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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에 대한 기억

다림영 2013. 7. 11.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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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이야기다. 살기 좋은 안양에도 물난리가 났었다. 그날 나는 여름방학 전 학기말 시험공부로 가장 늦게 교실에서 나왔다. 토요일이 아니었나 싶다. 조금만, 조금만 하다 보니 다들 가버리고 나만 혼자 남았다. 창밖을 바라보니 빗방울이 투두둑 떨어지고 있었다. 우기였으므로 별다른 생각은 하지 않았다.

교문을 막 나서는데 빗방울이 얼마나 크던지 약간 보태자면 작은 진주알만 했다. 떨어지는 빗방울의 소리는 귀가 먹먹할 정도였고 얇은 천으로 된 우산은 금방이라도 구멍이 뚫어질 것 같았다. 세상의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우렁찬 빗소리는 온 세상을 점거하고, 사람들과의 전쟁을 선포 하는 듯 했다.

 

시내로 내려오니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그 잠깐 동안의 장대비는 발목까지 물이 차게 했고 버스들은 마치 헤엄을 치는 듯 물을 가르고 달려 나갔다. 아무래도 전철이 빠르지 싶어 서둘러 역으로 향했다. 전철이 오지 않은지 한참 된 분위기였다. 계단을 오르내리기를 반복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누가 이기나 보자 하는 속셈으로 팔짱을 끼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점점 늘어만 가는 사람들 속에서 나도 차가 올 방향을 지켜보며 한 시간 이상을 기다렸다.

 

끝내 전철은 오지 않았다. 기다림에 지친 사람들은 하나 둘 역을 떠나고 있었다. 곳곳의 역이 침수되고 있다는 방송이 흘렀다. 전철은 결국 그렇게 끊기게 된 것이다. 역을 빠져 나오며 큰일이다, 조금만 일찍 서두를 것을하는 마음으로 혼자였던 나는 사람들의 발길을 따라 버스정거장으로 옮겨야 했다.

 

시내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난생처음 보는 풍경이 내 눈앞에 벌어지고 있었다. 발목 까지 오던 물은 급기야 종아리에 차고 여기저기서 물이 역류하는 것이 보였다. 한 두 대 의 버스는 사람들을 태우지도 않고 어디 론가로 달아났다. 버스가 지나가는 중앙도로에 가득 찬 물은, 남쪽 어느 바다처럼 갈라졌다가는 다시 하나가 되어 출렁였다.

 

기다려도 집으로 가는 버스는 오지 않았다. 어둠은 이미 몰려 왔다. 나는 어쩔 줄 몰랐다. 그러한 때, 어둠을 밝혀주던 불빛이 약속이나 한 듯 소리도 없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전기가 나간 것이다.

칠흑 같은 암흑…….

세찬 빗소리 때문에 잘 들리지 않던 사람들의 소리가 들렸다. 그 모든 소리는 고함으로 바뀌었다. 잠시 후 각각의 건물에선 하나 둘 촛불이 켜지고 있었다. 그 상황은 마치 도시의 사람들이 특별한 파티를 여는 것은 아닐까 싶은 영상으로 펼쳐졌다. 비가 그렇게 쏟아지지 않았다면 너무나 아름다운 풍경이었을 테고 나는 오랫동안 정신을 잃고 한자리에서 가만 서 있었을 것이다.

 

어디선가 우리 학교 학생들을 찾는 낯익은 선생님의 목소리와 호각소리가 들렸다.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다. 따뜻한 선생님의 목소리를 찾아 흔들리는 빛을 따라 발길을 간신히 옮겼다. 다리에 척척 감겨지는 물 먹은 교복치마를 부여잡고 가방을 머리에 이고 우산은 써도 소용이 없었다. 물살을 간신히 헤치며 선생님의 목소리가 크게 들리는 쪽으로 걸었다. 차도인지 인도인지는 건물을 보고 확인할 뿐이었다.

