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만권을 읽으면..

O.헨리 단편선/Kongshin

다림영 2013. 7. 26.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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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의 빵

 

미스 마더 미첨은 길모퉁이에서 조그마한 빵 가게를 하고 있었다.((세 층계를 올라가서 문을 열면, 딸랑딸랑 벨이 울리는 그런 가게이다).

미스 마더는 올해 40, 은행 통장에는 2,000달러의 예금이 있고 , 두 개의 의치와 인정이 많은 여자였다. 결혼할 기회가 미스 마더보다 훨씬 적은데도 결혼을 한 여자는 많이 있었다.

일주일에 두세 번 가게에 찾아오는 손님이 있었는데, 그녀는 이 손님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안경는 을 쓴 중년 남자로, 갈색 턱수염은 가지런히 깎아서 끝이 뾰족했다.

 

그는 강한 독일 악센트가 섞인 영어를 썼다. 옷은 여기저기 닳았거나 기웠고, 구겨졌거나 헐렁헐렁한 부분도 있었다. 그러나 언제 봐도 말쑥하고 매우 예의발랐다.

그는 언제나 딱딱해진 묵은 식빵을 두 덩어리씩 사갔다. 새 식빵은 한 개에 5센트였지만, 굳은 것은 두 개에 5센트였다. 이 손님은 언제나 굳은 식빵밖에 찾지 않았다.

 

언젠가 미스 마더는 그의 손가락에 빨강과 갈색 얼룩이 묻어 있는 것을 보았다. 그때 그녀는 그가 화가이고 매우 가난하게 살 거라고 생각했다. 틀림없이 어느 다락방에 살면서 그림을 그리고 굳은 식빵을 먹으면서, 미스 마더 가게의 맛있는 음식을 생각하고 있을거야.

 

미스마더는 고기와 잼을 넣어서 부풀린 롤빵과 찻잔이 놓인 식탁을 대할 때면, 한숨을 쉬면서 그 점잖고 화가가 찬바람이 들어오는 다락방에서 딴딴해진 묵은 빵을 먹지말고, 자기와 함께 맛있는 식사를 해 주었으면 얼마나 좋을가 하고 생각하는 일이 자주 있었다. 앞에서 말했듯이 미스 마더는 매우 인정 많은 여자였기 때문이다.

 

그의 직업에 대한 자기의 짐작이 맞았는지 확인해보려고, 어느 날 그녀는 경매에서 사온 그림 한 폭을 자기 방에서 들고 와 카운터 뒤의 선반에 걸어놓았다.

 

그것은 베니스의 풍경화였다. 장엄한 대리석 궁전- 그림에 그렇게 씌어 있었다- 의 정경이 앞쪽에, 아니 오히려 물에 비친 정경을 앞으로 하고 서 와 구름과 하늘이 그려져 있고, 명암 화법을 많이 사용하고 있었다. 화가라면 이것이 눈에 안 띌 까닭이 없다.

 

이틀쯤 지나서 그 손님이 들어왔다.

미안하지만, 묵은 빵 두 개만 주십시오.”

그녀가 빵을 싸고 있는데, “훌륭한 그림이 있네요, 아주머니.”

하고 그가 말했다.

그래요?”

 

미스 마더는 자기 계획이 맞아들어가는 것을 보고 속으로 기뻐하면서 말했다.

저는 미술과 그리고....(아니, 이렇게 빨리 화가도 좋아한다고 말해버리면 안되지) 그리고 그림을 무척 좋아해요.”하고 다른 말로 바꾸었다.

이거 좋은 그림이라고 생각하세요?”

궁전은...”

손님은 말했다.

그리 잘 그려져 있지 않군요. 원근법도 잘못되어 있고요, 안녕히 계십시오. 아주머니.”

 

그는 빵을 받아들고 꾸벅 인사하고는 바쁘게 나가버렸다.

그렇다. 저이는 화가가 틀림없어. 미스 마더는 그림을 다시 자기 방에 갖다 놓았다.

그의 눈은 어저면 그렇게도 부드럽고 상냥하게 안경 속에서 빛날까! 그의 이마는 어쩌면 그렇게도 넓을까! 한눈에 원근법을 판단할 수 있다니! 그런데도 굳은 빵을 먹으며 살고 있다니! 하지만 천재란 인정을 받을 때까지는 흔히 고생을 해야 하는 거야.

 

만일 그 천재를 2,000달러의 은행 예금과 빵 가게와 인정 많은 마음씨로 후원해준다면, 그림을 위해서나 원근법을 위해서 얼마나 좋은 일일까? 하지만 그것은 한낱 꿈이었다.

 

이제 그는 요즈음 가게에 오면 진열장을 사이에 두고 잠시 잡담을 나누다가 돌아가는 일이 잦아졌다. 그는 미스 마더의 명랑한 수다를 매우 좋아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여전히 묵은 빵을 사갔다. 케이크도, 파이도, 그녀가 사랑하는 맛있는 샐리런(구워서 금방 먹는 빵. 이것을 만들어 팔러다니던 소녀의 이름에서 딴 것- 옮긴이 주)은 하나도 사가지 않았다.

 

그녀는 차츰 여위어가고 힘이 없어보인다고 생각했다.

그가 사는 초라 한 빵에 무언가 맛있는 것을 보태주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지만, 그러나 막상 그럴 단계가 되면 좀처럼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가 수치를 느낄만한 일은 도저히 할 수가 없었다.

 

예술가는 자존심이 무척 강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스마더는 가게에 나올 때는 물방울 무늬의 블라우스를 입었다. 또 마르멜로 씨앗과 붕사()를 섞은 이상한 혼합물을 만들었다. 얼굴을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맣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것이었다.

