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만권을 읽으면..

산.티.아.고 거룩한 바보들의 길/리 호이나키의 카미노 순례기

다림영 2013. 4. 2. 17:13
728x90
반응형

 

 

리 호이나키 Lee Hoinacki1928년 미국 일리노이주링컨에서 태어낫다. 1946, 일면 세상을 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해병대에 입대해 중국에서 근무했다. 그곳에서 인류학자들이 말하는 문화적 충격을 경험했고, 이것은 그에게 평생 지을 수 없는 흔적을 남겼다. 제대후 대학에 들어간 호이나키는 토머스 머튼의 <칠층산>을 읽었다. 이 책은 그의 인생에 강한 영향을 주었으며 그의 삶의 주요 변화들을 이글어내는데 촉매같이 작용한 몇 권의 책들 가운데 처음이었다.

 

 1951, 도미니크 수도회에 들어간 그는 1959년 맨해튼의 빈민구역에서 사목활동을 했다. 1960년 스페인어를 배우기 위해 푸에르토리코로 갔고, 거기서 신학자이며 철학자인 이반 일리치를 만나 평생 벗이 되었다.

 

2년후 , 그는 칠레로 갔다. 그리고 4년 후에는 멕시코로 가서 그곳에 있던 일리치의 연구소에서 그와 합류했다. 1967년에 미국으로 돌아와 결혼했고, 대학원(UCLA)에 들어가 정치학을 공부했다. 학위를 마친 다음, 가족과 함께 베네수엘라로 갔다.

 

몇 년 후 다시 미국으로 돌아온 호이나키는 일리노이주에 있는 실험 대학인 생거몬 주립 대학에서 교수로 df했다. 그러나 그는 돈 잘 벌고 정년도 보장되며 거기다 다양한 부수입과 평생 복지 혜택도 많은 정교수 자리를 사직하고 스스로 농사를 짓고 사는 농부가 되었다. 거기에는 그의 가족이 경제주의/화폐중심 사회 구조 밖으로 얼마나 멀리 벗어날 수 있을지 알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호이니키는 철학, 정치학, 라틴아메리카 연구, 신학을 공부했고 생거먼 대학, 남 일리노이 대학, 펜실베니아 주립대학, 그리고 독일의 올덴부르크 대학, 브레멘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이 책 <산티아고, 거룩한 바보들의 길(원제:EI Camino: Walking to Santiago de Compostela)>은 그가 65세 되던 해에 프랑스 남부의 국경마을인 생장피드포르에서 피레네 산맥을 넘어 스페인 북부를 횡단하며, 중세 이후로 많은 사람들이 성 야고보의 무덤이 있다고 믿는 산티아고까지 800킬로미터에 이르는 카미노를 32일에 걸쳐 홀로 걸으면서 하루하루 느낌과 사색을 기록한 책이다.

 

그의 사색은 종교적 감수성에 대한 역사적 고찰에서 현대 건축과 기술발전에 대한 비판, 그리고 공간에 대한 신학적 이해에 이르기까지 지금까지 어떤 산티아고 순례기에서도 볼 수 없었던 시간을 뛰어넘는 영적 통찰력을 보여준다.

 

그의 또 다른 저서로는 <Stumbling Toward Justice>한국어판:정의의 길로 비틀거리며 가다, 녹색평론사)<Dying is not Death>등이 있다.

 

 

본문중에서

 

정말 길을 잃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했던 또 다른 경험이지만.... 어쩌면 내게 큰 도움이 될지도 모를 좋은 경험이다. 소로우는 이렇게 썼다.

 

우리는 버려지고 나서야 비로소, 다른 말로 말하면 세상을 잃고 나서야 비로소 우리 자신을 찾기 시작하고 우리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우리의 관계가 얼마나 영원한 것인지 깨닫기 시작한다.

    

소로우가 말한 의미는 오늘 내가 처한 상황까지 확장될 수 있다. 바로 순례 첫날, 나는 지금 이곳에 나와 함께 있는 사람이 누군지, 내가 이 순례를 성공하기를 바라는 사람이 누군지 깨달았다. 잃어버리는 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것들에 더 가까이 갈 수 있다. 절망의 순간에서 더 깊은 평안을 느낄 수 있고 심지어 더 큰 기쁨도 누릴 수 있다.

