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좋은 글

인간의 위대함外/헤르만 헤세

다림영 2013. 5. 23.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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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위대함

  

우리들의 마음은 원초적인 것, 영원해 보이는 것을 향해서 애정을 가득 간직하고 기꺼이 다가간다. 마음은 파도 치는 듯한 박자로 움직이며, 바람으로 호흡하고, 구름과 새들과 더불어 날아오른다. 그리고 빛과 색채와 음향의 아름다움에 대해 애정과 감사를 느낀다.

  

마음은 그것들에게 속해 있음을, 그것들과 친숙한 관계에 있음을 안다. 그러면서도 결코 영원한 지상으로부터, 영원한 하늘로부터는 완전히 받아들여지지 못한다.

위대한 것이 하찮은 것에게 던지는 눈길, 노인이 아이에게, 지속적인 것이 무상한 것에게 던지는 저 무덤덤하고 반쯤 조소적인 눈길밖에는 받지 못한다.

  

결국 우리들은 자만에 차 있듯, 겸허한 마음이든, 아니면 우쭐하거나 절망에 빠져 있든 간에, 침묵을 지키고 있는 자연에 언어를 부여하려고 한다. 영원한 것에 시간성과 유한성을 억지로 갖다 붙이려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찮음과 일시적인 것을 느낄 때 우리 인간은 우쭐하면서도 동시에 절망에 차게 된다.

  

가장 변절을 잘하지만, 사랑할 능력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 가장 젊지만 가장 깨어있는 사람이 있다. 가장 많이 잃고 가장 많이 고뇌를 느낄 수 있는 대지의 아들인 인간이 있다. 그러나 보라, 우리의 무력함은 깨지고, 우리는 더 이상 왜소하지도 반항적이지도 않다.

  

우리는 더 이상 자연과 하나가 되기를 갈망하지 않는다. 우리는 자연의 위대함 앞에 우리 인간들의 위대함으로 맞선다. 자연의 지속성에 대항해서 우리들의 변화를 내세우며, 자연의 침묵앞에 우리들의 언어를 내세운다.

또한 영원해 보이는 자연 앞에 죽음에 관한 우리의 지식을 내세운다. 자연의 무관심 앞에 사랑할 수 있고 고뇌할 수 있는 우리들의 마음을 내세운다.

  

영혼의 움직임

 

현미경을 통해서 보면 다른 때는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고, 뭔가 추악한 것, 한 점의 더러움이 마치 경이로운 별들이 뜬 하늘처럼 찬란해 보일 수 있다. 그와 똑같이 아직은 존재하지 않는 참된 심리학의 현미경 아래서 보면 영혼의 아주 작은 움직임까지 모두 보인다. 그것이 비록 다른 때는 아주 나쁘고 어리석고 미친 것일지라도, 성스럽고 기도하는 듯한 경건한 연극이 될 수도 있다. 영혼 속에서는 한 가지 예만 보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가장 성스러운 것의 모형, 즉 삶의 한 비유적인 모형이다.

  

낙원의 발견

많은 사람들이 자연을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 말은 자연의 매력이 마음에 들고 거부감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밖으로 나가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고 기뻐하면서도 들판을 마구 짓밟고, 마침내는 꽃과 가지를 꺾는다. 그러고는 그것들을 금세 내던져 버리거나 집으로 가져와 시들 때까지 방치한다. 그런 식으로 그들은 자연을 사랑하는 것이다.

  

날시가 화창한 일요일이 되면 그런 애정을 기억하면서, 자신들의 선량한 마음에 스스로 감동한다. 그들은 사실 자연을 향한 착한 마음이 필요없다고 한다. 그 까닭은 인간은 자연의 왕관이기 때문이다.그래서 왕관일지 모른다!

  

나는 점점 더 탐욕스럽게 사물들의 심연속을 들여다 본다. 바람이 무수한 소리를 내면서 나무들 꼭대기에서 울리는 것이 들린다. 시냇물들이 협곡을 통해 쏴쏴 줄기차게 소리 내며 흐르는 것이 들린다. 나직하고 고요한 강물들이 평야를 지나 흘러가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나는 이 음향들이 신의 언어인 것을 알았다. 이 어둡고도 원초적인 아름다운 언어를 이해하는 것이 낙원을 다시 발견하는 것임을 알았다.

  

이제 나는 자연을 개인적으로 사랑하기 시작했고, 마치 외국어를 말하는 친구이자 여행의 동반장게 귀를 기울이듯이 자연의 언어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런 가운데 나의 우울함은, 치유되지는 않았지만 고상해지고 정화되었다. 나의 귀와 눈은 예리해졌고, 섬세한 음들의 차이를 이해하는 법을 배웠다. 나는 모든 생명의 박동 소리를 점차 더 가까이 더 명료하게 듣기를 갈망했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것들을 이해하고, 또 어쩌면 시인의 언어로 그것들을 표현할 재능을 갖게 되기를 갈망했다. 그러면 다른 사람들도 그것에 가까이 다가와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신선하게 정화시켜 주는 모든 것, 유년 시절의 원천을 방문 할 수 있을 것이다.

  

한때 그것은 소망이고 꿈이었다. 그것이 정말 실현될지 나는 알지 못했었다. 나는 보이는 모든 것에 대해 사랑을 전하면서 그것이 가장 가까이 다가갔다고 여겼다. 그리고 어떤 사물도 결코 무관심하게 혹은 경멸적으로 바라보지 않는 습관을 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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