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가까이 하지 못했던 풍경에 신기해하며 즐거워했다. 연신 덥다는 말이 새 나왔지만 가회동 몇 번지 였던가 일명 북촌을 낱낱이 들여다보았고 삼청동 예쁜 골목골목을 붉어진 얼굴로 걷고 있었다. 상당히 무더운 날씨였다. 우리는 어디로든 들어가 앉아 쉬어야 했다. 더는 무언가 나올 것이 없던 그 막다른 길에서 마침 화려한 이탈리안 피자집이 옆에 있었던 것이 문제였다.
음식의 가격은 밖에 표시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뉴스로 들어 알고 있었다. 그러한 사실을 떠올리며 음식의 사진만 그럴듯하게 걸려 있고 가격은 전혀 표기가 되어 있지 않은 것에 조금 불만스러워 했다. 그러나 우리도 모르게 걸음은 그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다소 침착하게만 보이는 청년이 안내해 주는 곳은 아름다운 거리의 풍경이 고스란히 보이는 창가였다. 누군가 그 곳의 문을 드르륵 닫는 순간 일어서야 한다는 것을 계속 생각 하고 있었으나 더위에 지친 몸은 나가기를 거부하며 주인의 말을 듣지 않았다.
생각보다 고급집이라는 느낌에 가져다준 차림표를 살펴야 했다. 너와 이따금 눈을 마주치며 난감해 하고 있었지만 공손히 가져다주는 물만 받고 나간다는 것은....,나가면 그만이기도 하겠지만 영 체면이 서지 않는 일이기도 했다.
우리는 우리보다 늦게 들어선 사람들보다 훨씬 더 있다가 음식을 시키게 되었다. 우리는 그 언제 이후로부터 배달시켜 먹는 만 원짜리 피자도 결코 먹지 않던 터였다. 가장 싼 것을 시키기 위해서는 시간이 좀 필요했던 것이다.
바로 맞은편에 격이 있어 보이던 그들이 있었다. 시키는 음식도 다양해서 시선이 건너가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었다. 식전에 나오는 모닝 빵에 버터를 얇게 펴 바르며 커피와 함께 들고 있었는데 나는 사실 그런 것을 참 좋아한다. 갓 구운 빵은 두고서라도 뜨거운 커피 한잔이 얼마나 굴뚝같던지 모른다. 커피향이 말할 수 없는 깊이로 퍼지던 그곳에서 커피는 두 말할 것도 없고 그 어떤 음료도 주문하지 않았다. 너를 봐서라도 콜라라도 한 잔 주문해야 하는 것은 응당 부모의 기본적 행동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냉수가 최고라는 듯 연신 들이키며 고고하게 버틸 수 있었는지, 엄마의 힘은 생각보다 대단했고 나 스스로도 놀라웠다. 유심히 우리를 지켜보는 눈은 있었다. 침착해 보이던 청년은 한병의 물 을 공손히 더 가져다 놓았고 피클 또한 수북히 담아 점잖게 손님 대우를 하는 것이었다.
너는 돌이라도 씹어 먹을 청춘이었으므로 집에서 밥을 먹고 나섰음에도 앉기 전까지 계속 배가 고프다고 주억거렸다. 엄마는 너를 위해 값도 괜찮고 먹기도 즐거운 특별한 것을 사주고 싶었다. 어쩌다 우리는 그곳에 들어가게 되었는지 지금 생각해도 알 길이 없는 것이다.
한번쯤 우리도 멋진 자리에 앉아 우아하게 창밖을 내다볼 수 있는 행복을 가질 수 있는 것이라고 나는 스스로 되뇌었다. 얘기하지 않아도 얼굴에 불편한 것들이 써 있다고 너는 자꾸만 엄마의 얼굴을 살피며 잊으라 했다. 너의 돈 얼마를 주겠다고 나의 어깨를 어른처럼 다독였다. 아침마다 어깨가 휘어지도록 거두는 세탁물 작업으로 받은 피 같은 돈을 나에게 주겠다고 하는 것이다. 정말 많이 미안했다. 제대로 사 먹이지 못해 운치 있는 거리를 걸으면서도 마음은 종이처럼 구겨지고 있었다.
예쁘고 고만고만한 가게들이 즐비한 길을 오르며 길거리 음식들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우리는 서로 눈을 마주치며 설핏 웃었는데 채워지지 않는 어떤 허기가 밀려옴을 알 수 있었다.