 

막막한 어둠속에서 후레쉬를 들고 호각을 부는 체육 선생님을 만날 수 있었다. 선생님의 인솔로 몇몇의 우리 학교학생들과 나는 안양 중앙성당 앞에 있는 2층의 타자학원에 오르게 되었다. 친한 친구 하나 없이 혼자 된 것이 한편으로 무서웠으나, 어떠한 각별한 세상에 발을 들여 놓은 듯 묘한 긴장으로 가만 앉아 있지 못하고 온통 젖은 모습으로 창문밖만 살폈다.

 

어두운 학원에는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학생들로 가득했다. 숨이 턱턱 막혀오고, 촛불은 꺼질 듯 말듯 타오르고 있었다. 삼삼오오 모여앉아 장대비가 쏟아지는 창밖을 내려다보기도 하고, 이런 저런 걱정의 눈빛으로 높은 곳에 매달린 시계를 올려다볼 뿐이었다. 그 수런거림과 불안한 공기와 암흑이 되어버린 시내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숨 막히던 그곳이 눈에 선하다.

 

선생님은 학교로 올라가자고 하셨다. 안양 중앙성당 옆길을 지나야 했다. 시내 거리 중 지형이 가장 낮지 않았나 싶었다. 세상에, 순식간에 물이 허리까지 차는가 싶더니 가슴까지 차올랐다. 가방을 머리에 이고 우산은 간신히 들었으나 소용없었고 마치 피난민의 형태였다. 선생님은 뒤를 자꾸 돌아보시며 우리들의 머리수를 세는 듯싶었다.

우리는 그렇게 손에 땀을 쥐고 완전히 물에 빠진 생쥐가 되어 무사히 학교언덕을 오를 수 있었다. 학교 언덕은 여기 저기 뭉텅뭉텅 쓸려나가고 있었다.

 

 

숙직실과 서무실은 한 곳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촛불은 이곳저곳에서 촛농을 떨어뜨리며 타오르고 있었다. 우리가 몹시 염려스러운 듯이 눈을 크게 뜨기를 반복하며 바라보는 듯 느껴졌다. 무겁고 무더운 습한 공기가 그곳을 지배하고 있었다.

 

교복은 온통 누런 흑 탕 물이 배어들었고 알 수 없는 냄새가 코끝을 자극 시켰다. 선생님은 일단 집에 전화부터 하라 하셨다. 어둠을 견디고 있던 검은 전화기의 손잡이를 잡고 마구 돌렸다. 교환이 연결해주는 전화기였다 울먹이며 엄마와의 짧은 대화를 간신히 마쳤다. 다행히 전화선은 끊어지지 않았다. 선생님은 자리를 비켜주시며 치마를 벗어 말리라 하셨다. 다리에 무겁게 감겨들던 교복을 너 나 할 것 없이 훌렁 벗어 여기저기 책상 모서리에 걸어두고, 흙빛으로 물이 든 누런 속치마만 입고 겨우 씻을 수 있었다.

 

찜통인지 냄비인지 커다란 곳에 누군가 라면을 끓였다. 라면의 냄새가 진동하자 정신이 흔들거렸다. 앉지도 못하고 선채로 허겁지겁 먹었다. 김치 한쪽 없이 열 명 남짓하던 인원이 둘러서서 먹어대던 라면은 그야말로 꿀맛이었다.

 

얼굴만 눈에 익던 동창들과 느닷없는 한 배를 탄 조난자가 되었다. 억세게 내리던 빗속에 갇힌 어두운 서무실, 우리의 우정은 급작스럽게 구름처럼 피어올랐다. 풋풋한 소녀들의 얘기는 지칠 줄 몰랐다. 배를 쥐고 웃으며 때로 염려서린 눈빛으로 …….

무겁고 무덥던 습기가 장악하던 칠월의 그 밤, 무지막지하던 장대비소리를 들으며 눈 한번 감지 않고 우리는 그렇게 꼬박 밤을 새웠다.

