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좋은 글

독락팔곡(獨樂八曲)권호문

다림영 2013. 5. 3.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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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생략

 

초가삼간이 좁아 겨우 무릎을 움직일 수 있는 방에는, 지행높고 한가한 사람아

거문고와 책을 벗 삼고, 소나무와 대나무로 울타리를 치니

찢기어진 생계와 가슴에 품고 있는 회포,

속세의 명리를 생각하는 마음이 어디서 나리.

 

때때로 지는 해 맑아지고 갈대꽃은 강가에서 붉은데

비낀 안개와 도는 바람에 버들이 날리거든

낚시대 비스듬히 안고 세속 일을 잊고서

갈매기와 어울리는 모습, 그것이 어떠합니까?

 

 

선비는 무엇을 일삼아야 하느냐, 뜻을 높게 가질 뿐이로다.

과거급제란 명예로움은 내 뜻을 손상시키고, 이익과 출세란 덕을 해치는 것이로다.

모름지기 책 가운데서 성현을 모시고

언어와 정신을 낮이나 밤이나  수양하여

내 한몸이 바르게 된다면 어디인들 가지 못하리.

굽어보고 쳐다보며, 왕래가 크고 당당하니

내 갈길을 알아서 뜻을 세우지 아니하리오.

벽처럼 선 낭떠러지가 만 길은 되는데,

내 마음은 흔들림 없이 불변하니

책 읽어 옛 성현을 벗으로 삼는 모습, 그것이 어떠합니까?

 

 

한유가 산에 들면 산이 깊지 않을가 두려워하고, 숲에들면 숲이 빽빽하지 않을까 두려워하며

마음이 한가하니 들판에서 밭을 갈고, 쓸슬하여지니 물가에서 낚시를 드리울 수 있는,

살 만한 곳을 정하였느니

시골 사람의 의복에다 야인의 관을 쓰고 살면서, 물고기와 새밖에는 벗이 없도다.

향기로운 꽃이 핀 들판에 비가 개고, 온갖 나무들에는 꽃이 떨어진 뒤에

명아주 지팡이를 짚고서, 싶 리 되는 시내 머리를 한가하게 오고 가는 뜻은

마치 증점씨가 기수에서 목욕하고, 무로 오면서 바람을 쐬며 돌아오는 산뜻한 기분과,

정명도가 꽃과 버들을 좇아 노리던 기분도 이렇던가 어떻던고.

따스한 햇볕과 청명한 날씨에 부는 바람이 불거니, 밝거니 하여 흥취가 내 앞에 가득하여 지느니,

유유하고 태연한 가슴속이, 천지만물과 더불어 상하로 함께 흘러가는 모습, 그것이 어떠합니까.

 

내 집은 저 범래무의 초야요, 길은 정원경이 뜰 앞의 꽃과 대나무 아래에다 세갈래 길을 열고 놀던 곳이로다.

평생동안 덧없는 인생이 이렇다고 어떠하리.

진실로 세상을 피해 숨어살면서 뜻을 구하고, 죽어서 영영 돌아오지 않으면

고관이 타는 수레와 머리에 쓰는 관도 진흙처럼 천한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오.

종묘에 두는 그릇에다 공적을 새기는 것도 티끌과 흙에 지나지 않는도다.

서슬이 시퍼런 날카로운 칼날일지라도 이 뜻을 끊으랴.

한창려는 세 번이나 상서를 올림에, 그 때마다 귀양을 가 벼슬길이 막혔는데,

그것은 나의 뜻에 각기 달랐고 두자미는 삼대예부를 올림에 드디어 벼슬길이 트였다고,

내 마침내 그러한 도를 행하랴.

두어라, 그들은 벼슬로써 행하나, 나는 의로움으로써 행하는데, 벼슬을 원치 않음에

세상만사가 모두 천명에 달려 있는 모습, 그것이 어떠합니까?

 

<고전시가의 모든 것>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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