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만권을 읽으면..

다정多精도 병인 양하여/손종섭/김영사

다림영 2013. 3. 26.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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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중에서

   

실명씨/꼭대기 오르다 하고

 

꼭대기 오르다 하고 낮은 데를 웃지 마라

네 앞에 있는 것은 내려가는 일뿐이니

평지에 오를 일 있는, 우리 아니 더 크랴?

 

정상에 오른 사람의 남은 일은, 내려가는 일뿐인데 반하여, 정상으로 오르려는 사람은, 오직 오르고자 하는 희망과 의욕으로 가득차 있다. 그 어느 족이 더 활기에 차 있는가는 자명한 일이다. 그런데도 내려오는 사람들은, 저들이 선진자先進者인양, 후진後進 을 얕잡아 보는 듯한 인상임에는, 한 가닥 불편한 심기를 어찌할 수가 없다.

 

정상에 선 사람은 내려가는 일뿐이다.”, 재담이나 농담으로 가끔 인용되기도 하나, 진실한 등산가들은 쓰지 않는 말이다. 그 언행이 후진을 얕잡아 보는 태도로 비쳤다면, 그것은 물론 선진자의 잘못이나, 어쩌면, 산을 타는 사람들이 산에서 만나는 반가움은, 평지에서 만나는 소 닯 보듯하는 사람들과는 딴판으로, 단박에 십년지기十年知己 처럼 친숙하게 느껴지는 나머지, 지나치게 터놓는 바람에 오해를 삿음은 아닐는지? 아무튼 먼저 오른 사람들을 선배로 인정해준들 또한 어떠랴?

 

한 목표가 달성되고 나면, 더 큰 목표를 갖게 되는 것으로, 알프스를 정복하고 나면, 히말라야를 꿈꾸듯이, 선진자를 당연히 나의 선배로 받드는 겸손쯤은 산사람들의 사회에선 당연한 일일 뿐이다. 당 唐의 석학 한유韓愈  는, “도道 깨침을 나보다 먼저 했으면, (나이에 아랑곳없이) 나의 스승이라<其聞道也 固先 乎吾 吾從而師之 >” 했지 않았던가?

 

 

 

김영/백송골아 자랑마라

 

일순 천리 한다 백송골아 자랑마라.

두텁도 강남 가고 말 가는데 소가느니,

두어라 지어지처 이니 네오 내오 다르랴?

    

눈 깜짝할 사이에 천 리 먼 하늘을 난다 해서, 백송고리야 그렇게 우쭐대지 말아라! 빠르고 느리고의 차는 있을망정, 굼뜬 두꺼비도 강남 가려면 갈 수 있고, 말이 갈 수 있는 곳이면 느리기는 하나 소도 갈 수 있는 것! 가다 가다 가장 마음 드는 곳에 머물러 살아가는 데 있어서야, 너나 다른 동물이나 마찬가지가 아니랴? 빠르기만을 자랑할 양이면, 토끼를 이기는 거북을 보라. 지상의 모든 생명은 동식물을 막론하고, 저마다 남이 대신할 수 없는 존재 의의 , 존재가치를 지니고 태어난 것이란다!

    

김장새 작다 하고 대붕大鵬 아 웃지마라.

구만 리 장공長空 을 너도 날고 저도 난다.

두어라 일반비조一般飛鳥 니 네오 제오 다르랴?

-이택

 

김장새나 대붕새나 너 백송골이나, 그 모두 나는 새일 뿐이니, 잘나고 못나고를 다투려 말고, 평등하게 서로 도와 화합하게 살아라 한다.

이수익李受益  의 <정초庭草 >, 동물만이 아니라, 식물들도 또한 그러함을 강조한 내용이다.

 

마당의 저풀들은 심은 것은 아니건만,

수없이 이름없이 봄바람에 절로 나서,

저마다 빛깔도 따로따로 향기도 따로따로....

 

어찌 정초庭草  뿐이랴? 민초民草 도 마찬가지다. 저마다 남이 대신할 수 없는 각자의 존재 가치를 지니고, 나름대로의 최선을 다하고 있는 귀중한 생명들! ‘인권의 존엄성을 외치는 한편, 계급 사회의 귀천의 차별과, 그것의 세습제도의 천만부당함을 우회적으로 외치고 나선, 선각들의 장한 선언적 경구 警句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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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언젠가 들었던 책이다.

지지난 휴일인가 도서관에서 시조 책 한 권을 불현 듯 읽게 되었는데 어찌나 좋던지 그 옆에 있던 것을 빌리게 되었다. 큰 울림을 주는 말씀이 많다. 다시 뒤적이면서 그 말씀들을 새기며 잘살아야지 하는데 여전히 어떤 오류를 범하며 살고 있다. 알 수 없는 일이다.

언젠가 훌쩍 한 계단 오르는 나 이리라 믿으며 소리 내어 시조를 읊어보는 봄날이다.

 

봄놀이 가자는 친구의 전화에 절대 사절을 한다.

어찌 그리 그 안에서만 사느냐 하지만 난 아무렇지도 않으며 이리 있는 것이 즐겁기도 하다.

나쁜 일만 일어나지 않으면 괜찮다.

 

봄이 지나는 거리를 바라보며 사람들의 옷차림을 감상하며 음악을 들으며 책을 뒤적이는 일상들이 좋다. 오히려 먼 곳으로 가려하면 부담스럽고 편안하지가 못하다. 하여 난 못 박힌듯 이렇게 산다.

 

친구가 볼 때는 내가 좀 이상할지 모른다.

이런 환한 봄날이면 이곳저곳 나들이 생각에 사람들은 들뜬 모양새다. 나도 예전엔 그랬다. 그러나 그 계열에서 이탈하여 한참을 내려왔다. 처음엔 불행하다고 느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괜찮고 이 작고 작은 날들이 귀하고 소중하고 푹 빠져 지내고 싶은 것이다.

 

어쩔 수 없다. 언젠가 오르게 되면 나 또한 그들처럼 무언가를 즐기려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다만 이러한 생활로도 웃을 수 있으니 좋은 날들이라 여기는 것이다. 친구여 자네나 열심히 산으로 들로 바다로 여행하며 인생을 즐기기를.. 언제 그곳에서 떠 내려 가게 될지 모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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