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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어갈 수록

다림영 2013. 6. 6. 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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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만 되면 여지없이 떠오르는 풍경이 있다. 초등학교 다닐 때이다. 더없이 높고 까만 하늘엔 별이 총총했고 고만고만한 동생들과 나는 평상에 누워 별자리를 찾느라 여념이 없었다. 어머니는 옥수수와 감자 등을 쪄 내오곤 하셨다. 그럴 때면 전기를 아끼느라 불을 켜지 않았고 마당 가운데에 마련한 모깃불이 전부였다.

  

세상을 모르던 조그만 우리들은 가족이 모여 함께하는 그 밤이 좋기만 했지만 가장으로서 단단하지 못했던 아버지는 시름이 깊었을 것이다. 여름밤이면 늘 평상에 앉아 술잔을 기울이셨고 우리에게 돌아가며 노래를 부르게 했다. 동생들보다 하나 밖에 없던 딸의 고운 노래는 아버지의 무거운 피곤을 덜어드리기도 했을 것이다.

  

그때 나의 목소리는 가늘고 높았다. 음이 올라가는 노래를 티 없이 잘 부르곤 했다.

까만 밤 평상위에 펼쳐진 무대에서 반짝이는 별들을 올려다보며 두 손을 모았다. 날마다 가족 앞에서 노래 부르는 연습을 하게 되었다. 내성적이었지만 많은 사람들 앞에 서서 노래 부르는 일을 그다지 부끄러워하지 않게 되었다.

 

이따금 들려오는 개 짖는 소리와 신작로 건너 다리 위에서 울려 퍼지던 기타소리 그리고 하모니카 소리, 이웃오빠들의 낮은 노래 소리.... 모두가 깊은 여름밤을 수놓던 풍경이었다.

동네 중심을 흐르던 냇물과 함께 표표히 흐르던 그 모든 소리들이 흑백사진 속으로 걸어들어가며 선한눈빛을 지니게 한다.

  

여름밤을 가로지르던 가늘고 높던 노래는 고등학교 때까지 어떤 연이 되어 나를 이끌었다. 여린 마음의 아버지와 남동생만 넷이 있었던 나는 어떠한 다른 용기를 품을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딱히 무엇을 꿈꾸지도 않았다. 이른 아침이나 늦은 저녁마다 특별한 노래로 무언가를 전하던 모임에 들어 노래만 부르다가 학교생활을 맺게 되었다.

 

 

 

 

가끔 친구들이 내게 들릴 때면 가게에 걸어둔 흑백사진 몇 장에 시선을 고정한다. 저마다 눈도 늙어 안경을 잡고 한참씩 들여다본다. 흐리고 조그만 얼굴들을 세세히 지목하며 웃는다. 아이처럼 환해져서는 얘는 누구지? 얘가 그 앤가 ? 하며 자신의 얼굴도 찾아보며 웃음을 지우지 못하고 애틋한 눈빛으로 그 맑던 어린 날로 젖어 드는 것이다.

  

안개처럼 희미해진 옛날 그 까맣던 여름밤이 그리워진다. 가만히 눈을 감으면 그때의 풍경들이 조수처럼 밀려온다. 초등학교 첫 동창회 때 선생님을 모신 적이 있다. 어느새 십몇년이 훌쩍 넘어버렸다. 그때 선생님의 말씀이 새삼스럽게 살아나 고개를 내민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추억을 먹고 사는 것 같아 -'

뒤늦게 선생님의 말씀에 고개를 끄덕인다.

  

고향을 떠난 한 선배님이 환한 미소와 함께 불현 듯 가게에 들렸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흑백사진을 들여다보며 그 옛날 아득한 이야기 속에 우리는 빠져들었다. 별것도 아닌 소소한 사연들을 끄집어내며 좋아하고 아이들처럼 박수를 쳤다. 여기저기 희끗 한 머리를 간혹 쓸어올리며 추억의 다리 난간을 기웃대다가 아늑해진 마음으로 오늘의 강을 건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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