 

 

콤포스텔라에 점점 가까워질수록 하루하루가 더욱 더 사랑스럽고 황홀하며 경이로움으로 반짝이는 것 같다. 마음을 절실하게 사로잡는 이 기븜은 서로 다른 여러 영역에서 동시에 온다. 오늘 여러 산을 넘는 동안 따뜻한 햇살이 온몸을 포근하게 감싼다. 그 따뜻한 열기는 내면 깊숙한 곳까지 관통한다. 산에서 내려다볼 때 카미노는 여러 마을들을 이리저리 배회하며 휘돈다.

 

조금 있으면 만나게 될 마을은 언제나 여행자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교회의 첨탑들은 황새들의 둥지가 베푸는 은총으로 충만하다. 좁은 골목길을 따라 어우러진 봄의 풍성한 색깔들은 마을을 더욱 더 화려하게 만든다. 집집마다 2층 난간과 창가에는 봄꽃들로 가득한 화분들과 상자들이 놓여 있고 새봄 꽃망울을 활짝 편 곷들이 내뿜는 색깔과 향기는 활짝 열린 공간을 더욱 환하게 밝힌다.

 

집앞 작은 마당에는 키 작은 장미 덩굴들이 그 아름다운 자태를 아낌없이 보여준다. 이런 곳에 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행운아인가!

 

확 트인 전경 속에서 두 가지 즐거운 놀라움을 발견한다. 하나는 거대한 채소밭이고 다른 하나는 얌전한 개들이다. 지금까지 카미노를 걸으며 한번도 채소밭을 지나서 간 적이 없었다.

 

폰세바돈에서 마주친 두 마리의 개를 빼고는 내가 만난 거의 모든 개들은 사슬에 묶여 있었고 사납게 행동하며 위협하듯이 마구 짖어댔다.하지만 지금 여기서 보는 개들은 모두 사슬에 묶여 있지도 않고 지나가는 행인을 보고도 자기 집 앞에 조용히 엎드려 있다. 스페인에서 이해하지 못할 또 하나의 작은 수수께끼다.

 

 

어떤 낭만주의 자들은 발로 걷는 것이 우리의 눈을 뜨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워즈워스는 걷는 것을 부활의 깨달음으로 향하는 인생 여정이라고 찬양했다. 그는 시골로 가서 개인을 정신적으로 성숙하게 만드는 길이라고 믿었던 전원적 문학 전통을 찾았다.

 

이런 일부 낭만주의 작가들은 그렇게 함으로써 걷는 것에 일종의 구원과 부활로 이끄는 특별한 지위를 충분히 부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에게는 문명보다 경작이 오히려 걷는 사람들이 이룩한 성과들을 더욱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는 은유였다.

    

    

 소로우는 걷는 것에 대해 다른 사람들보다 더 완전하게 이해하고 있다. 그는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자신과 자연 세계에 대해서 훨씬 더 구체적이며 살아있는 경험을 할 수 있는지 이렇게 주장한다.

 

 

우리는 <걸어서>여행하면서 먹을 것이 풍부한 시골에서 야생 과일들을 채취하고 야생동물들을 사냥하면서 생활할 수 있다. 빠르게 이동하면서 길에서 생계를 꾸릴 수도 있다. 나는 여행을 하는 중에도 자주 일자리를 얻어 일했다.... 가장 싸게 여행을 하고 가장 짧은 거리를 가장 길게 여행하는 방법은 국자와 숟가락, 낚싯줄, 인디언들이 먹는 음식과 소금, 설탕 약간만 들고 발로 걷는 것이다. 개천이나 연못을 만나면 물고기를 잡아 요리해 먹을 수 있다.

