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심리치유 에세이
“과학자 겸 철학자인 로렌츠 오킨(Lorentz Orkin)은 이런 말을 했다. ”눈은 우리를 바깥세계로 데려가고, 귀는 세계를 인간에게로 가져온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귀를 통해서 우리의 마음속으로 들어온다. 이렇듯 귀는 외부 세계와 내면을 이어주는 통로가 되기도 하지만, 의식과 무의식을 연결해주는 고리가 되기도 한다. 자신이 하는 말은 타인이 듣기 전에 우선 자기 자신의 귀에 먼저 울려 퍼지기 때문이다.
산이 우리를 벼랑 끝으로 몰고 가는 이유는 우리가 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기 이해서라고 한다. 인간은 누구나 스스로를 방어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법이다. 어떤 시련과 난관에서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이제 더 이상 갈 곳이 없다고 느껴질 때, 바로 그곳이 날개를 펼치고 날아오를 수 있는 새로운 전환점이 된다.
철저한 방황과 실패 끝에 스스로 터득한 것은 절대로 잊지 않는다. 나의 모든 실패는 피할 수 없는 불운 때문이었거나 어쩔수 없는 환경 탓이 아니라, 나의 잘못된 선택과 행동이 낳은 결과 였다는 것을 뼈져리게 깨달았다. 어째서 삶은 평탄할 때보다 굽이치고 기울어질 때 그 참모습이 보이게 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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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은 정직하다. 반드시 다시 일어서고야 말겠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질 때, 운명도 나에게 새로운 문을 활짝 열어주는 것이다. 실패와 절망을 통해 인간이 조금씩 성숙해가는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어두운 기운이 마음에 쌓여 있으면 다른 나쁜 것들을 끌어당기고 불러 모으게 된다. 그런 상태에서는 밝고 환한 것들이 좋게 보이지가 않고, 비슷한 성향을 지닌 부정적인 것들이 오히려 더 친숙하게 여겨진다. 무언가 나쁜 것에 중독이 되는 이유는 자신의 본래 모습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시낭송은 이렇게 크고 작은 중독으로 망가진 정신과 영혼을 회복시키고 마음속의 어두운 요소들을 사라지게 만들어준다. 또한 자아를 발견하는 계기를 만들어 자신의 진정한 참모습을 응시할 수 있게 한다.
그냥 가만히 입을 닫고 있으면 정체성이 점점 모호해지면서 자신의 존재를 상실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러나 시낭송을 통해 내면에 숨겨진 마음과 생각을 자꾸 표현하게 되면 자신을 감싸고 있는 허위와 가식을 벗어던지고 강한 정신력과 용기를 되찾을 수 있다.
시낭송을 하면 밝고 행복한 의식을 받아들이게 되면서 세상의 아름다움에 눈뜨게 된다. 비극적인 인생관, 우중충한 관념들은 더 이상 마음속에 담아두기가 싫어진다. 외부의 부정적인 것이 침투할 수 없도록 영혼의 껍질이 단단하게 무장하는 것이다.
시낭송으로 마음속에 쌓여 있는 모든 어둠을 몰아내자. 목소리에는 마음의 교란된 파동을 바로잡고 약해진 자아를 일으켜 세워주는 힘이 있다. 나의 체질, 성격과 맞닿아 있는 내 목소리야말로 내면을 수련하는 가장 좋은 도구다.
외로울 때 시낭송을 들으면 마치 누군가가 곁에 앉아 나직한 목소리로 가만가만 다독거려주고 위로해주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마음이 내키면 따라서 읊어보아도 좋을 것이다. 그러다 보면 황량하고 시린 마음 한 구석에 따뜻한 눈물이 차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바로 이때가 텅 빈 외로움이 충만한 고독으로 승화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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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을 잇는 통신망이 발달할수록 사람은 점점 더 외로워진다. 동네에 전신주 하나 놓여 있지 않던 그 시절보다, 손마다 휴대폰을 들고 귀에는 온갖 것들을 꽂고 다니는 지금이 훨씬 더 외롭다.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는 외로움, 전화기가 손에 쥐여 있지만 전화를 걸 수 없는 외로움, 아무 곳에도 전화 걸 데가 없는 외로움, 남들이 휴대폰을 들고 열심히 더들고 있는 것을 바라보는 외로움, 이 모든 휴대폰 증후군들도 결국은 인간에 대한 그리움이다.
베푼다는 것은 자신에게 필요없는 것을 주는게 아니라 자신에게도 소중한 것을 나누어 주는 것이다. 자기 만족을 위해 과시적인 선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위해 진심으로 봉사를 하는 것이다 . 불행할 수밖에 없는 온갖 요소들을 지니고서도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스스로 낮은 곳으로 내려와 남을 섬기며 사는 사람들이다.
우리도 분명 부지런히 감탄하던 시절이 있었다. 학창시절 우리의 젊은 가슴을 매료시켰던 앙드레 지드의 <지상의 양식>을 읽으며 세상 만물이 선사하는 환희와 기쁨에 열광했고, 감탄사가 가득하던 그 책의 문장들을 외우고 다니기도 했다.
저녁을 바라볼 때는 마치 하루가 거기서 죽어가듯 바라보라
아침을 바라볼 때는 마치 만물이 거기서 태어나듯 바라보라
그대의 눈에 비치는 것이 순간마다 새롭기를
현자란 모든 것에 경탄하는 자이다.
찾습니다/정채봉
우선 특징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산을 산이라 하고 물을 물이라 합니다.
몸을 옷으로 감추지도 드러내 보이려 하지도 않습니다.
물음표도 많고 느낌표도 많습니다.
사금파리 하나도 업신여기지 않고 흙과도 즐거이 맨손으로 만납니다.
높은 하늘의 별을 우러르기도 하지만 청마루 밑 같은 데에도
곧잘 시선이 머뭅니다.
마른 풀잎 하나가 기우는 소리에도 귀를 기울이고 옹달샘에
번지는 메아리결 한 금도 헛보지 않습니다.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오늘은 무슨 좋은 일이 있을까’ 그
기대로 가슴이 늘 두근거립니다.
이것을 지나온 세월 속에서 잃었습니다.
찾아주시는 분은 제 행복의 은인으로 모시겠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고요? 흔히 이렇게들 부릅니다.
“동심”
-본문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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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듭 읽는 책 이었다.
지은이는 심리상담사이다. 꽃샘바람으로 옷깃을 세우는 날들이다.
이런저런 갈등으로 고뇌의 숲에 빠져 있는 시간들이다.
문득 詩가 마음을 만진다는 말씀에 꺼내들었다.
거듭 읽었다. 시는 소리 내어 읽었다.
지은이의 말씀이 옳은듯하다.
이젠 시를 그렇게 만나야 하겠다.
소리 내어 읽어보니 스며든다. 마음을 만져주는 듯하다.
아직 숨어있는 겨울바람이 있다. 봄도 두꺼운 옷을 입은 날들 ,
그림 같은 시를 읽고 또 읽으며 따뜻해지는 나를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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