 

멈추지 않을 것 같던 비도 아침이 되니 그 완고하던 고집을 풀고 언덕너머로 사라졌다. 차편은 모두 끊겼다고 했다. 어디선가 떠밀려 내려 온 것들이 거리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고, 가로수는 대부분 꺾여 져 있었다.

 

차가 모두 끊겨 걸어가던 길에서 동네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을 따라 연신 걷고 또 걸었다. 신발은 물을 있는 대로 먹었고 그 무게는 쇳덩이처럼 무거웠다. 신발은 또한 무슨 박자를 맞추겠다는 것인지, 찍찍 소리를 쉬지도 않고 냈으며, 피부는 허옇게 부르터 일어났다. 도저히 신발을 신을 수가 없어 나중에는 신발을 벗어 손에 쥐고 맨발로 걸어야 했다.

 

길은 멀었다. 우리 동네와 안양시내 까지는 버스로 오십 분이 넘을까 하는 거리였다. 고천엘 다다르니 집에 다 온 듯한 기분이 들었지만 몇 날을 걸어온 듯 착각에 빠져 피로감이 밀려들었다.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에 그다지 넓지 않은 개천이 있었다. 다리는 끊어지고 그 형태는 찾을 수 없었다. 힘센 물살은 누구라도 잡아먹을 듯이 요동치고 그 막강함을 한 눈 에도 알 수 있었다.

4H청년들이었던 것 같다. 그들은 새끼줄로 서로의 몸을 이어 묶었다. 청년들의 가슴까지 물이 찼다. 사람들을 건네주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처럼 나 또한 그들의 팔에 안겨 간신히 내를 건널 수 있었다.

 

그 시절 산본에 친척 중 한 일가가 살고 있었다. 그녀는 물에 잠긴 쌀을 어쩌지도 못 하고 떡을 했노라고 그 무거운 것을 차를 타고 머리에 이고 왔다.

산본의 피해는 유독 심했다. 워낙에 낮은 지역 이었고 파랗고 빨갛던 지붕위에 사람들이 구조요청을 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한동안 길고 누렇던 그 긴 떡은 우리의 주식 또는 간식으로 먹던 생각 또한 지울 수 없다.

 

그 후 학기말 시험을 보았는지 그것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몇 며칠 학교의 무너진 운동장 언덕을 돋우기 위해, 저마다 집에서 세숫대야를 들고 등교했다. 날마다 줄을 이어 흙을 퍼 담고 나르던 그해 7, 돼지가 집 앞을 떠내려갔네, 한 박스의 아이스크림 상자를 건져 올려 먹었네, 똥물 속에서 간신이 살아나왔네 ……. 기타 등등의 그러한 얘기는 오랫동안 소녀들의 교실을 시끄럽게 흔들어대곤 했다.

 

안양의 산동네는 많은 것을 잃었다. 그러고 보니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동네다. 나무가 많지 않던 야트막한 산은 허물어지고 많은 인명피해를 내고 말았다. 같이 있던 중학교 건물은 수재민이 오랫동안 기거했고, 편지봉투로 쌀을 가득 담아 주일 마다 냈다. 논이 있던 친구 집으로 벼를 세우러 나가기도 했는데, 어떠한 걱정 보다 새참으로 나오던 노을 빵과 달콤한 딸기우유 생각에 젖어들곤 하던 철들지 못했던 한 소녀의 모습이 눈앞에 삼삼하다.

 

이제 비가 그쳤다. 남부지방에서는 계속 비가 내리고 있을까. 비의 큰 피해소식은 별 들리지 않으나 세상을 놀라게 한 비행기의 사고 소식이 종일 이어진다. 몸을 사리지 않았던 승무원들의 감동스런 이야기를 지면으로 본다.

반짝 해가 보이기 시작한다. 오늘 날씨는 맑음이다.

 

 

 

 

어느 블로그에서옮김.사진-1977년 7.10.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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