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산을 바라보며
태산의 모습 어떻게 말할까
제나라에서 노나라까지 푸르름 끝이 없어라
하늘은 이 곳에 온갖 신비를 모았고
산 빛, 산 그림자는 밤과 새벽처럼 갈리었다
뭉게뭉게 피어나는 구름에 가슴이 벅차 오르고
잘 새를 바라보느라 눈언저리가 뻣뻣하다
언젠가 반드시 저 정상에 올라
뭇 산의 소소함을 한번 굽어보리라.
떠나가리라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팔찌 위의 매가
배부르면 바로 날아가 버리는 것을
어찌 지붕 끝의 제비가 되어
진흙 물고 따뜻한 곳만 찾아다니겠는가.
들사람은 성격이 투박하고 얼굴이 두껍지 못하니
어찌 왕후 사이에 오래 머물 수 있을까!
아직 주머니 속 장생불사의 비방 써먹지 않았으니
내일 아침엔 남전산으로 들어가 볼까나!
눈은 내리건만
전장의 통곡소리, 아아! 수많은 새 귀신들
시름에 겨워 노래하는 외로운 늙은이
어지런 구름, 황혼 무렵 낮게 드리우더니
세찬 눈보라가 회오리바람에 뛰논다
바가지도 버려진 독에는 술도 없고
꺼진 화로 붙잡고 발그레한 불기운 느껴본다.
여러 고을에 형제들 소식이 끊겨
시름에 주저앉아 허공에 글을 쓴다.
강촌
서녘을 불태우는 붉은 구름,
구름 사이 햇살이 평지에 드리운다.
사립문에 재잘대는 참새 떼
나그네가 천리 길을 돌아왔네.
아내는 믿기지 않는 듯 바라보다
놀란 가슴 진정하고 눈물을 닦는다.
난리통에 떠돌던 몸이
살아서 돌아온 것도 우연하다.
담자락엔 이웃 사람들 가득
감탄하며 한숨쉬는 소리.
밤 깊어 다시 촛불을 잡고 보니
마주 앉은 지금도 꿈만 같다.
곡강에서
한 조각 꽃잎이 날려도 봄빛이 줄어드는데
온 천지 바람에 날리는 꽃잎, 못 견디게 시름겹다
스러지는 꽃잎 하나가 눈앞을 스치는데
몸이 상한다고 목을 축일 술을 마다하랴.
강가 작은 집엔 비취새가 둥지 틀고
부용원 높은 무덤엔 기린의 석상이 뒹군다.
만물의 이치를 곰곰이 따지면 즐기고 볼 일
무엇 하러 헛된 명예에 이 몸을 얽매는가.
꿈에 이백을 만나
사별하면 다만 울음 삼키고 말지
생이별은 언제까지나 비통하다
강남은 풍토병 많은 땅
쫓겨난 그대는 소식이 없구나!
옛 친구 꿈 속에 나타나니
그대 그리는 내 마음 알아주는 듯,
그대 지금 그물에 걸려 있으니
어찌 자유로울 수 있으랴.
생시의 혼백이 아닌가 두렵지만
길이 멀어 생사를 추측할 수 없구나
그대 혼백이 돌아오면 강남 풍경 생기 나고
그대 혼백이 돌아가면 이곳은 암흑
지는 달 빛 처마에 가득하니
그대 모습 빛나고 있는 듯
물 깊고 파도 거세니
교룡에게 잡아먹히지 마시게.
빈 주머니
덜 익은 잣은 쓰지만 그런 대로 먹을 만하고
아침 노을은 높이 떠 있어도 먹을 수 있네.
세상 사람 모두 이익 좇아 서두는데
나의 길은 고난으로 뻗어 잇구나.
밥짓지 않으니 우물물 새벽에 얼어붙은 그대로
옷이 없으니 밤엔 침상이 오싹 하구나.
주머니 비면 비웃음 당할까 저어하여
한푼 남겨 두어 간수하고 있다네.
스님 계신 곳에 묵으며
석장을 짚고 언제 여기 오셨소
가을 바람이 벌써 쓸쓸합니다.