 

 또 속성으로 푸딩을 만들어 먹을 수도 있고 단돈 4펜스를 주고 농가에서 빵 한 덩어리를 사서 길 건너 개천에서 물에 적셔 설탕에 찍어 먹을 수도 있다. 이것만으로도 하루는 너끈히 해결할 수 있다..... 나는 집에서 먹을 것을 하나도 가져가지 않고 자고 싶을 때 길바닥에서 자면서 그렇게 수백 킬로미터를 여행했다. 그것이 집에 그냥 있는 것보다 돈이 더 적게 들고 여러면에서 유익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소로우는 오후에 숲속을 걸으며 자연을 묵상하는 산책만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인간은 끊임없이 자연 속으로 들어가려고 애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 걷는 것은 단순히 영감을 얻고 통찰력을 기르기 위해 하는 행위가 아니다. 산행은 어쩌면 인간에게 어떤 고통을 주기 위한 목적으로 행해진 것인지도 모른다.

 

 

늘의 이고통을 받아들이는 것은 우리 자식과 부모님, 그리고 사랑하고 싶은 모든 사람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하고 숭고한 일이다. 그들에게 줄 수 있는 선물 가운데 이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다. 이 선물이 가지고 있는 가장 경이로운 특징은 그것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리스도를 빼고는 아무도 그것을 알 수 없다. 내가 느끼는 고통을 알기 위해 내 근육과 뼛속을 들여다보거나 괴로움에 신음하는 내 정신 속으로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고통이 지극히 사적이고 누구도 알 수 없다는 사실은 좋은 일이다. 그것은 지극히 적절하다. 고통을 스스로 자랑스럽게 떠벌리기는 어렵지만.... 자만심을 경계하는 수단으로서 고통은 매우 알맞다.....

 

 

여덟시간에서 아홉시간정도를 걸었을까, 다리를 질질 글면서 마침내 몬테 델 고소(기쁨의 산)에 도착했다. 이제 콤포스텔라까지는 6킬로미터밖에 남지 않았다. 이곳은 순례자들이 콤포스텔라를 처음으로 볼 수 있는 작은 산이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라피는 17세기에 한 친구와 함께 이곳에 도착해서 이렇게 기록을 남겼다.

 

우리는 드디어 그렇게 간절히 바라고 입에 자주 올렸던 산티아고를 볼 수 있었다. 이곳에서 1.5마일도 채 안 떨어진 곳에서 갑자기 그 모습을 드러낸 산티아고를 보니 무릎을 꿇고 기쁨의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찬미의 노래 Te Deum를 부르기 시작했다.r mfjsk 두세 소절을 부르고 나서부터는 마구 흐르는 눈물 때문에 더는 노래를 부를 수 없었다.

그로부터 100년이 지난 뒤, 알바니는 산티아고를 처음 보고는 이렇게 썼다.

 

나는 무릎을 꿇고 수없이 땅바닥에 입맞춤했다. 신발을 벗고 신성한 연도를 따라 하면서 맨발로 신성한 도시, 산티아고로 향했다.

 

조금씩 주변에서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도시는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기 위해 다시 잠에서 깨어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일터를 향해 서둘러 걷는다. 커피를 끓이는 냄새가 난다. 하늘은 맑다....."

 

 

-----------------------

 

여행수필임에도 사진이 거의 없다.

그의 글은 쉽게 읽혀졌고, 풍경을 고스란히 떠올릴 수 있었다.

오백페이지를 훌쩍 넘어가는 책임에도 쉽게 따라갈 수 있다. 

 

 

멀리 아는 이가 산티아고 순례 길에 오른다는 얘기를 들었다.

쉰이 넘은 나이에 쉽지 않은 결정일지 모른다.

책속의 아름다운 이는 육십 대의 남자다.

소소한 질병들이 생겨나는 나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례 길에 올랐고

많은 역경을 이겨내고 기쁨의 눈물을 맛보았다.

책의 말미 그의 심경을 거듭 읽어본다.

백번을 읽어본들 그 기막힌 감동을 어찌 느껴볼 수 있을까?

 

그러고 보니 쉰이란 나이는 청춘이다.

쉬운결정이 아니었을 것이다. 순례 길에 오르려 준비를 하는 그녀의 모습이 아름답기만하다.

특별한 목표도 없이 나쁜 일만 없기를 하며 피동적으로 살고 있다. 이것은 옳은 모습일까?

더 늦기 전에, 삶의 아름다운 감동을 위해 각별한 행진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