 

어느 날, 그 손님이 여느 때처럼 가게에 나타나서 진열장 위에 5센트짜리 흰 동전을 놓고 굳은 빵을 찾았다. 미스 마더가 굳은 빵으로 손을 내밀었을 때 뚜우뚜우 딸가당 딸가당 하고 요란스레 소방차가 지나갔다.

 

손님은 누구나가 그렇듯이 얼른 문가로 가서 내다보았다. 순간 좋은 생각이 떠올라 미스 마더는 그 기회를 잡았다.

카운터 안의 맨 아래 선반에는 10분 전에 우유 배달부가 놓고 간 신선한 버터 1파운드가 있었다. 미스 마더는 빵 자르는 칼로 두 개의 굳은 빵을 깊숙이 자르고는, 그 속에 버터를 듬뿍 밀어 넣고 빵을 다시 본래대로 단단히 아물려 놓았다.

 

손님이 다시 돌아왔을 때 그녀는 빵을 종이에 싸고 있었다.

손님이 여느 때와 달리 명랑하게 잡담을 하고 돌아간 뒤, 미스 마더는 혼자서 빙그레 웃었지만, 얼마쯤 가슴이 두근거리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너무 대담했을까? 그이는 노여워할까? 결코 그렇지는 않을거야. ‘꽃말이라는 것은 있지만 음식말이라는 것은 없는 걸. 버터가 처녀답지 않게 주제넘는다는 상징은 아니잖아.

그날은 하루 종일 그 일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가 자기의 이 조그만 눈속임을 발견할 때의 광경을 상상했다.

 

그는 화필과 팔레트를 밑에 내려놓을 것이다. 거기에는 나무랄 때 없는 원근법으로 그리고 있는 그림을 얹은 이즐이 있을 것이다. 그는 퍼석퍼석한 묵은 빵과 물로 점심을 준비할 것이다. 그리고 빵을 얇게 썰 것이다. !

미스 마더는 얼굴을 붉혔다. 그분은 빵을 먹으면서 그 속에 버터를 넣은 손을 생각해줄까?

 

그분은...그때 입구의 문에 달린 벨이 거칠게 울렸다. 누군가가 요란스럽게 소리를 내면서 들어오고 있었다.

미스 마더는 부랴부랴 가게로 나갔다. 두 사람의 남자가 서 있었다. 한 사람은 담배를 피우고 있는 젊은 남자였는데,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얼굴이었다. 나머지 한 사람은 그녀의 화가였다.

 

화가는 시뻘개진 얼굴에 모자를 머리뒤로 젖혀 쓰고 있었는데 머리는 텁수룩하게 헝클어져 있었다 . 그는 꽉 움켜쥔 두 주먹을 미스 마더에게 맹렬히 흔들어댔다. 하필이면 아무것도 모르는 미스 마더에게...

이 바보!”

그는 엄청나게 큰 소리로 외쳤다. 그리고 이어 멍청이!”니 어쩌니 하고 독일어로 외쳐댔다.

젊은 남자가 그를 데리고 나가려 했다.

그냥 나갈 수 없어!”

그는 화가 잔뜩 나서 말했다.

이 여장한테 한마디 해주고 나가야겠어.“

그는 미스 마더의 카운터를 쾅 내리쳤다.

당신이 날 망쳐놓았단 말이야!”

그는 안경 속에서 푸른 눈을 희번덕거리며 소리쳤다.

알겠어! 이 주제넘은 고약한 여자 같으니라구!”

 

미스 마더는 기운없이 진열장에 기대어, 물방울 무늬 블라우스를 만지작 거렸다. 젊은 남자가 친구의 옷깃을 잡았다.

, 가세.”

이제 할만큼 했잖아.”

그냥 성난 화가를 문 밖 길거리에 끌어내놓고 다시 돌아왔다.

역시 이 말은 해두는 편이 좋겠군요. 저 사람은 블럼버거라고 합니다. 건축설계사지요. 나도 저 사람과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저 사람은 지난 석 달동안 새 시청의 설계도를 그리는 데 몰두해왔습니다. 현상에 응모할 작정으로 말이지요. 그리고 어제 간신히 선을 잉크로 그리는 단계까지 완성했습니다. 아시다시피 설계사는 언제나 연필로 먼저 제도를 한답니다. 그것이 완성되면, 굳은 식빵 덩어리로 연필자국을 지워나가지요. 그편이 고무 지우개보다 훨씬 잘 지워지거든요. 블럼버거는 그 빵을 댁에서 사 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이젠 아시겠지만, 그 버터로는.... 그 때문에 블럼버거의 설계도는 엉망이 되어버렸습니다.

 

이제는 정거장에서 파는 도시락의 샌드위치처럼 잘게 썰어버릴 수밖에는 아무 쓸모가 없어졌지요.“

 

미스 마더는 안방으로 들어갔다. 물방울 무늬 실크 블라우스를 벗고, 언제나 입고 있던 낡은 갈색옷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마르멜로 씨앗과 붕사를 섞은 혼합물을 창 밖의 쓰레기통에 다 쏟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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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이리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 수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아마 조금이라도 어떤 비슷한 일이 있어 거기에서 상상의 나래를 펼쳤을 것이다. 작가는...

다시 읽어도 재미있는 오 헨리의 단편들...

무한한 이 상상력을 어디서 찾아올 수 있을지.. ^^ 즐거운 오 헨리 단편집 읽기였다.

 

이 기막힌 미스 마더의 슬픔은 언제까지 지속되려나.. ...한숨밖에 나오지 않는다. 사람운명이 어찌 이리 꼬일수가 있는 것인지.

그는 또 어쩌면 그런 재수 없는 일이 있었던 것인지..

사실이라면 법정 소송이라도 벌였을 것 같기만 한... 이야기 이니 망정이지..

생각하고 생각해봐도 슬픈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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