언덕을 내려오면서도 너는 엄마의 얼굴에 드리워져 있는 것들이 자꾸만 걸렸나보다. 나중엔 네가 너무 신경을 쓰니 떨쳤다고 괜찮다고 그땐 우리의 몸이 지쳐서 앉을 곳이 필요했다고 그러한 값이었다고 얘기했으나 너 또한 그곳에 왜 들어가자고 했는지 하며 지속적인 후회를 하고 있었다.
조금 비싼 것을 먹었는데도 너는 배가 부르지 않았다. 뭐 좀 더 사줄까 물어봐도 너는 고개를 흔들었다. 무슨 셈인지 양쪽 주머니에서 잔돈을 꺼내 손에 들고 있었다. 짐짓 서로의 마음만 헤아리며 오래된 풍문여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 우리는 안국역 지하로 들어서고 있었다.
안국 역사 한 쪽에는 천 원짜리를 수도 없이 쌓아놓고 판매하는 곳이 있었다. 우리는 서로 통했다. 특별한 말없이 들어가며 서로 찡긋 웃었다. 작은 주스 한 병을 사며 과자 하나를 더 얹으려 해도 너는 충분하다고 했다. 엄마가 생각했던 것보다 너는 훨씬 의젓했던 것이다.
오펜바흐의 ‘자클린의 눈물’을 며칠째 듣고 있다. 이 음악은 어느 소설가의 책 속에서 주인공이 얘기 한 것이다. 제목이 근사해서 책을 읽은 이후 종종 듣게 되었는데 너는 이런 무게 있는 음악을 별로 좋아하지 않을 줄 안다. 항상 네가 듣거나 연주하는 음악은 너처럼 수수하고 풋풋하고 경쾌한 것을 보니 네 마음이 밝게 느껴져 마음이 놓인다. 네가 연주하는 음악들도 엄마는 무척 좋아하지만 이렇게 비가 오는 날에는 슬픔이 깃들기도 한 음악에 묻혀 지내곤 한다. 그냥 그러고 싶은 것은 어떤 연유인지 알 수가 없다. 한참 젖어들고 나면 마음 깊은 곳에 있는 보이지 않는 묵은 상처들이 치유되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하는 것이다.
언젠가 우리의 화려한 날들이 이어졌을 때, 그 시절 나는 지금 엄마의 이 나이쯤 되면 바이올린을 배워야지 하고 마음먹었다. 그러며 동화 같은 꿈을 꾸었다. 이런 멋진 곡을 익히고 익혀 가끔 어느 광장에 나가 아름다운 연주를 하며 늙어갈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하곤 했던 것이다.
인생이란 정말 한치 앞을 모르는 것이다. 그때 우리가 이렇게 살게 될 줄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잘 모르는 낯선 길로 들어서며 조금은 암울한 시간의 강물로 우리는 흐르고 있다. 이 강물은 또 어디로 향하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가끔 소용돌이도 만날 것이고 큰 바위에 부딪치게 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부딪히면 순회하고 소용돌이에 휩싸이면 마음 중심을 잡아 유순한 길이 보이는 곳으로 몸을 이끈다면 결코 바라지 않던 곳으로는 흐르지 않게 될 것이다.
입대할 시기가 점점 다가오며 일말의 긴장으로 보내고 있는 너를 안다. 어쩌면 고행일수도 있다. 그러나 너는 잘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더불어 또 다른 훌륭한 청년이 되어 돌아오리라는 것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 모든 순간들은 너의 미래를 눈부시게 열어줄 밑바탕으로 단단하고 촘촘히 다져지는 순간 들 일테니...
다시 오늘이 시작되었다. 일터에 나와 너를 들여다보니 구름 걷히듯 그 어떤 우울도 남김없이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언제 그러한 일이 있었느냐는 듯 웃음꽃만 환하게 피어난다. 우리가 지불하기에는 다소 비싼 음식을 내려다보는 너는 무슨 생각에 젖어 있는 것인지.... 그러나 모두 지우고 너와 오붓하게 걸었던 오래되고 아름다운 그 길을 떠올린다. 순하고 세상에 물들지 않은 한 청년만 생각한다. 불현 듯 환해지는 오늘 엄마의 마음을 숨길 수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