 의자를 한쪽 구석으로 밀치고 슬며시 취한몸을 베란다 바닥에 눕혔다. 처량한 빗소리가 그의 마음 속으로 파고 들었다. 네 다리 길이가 고르지 않아서 의자가 뒤뚱거린 게 아니라 베란다 바닥이 고르지 않기 때문에 의자가 뒤뚱거렸다는 사실을 그는 그때까지도 알지 못하고 줄곧 빗소리에만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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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통제라.. 기가 막힐 노릇이다. 가끔 이럴 때가 있다. 처음부터 술은 삼가하고 그 누군가와 차근차근 살피면 찾았을 것이다. 아쉽게도 의자다리만 모두 잘라버리다니 다시 붙이기도 어렵고 어찌한단 말인가. 어떤 일에 있어서 자꾸만 번복되는 이상한 일이 생긴다면 반드시 작은 것부터 하나하나 여럿이 살피며 헤아릴 일이다 술에 취해 아무생각도 못하고 빗소리로 하여 서글픔이 밀려들 그 마음이 십분 이해가 되고도 남는다.

 

친구가 전화를 주었다. 치매가 오는 것은 아닌가 하며 걱정을 한다. 작은 가방 안에 전화기 충전기를 두고 며칠 동안 찾았단다. 밧데리가 다 되어 어느 집에서 분명 충전을 했는데 그 집만 생각했다는 것이다. 오늘에서야 가방에서 찾았다며 한 걱정을 했다...

다들 비슷하다. 이런 경험이 나에게도 있다. 이럴 땐 두말없이 다른이에게 찾는 것을 도와 달라고 해야한다. 어떤 선입견으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경우도 있으니..

정호승 선생님의 어른이 읽는 동화 단편집이다. 아이처럼 착해지고 맑아지기를 되뇌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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