외진 정원에 국화가 비에 꺼칠하고
못 한 자락 연꽃은 서리로 꺾이었소.
내쫓겨 와 있다고 본성이야 바뀌겠소
쓸쓸한 이곳 참선하기에 알맞지요.
반갑게 만나 이렇게 잠을 청하다 보니
농산의 달이 둥글게 비칩니다.
동곡의 노래
나그네여 나그네여 그대 이름은 자미
허연 머리 어지러이 귀밑가지 쳐졌구나
추수라야 잔나비 따라 도토리나 줍는 것
날은 차고 해는 저무는데 산 속을 헤매이네
서울에선 기별 없어 돌아갈 길 막막하고
손발은 얼어터져 살가죽은 산 송장이오
어허, 첫 노래여, 노래는 벌써 애닮구나
슬픈 바람도 날 위해 하늘에서 불어오는가.
손님이와
집 앞이나 집 뒤나 온통 봄물이라서
보이는 건 갈매기 떼 날마다 오가는 것
꽃길이사 손님 없어 쓸어 둔 적 없었소만
사립문 처음으로 그댈 위해 열엇소
요깃거리는 시장이 멀어 변변치 못하고
술은 없는 살림이라 묵은 탁주뿐이라오
이웃 할아비 더불어 대작해도 괜찮다면
울 너머로 불러다가 남은 술을 비웁시다.
봄비예찬
좋은 비 시절을 알아
봄을 맞아 생기를 주네
바람결에 몰래 밤에 찾아 들어
만물을 적시네. 가늘어 소리도 없이
들길에는 구름이 온통 컴컴한데
강 위의 배, 등불만 반짝거린다.
동틀 무렵 보이리, 그 붉게 젖은 곳에
비단 고을 압도하는 온 천지의 꽃, 꽃,꽃.
강가 정자에서
옷섶을 제쳐 두고 따뜻한 강가 정자에 앉아
느릿느릿 읊조리며 벌판을 바라다본다
강물이 흘러도 마음은 조급하지 않고
떠가는 구름 따라 생각도 유유자적
쓸쓸히 봄은 가려 하건만
무럭무럭 만물은 제 살길 찾는 구나
고향에 가고 싶어도 갈 수 없으니
답답한 마음 풀자고 억지로 시를 짓는다.
떠도는 밤에
가느다란 풀, 바람이 이는 언덕
높은 돛대,외로운 밤배
너른 들에 별은 가득 드리우고
흐르는 큰 강에 달은 솟구쳐 오른다
이름이 어찌 문장으로 드러나리?
관직은 늙고 병들었으니 쉬어야 하리!
홀홀한 이몸이 무엇 같은가?
천지간 한 마리 갈매기.
누대에 올라
꽃은 왜 높은 다락 곁에 피어 나그네 심사를 괴롭히나?
천지에 온갖 위기 도사린 지금 누대 올라 굽어본다
금강의 봄빛은 하늘과 땅 사이에서 나오고
옥루산 뜬구름 아래 고금이 바뀌었다
북극성 같은 우리 조정 영원히 바뀌지 않을 것이니
서산의 도적떼 쳐들어 올 생각 말지어다
가련한 후주의 사당은 아직도 남아 있는데
황혼에 불러본다. 제갈량이 불렀던 그 노래.
긴긴 해 강산은 고와
긴긴해 강산은 고와
봄바람 불자 향긋한 꽃내음
진흙이 풀려 제비 날아다니고
모랫벌 따사로워 졸음 오는 원앙
즉흥시
강 달은 사람과
겨우 몇 척
바람에 흔들리는 등불
한밤이 되려 한다.
물가 잠든 물오리
떼지어 조용한데
배 뒤쪽으로는
고기 팔딱거린다.
