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좋은 글

꿈꾸는 인생/ 마르셀 프루스트

다림영 2013. 5. 23.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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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심은 명성보다도 사람을 도취시킨다. 욕망은 모든 것을 꽃피게 하고 소유는 모든 것을 시들게 한다. 인생은 살기보다는 차라리 꿈꾸는 것이 낫다. 산다는 것 역시 꿈구는 것이지만 거기에는 신비의 그늘이 훨신 엷고 또한 명료성이 결여되어 있어서 반추하는 야수들의 희미한 의식속에 흩어진 꿈과도 같이 그저 무겁고 불투명한 꿈이다.

  

세익스피어의 희곡은 극장에서 상연되는 것보다는 서재에서 상연될 때가 훨씬 아름답다. 불멸의 연인을 창조한 시인들은 풍정이 없는 값산 여인숙의 하녀밖에 모르는 경우가 더러 있지만 , 이에 반해 주위 사람들로부터 선망의 대상이 되는 방탕자들은 자신들이 영위하는 삶을 결코 자각치 못하며 오히려 삶이 그들을 이끈다.

   

나의 친지 중 몸이 허약하고 조숙한 상상력을 지닌 열 살짜리 소년이 있다. 이 아이는 자기보다 나이 많은 어느 소녀에게 순수한 정신적 사랑을 바치고 있었다. 소년은 소녀가 지나가는 것을 보려고 몇 시간이나 창가에 서 있곤 했으며 그녀의 모습을 보지 못할라치면 눈물을 흘렸는데, 보았으면 본 대로 또 눈물을 흘렸다. 그가 소녀의 곁에 있는 일은 아주 드물었고 그나마도 아주 짧은 시간에 지나지 않았다. 이리하여 그는 거의 매일 밤 잠을 설쳤고 식음을 전폐하다시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소년은 창가에서 몸을 던지고 말았다. 사람들은 그의 죽음이 소녀에게 접근하지 못한 절망 때문에 몸을 던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 사람들은 그의 죽음이 소녀와 아주 오랫동안 얘기를 나눈 뒤의 사건임을 알게 되었다. 소년는 소년에게 아주 상냥하게 대해 준 모양이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그 황홀한 도취의 순간이 앞으로 두 번 다시 되풀이되지 않으리라고 생각한 소년이 자기 앞길에 놓인 무의미한 날들을 상상하고서 그처럼 스스로 생명을 끊으렿 ks 것이라고 생각했다.

  

소년이 가끔씩 어느 친구에게 털어놓은 이야기를 미루어보면, 소년은 그 여왕과 만날 때마다 언제나 뭔가 처음 기대했던 것과는 다르다는 느낌을 경험한 모양이었다. 한데, 그렇게 소녀와 헤어지고 나면 다시금 소년은 자신의 풍부한 상상력을 통해 현재 거기에 없는 소녀에 대해 또 다시 그 모든 힘을 되찾고 그리하여 못 견디게 만나고 싶은 생각에 다시 사로잡히는 것이었다.

  

소년은 언제나 자신이 뭔가 기만당했다고 느기는 이유를 불안정한 주위 사정 탓으로 돌리려고 했다. 어떻든 마지막으로 소녀를 만났을 때, 소년은 그 묘한 환상의 힘으로 자신의 감수성을 충족시킬 고도의 완벽성에로까지 연연을 이끌고가, 그의 그러한 완벽하지 않은 완벽속에서 절대의 완벽과 비교하고는 끝내 절망하여 창가에서 몸을 던진 거였다.

  

그 이후 소년은 백치가 되어 계속 오래 살았으나 그 추락으로 영혼과 사고를 잃어버렸고, 보지 않고도 그 소녀임을 알게하던 그녀의 말까지도 잊어버렸다. 소녀는 온갖 애원과 협박을 물리치고 소년과 결혼하였으나, 그에게 그러한 사실조차 알려 주지 못한 채 몇 년 후 세상을 떠나버렸다.

   

인생은 바로 그 소년을 닮았다. 우리가 인생을 사랑하는 것은 인생을 꿈꾸는 까닭이다. 인생을 살려고 해서는 안 된다. 인생은 이 소년처럼 어리석음 속에 몸을 던지는 것이다. 물론 그것은 순간의 일이 아니다. 인생에서는 모든 일이 눈에 보이지 않는 가운데 서서히 타락해 가는 것이다.

  

10년 세월이 지나면 사람들은 더 이상 자신의 꿈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혹은 그것을 부정하고 마치 황소처럼 그날그날의 풀을 뜯기 위해 살게 된다. 그리하여 우리가 죽음과 결혼한 후 우리들 의식의 불멸성이 탄생할지야 누가 알겠는가? <즐거움과 나날>, 안암출판사. 1990

  

-세계의 명 수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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