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엄마 미용사/

다림영 2013. 6. 24. 21:26
728x90
반응형

 

  

손가락에 작은 상처가 났다. 살점이 들리고 피가 비쳐 나도 모르게 악 소리를 지르니 한 녀석은 그만두라하고 또 한 놈은 약을 가져다 발라준다. 그래도 끝가지 잘라야지 어찌 그냥 둘 수 있냐 하니 의자에 앉아있는 아이의 마음은 영 편치 않은 모습이다.

둘째 녀석의 머리를 자르는 우리 집 풍경이다. 이제껏 한 번도 이렇게 가윗날에 베어본 적이 없었는데 뭔 생각에 홀려 미용사의 모양새가 빠지고 말았다.

 

두어 달 후에 군대에 들어가는 녀석은 스물한 살의 청년이다. 친구들은 모두 미용실에 다니지만 겉멋과 유행에 흔들리지 않고 엄마에게 제 머리모양을 맡긴다. 녀석 뿐 아니라 스물여섯 큰 아이도 마찬가지다. 우리 집 아들들의 전담 미용사는 어미인 나인 것이다. 가끔 가위를 들고 남편에게 다가가면 그는 재빨리 담배를 챙겨 밖으로 나가버린다. 까다롭기가 하늘을 찌르는 스물여섯 큰아이도 내게 맡기는데 이십 년차 이발사의 실력을 그는 믿지 못한다. 어른머리와 젊은 아이들 머리는 확연히 다르겠지만 말이다.

 

시아버님 돌아가시기 전에는 우리 집 남자는 모두 다섯 명이었다. 빠듯한 살림살이에 이발비만 해도 만만치 않았다.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이발 기계를 두고 몇 개의 전문 가위와 기타 필요한 전반적인 것을 갖추어 시아버님과 시어머님까지 머리손질을 했던 것이다. 노랗고 커다란 나일론 천을 두른 한 사람이 다소곳이 앉기 시작하면 우리 집 분위기는 금 새 미용실이 되고 만다. 잔잔한 음악이 흐르기도 하고 아니면 아이들이 즐겨보는 텔레비전 방송에 채널을 맞춰두면 시간이 조금 흘러도 큰 불평은 없다.

 

머리 자르는 기술은 어쩌다 한번 나의 머리 때문에 미용실에 들릴 때, 거울 속에 비치는 미용사의 손놀림을 유심히 살펴 얻은 것이다. 처음엔 정말 시간이 많이 걸렸고 어찌하다보면 생각지도 않은 모양이 나오기도 해서 난감한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나이는 어려도 나름대로 자신만의 스타일 이란 것이 있기에, 녀석들은 거울을 들여다보며 엄마에게 맡긴 것을 후회하고 또 후회하며 이불을 뒤집어쓰고, 식음을 전폐하기도 하면서 울어대기도 했다. 그러나 어찌하랴 이미 잘려나간 머리카락인 것을 ....

먹을 것을 쥐어주고 달래며 몇 밤만 자면 금방 자란다고 토닥이던 나의 실습기간이 희미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런 지난날들을 돌아보면 웃음이 절로 새어나온다.

 

이제 빗도 여러 개로 늘어나고 가위도 몇 개나 바뀌었고 아이들이 원하는 때에 각각의 스타일로 맞추어 보기 좋게 자를 수 있다. 그 세월이 이십년이 넘었으니 그동안의 이발 비용을 셈해보면 제법 큰 금액일 것이다. 그러나 비용도 비용이지만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가며 점점 엄마와의 대화가 줄어드는데 이발할 때만큼은 이런저런 이야기에 마음을 나누게 되니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는 것이다.

앞으로 아이들은 각자 경제적 독립을 하고 특별한 멋을 부릴 때가 되면 엄마는 찾지 않으며 세련된 머리로 손질해 주는 미용실로 달려갈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 그들이 머리 때문에 나를 찾을 때면 열일을 제쳐두고 가위를 든다. 노란 보자기를 탁탁 털어 어깨에 펼쳐 두르고 의자에 앉힌다. 제 아빠의 키를 훌쩍 넘어버린 녀석들의 머리에 물을 뿌리고 빗어 내리며 눈을 가늘게 뜨고 싸륵 싸륵 머리카락을 자르며 작은 행복을 누리는 것이다.

 

아직 멀었어? 너무 자르지 마, 앞은 내버려두고, 뒤만 치고, 옆은 조금만..... ’

손님의 요구는 많기도 하다. 한 번도 그냥 미용사에게 맡겨두지 않는다. 이 엄마미용사는 단정한 것을 좋아해서 되도록 짧게 자르기 때문일 것이다.

짧지 않은 시간 구레나룻 면도까지 마치면 큰 거울로 성큼 다가가 유심히 제 모습을 살핀다. 미용사는 까치발로 아이의 어깨를 잡고 기웃거린다. 이리보고 저리 보며 한번 슬쩍 고개를 젖히며 뒤로 넘기는 머리카락 .... ‘괜찮네’... 하고 씩 웃으면 .... 그러면 모든 것이 다 잘 된 것이다.

어쩌면 아이들 마음속에는 머리카락처럼 들쭉날쭉 모난 생각들이 자신도 모르게 자랐을지도 모른다. 그 모든 것들이 머리카락과 함께 잘려져 나가 반듯하고 단정해지기를 바래보며 밀린 집안일로 서두르는 늦은 밤이다

 

 

 

 

반응형

'글쓰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홍수에 대한 기억  (0) 2013.07.11
천일홍  (0) 2013.07.04
저녁노을  (0) 2013.06.20
오리와 페이스 북  (0) 2013.06.15
나이가 들어갈 수록  (0) 2013.06.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