새벽에 바라본 산
반죽장 짚고 쉬엄쉬엄 오르며
흰머리 들어 산을 바라본다
푸르고 깊은 그곳 끊어진 절벽
멀리 붉게 날아갈 듯 솟은 누각
해 떠오르니 맑은 강물 보이고
따스한 기운에 객수도 풀리는 듯
봄이 온 성곽 너머로 흰눈 인 소나무
비로소 배 타고 돌아갈 생각
강변 집에서 잠을 청하며
어둠이 산길을 타고 퍼져 오는 시간
높은 다락집은 수문에 닿아있다
옅은 구름이 바위틈에 잠자고
외로운 달은 물결 속에 일렁인다
날짐승은 날다 지쳐 잠잠하고
들짐승은 먹이를 찾느라 소란스럽다
전란을 근심하느라 잠도 오지 않는데
아아! 천하를 바로잡을 힘이 없구나.
피리소리
피리소리 호젓한 가을 산, 산뜻한 바람, 맑은 달빛
누구인가?얄궂어라, 창자를 끊을 듯한 이 소리
바람결에 들려 오는 살가운 가락
달빛 아래 관산곡에 온 땅이 밝아라
오랑캐 들으면 한밤중 북으로 달아나리라
무릉곡 울리자 마원의 남쪽 정벌을 생각하네
고향 버들은 이제 다 시들어 떨어졌으련만
어떻게 수심 속에 하나 둘 돋아나는 걸까?
가을흥취
옥같이 찬 이슬에
단풍나무 시드는
무산, 무협의
가을 기운이 쓸쓸타
장강 물결은
저 하늘까지 솟아오르고
변방의 풍운이
땅에 깔려 어두워라.
무더기 국화는 다시 피어나
해묵은 눈물을 되씹게 하는가
외로운 배엔
오로지 고향 생각뿐
겨울 옷 장만에
집집마다 분주한 시간
저무는 백제성
급해지는 다듬이 가락
가을날의 흥취
곤명지는 한나라 때 만들어졌지.
현종의 행차 깃발 눈앞에 보이는 듯
조각한 직녀의 베틀은 달밤에 하릴없고,
돌로 깍은 고래의 비늘은 가을 바람에 흔들리는 듯
물결 따라 떠도는 고미는 검은 구름이 내려앉은 듯
차가운 이슬 내려 연꽃은 꽃잎 붉게 떨구었네.
변방의 산천은 하늘에 닿을 듯 험한 산길만 통하는데
강호를 떠도는 고기잡이 늙은이 하나.
서각의 밤
세모의 시간은 짧은 해를 재촉하고
하늘 끝 눈서리 개인 차가운 기주의 밤
새벽녘 북소리 피리 소리 심상치 않은데
삼협의 수면 위에 흔들리는 별빛
들판에서 들려오는 통곡 소리, 전쟁 소식을 알리고
어부와 초동의 노래 여기저기 들려 온다.
제갈량, 공손술 모두 황토로 돌아갔으니
인간사 모든 일 될 대로 되라지.
비
가랑비 살짝 내려 깊은 미끄럽지 않고
조각구름 흩어졌다 흘러간다.
검붉은 절벽 솟은 곳 어두컴컴하지만
흰 물새 날아가는 하늘 저 편은 환하구나.
가을 햇살 젖은 땅 싱그럽게 비추고
차가운 가을 강 물결 소리 변함 없네.
사립문 물레방아와 마주해 있어
덜 마른 벼 찧는 향기
가을들판의 노래
가을 들판은 날로 황량해 가는데
차가운 강물에 하늘이 흔들린다.
배는 강어귀에 매어놓고
집은 마을 외딴 곳에 정해 두었지요.
대추가 익으면 남들 따가라 하고
잡초 수북한 아욱밭은 손수 김맵니다.
늙은 이 몸 밥 먹을 때에는
개울 물고기에게도 나누어 주지요.
강물을 떠돌며
강물을 떠돌며
향수에 젖은 객
망망한 천지에
한 석은 선비.
조각구름은
하늘 저만치 떨어져 있고
긴긴 밤 달빛은
마치 누구처럼 외롭구나.
지는 해 앞에서
마음은 오히려 씩씩해지고
서늘한 가을 바람에
병마저 나을 듯하다
예부터,
늙은 말 길러 둔 것은,
굳이,
먼 길을 가자는 건 아니었다.
두보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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