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 보면 삶이 내 소망대로 이루어진 적은 거의 없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내 삶이 실패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애초부터 삶에는 실패나 성공 따위란 없습니다. 성공한 삶도 없고 실패한 삶도 없습니다. 서로 다른 삶이 있을 뿐이지요. 삶은 비교 대상이 아닙니다. 누구도 삶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을, 산 자들 누가 감히 삶의 판관일 수 있겠습니까. 죽음만이 유일한 삶의 판관입니다. 어제는 어제의 삶을 살았고 오늘은 오늘의 삶을 사는 것뿐입니다.
너는 너의 삶을 살고 나는 나의 삶을 살아갈 뿐입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우리는 늘 삶에 대해 서툽니다. 그렇다고 삶이 실수투성이인 것을 책망하거나 탓할 이유는 없습니다. 누구나 처음 살아보는 삶이 아닙니까.
우물천장, 연등천장, 귀접이천장, 눈썹천장, 빗찬장, 소경반자, 비녀장, 빗장, 돌쩌귀, 문고리, 걸괴, 꽃살문, 머름, 우물마루, 대청, 툇마루, 쪽마루, 들마루, 누마루, 아궁이, 함실아궁이, 정지, 부뚜막, 구들장, 고래, 개자리, 굴뚝, 아, 아궁이 군불때는 연기가 굴뚝으로 흘러나오던 내 어린날이 저녁, 그날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 어째서 인간은 돌아갈 수 없는 것들이 그리도 많은 것인지. 어째서 인간은 되돌릴 수 없는 시간 안에서만 살아야 하는 것인지!
서울행 무궁화호 열차가 들어옵니다. 열차는 온 곳이 있고 갈 곳이 있으나 , 나는, 우리는 온 곳을 모르고 갈 곳을 모릅니다. 존재의 슬픔이 밀려옵니다. 생겨났으니 끝내는 소멸할 수밖에 없는 존재의 숙명, 무상을 알면 슬플 것도 없고 기쁠 것도 없다고 했던가.
하지만 존재의 덧없음을 모르기에 슬픈 것이 아닙니다. 존재의 소멸이 슬픈 것이 아닙니다. 덧없음을 알고서도 도무지 어찌해볼 도리가 없는 존재가 슬픈 것이지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가게 될 존재의 운명이 슬픈 것이지요.
‘이것이 있음으로 저것이 있고, 저것이 있음으로 이것도 있다. 네가 있음으로 인하여 내가 있고 내가 있음으로 너도 있다. 삶과 죽음 또한 연기의 관계에 있다. 삶이 있음으로 죽음이 있다. 어제의 나는 오늘의 내가 아니고 오늘의 나 또한 내일의 나는 아니다. 한 순간도 머물러 있는 것은 없다.
제법무아 諸法無我 , 제행무상 諸行無常 이다. 머물러 있는 실체가 없으니 삶 또한 실체가 없다. 삶이 없으니 어찌 죽음이 있겠는가. 죽음에 대한 고민은 허구의 고민이다. 존재하지도 않는 것을 고민하고 있다!‘
불가의 가르침은 논리와 체계가 있으나 여전히 존재에 대한 의문은 풀리지 않습니다. 죽음이 없다는 뜻을 알겠습니다. 죽음에 대한 고민이 허구적이라는 뜻 또한 잘 알겠습니다. 우리는 결코 죽음에 대해 알 수 없으니 실체가 없는 죽음을 고민하지 말고 지금 여기의 삶에 충실하라는 말씀일 터,
설령 죽음이 있다 한들 죽음이야 죽은 자의 것이지 산 자의 몫은 아닌 법. 하지만 나는 여전히 고통이 가시지 않습니다. 대체 삶은 어쩔 셈인가? 죽음이 있든 없든 소멸되지 않는 이 삶의 고통은 어쩔 것인가? 늘 그렇듯이 존재에게는 죽음이 아니라 삶만이 유일한 문제인 것을.
“좋아할 만한 것을 보면 비록 때때로 다시 보관해 두기도 하지만 남에게 빼앗기더라도 애석해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마치 안개와 구름이 눈앞을 지나 가는 중에 온갖 새들의 소리가 귀를 감동시키는 것과 같으니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그러나 가 버리고 나면 다시 연연해하지 않는다.“<소동파>
삶이 있어 죽음이 있고, 죽음이 있어 삶도 있습니다. 삶의 소멸은 죽음의 시작이 아니라 죽음의 소멸입니다. 삶이 사라졌으니 죽음도 사라진 것이지요. 죽음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죽음은 삶의 일부일 뿐 다른 무엇이 아닙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죽음이 삶과 별개로 존재한다고 믿어왔고 그 믿음은 여전합니다. 그래서 생겨난 것이 무덤입니다. 망자들은 무덤에서 부활을 기다리거나 다른 세계로의 전이를 기다렸습니다. 부활을 기다리던 망자들은 여전히 부활을 기다리고 있을까. 천국으로 가는 배는 망자들을 싣고 무사히 바다를 건넜을까. 의문은 끝이 없으나 저 세상의 소식을 전해주는 우체부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오랫동안 너무 많은 말들 속에 살았습니다. 쓸모없는 말들을 지껄이며 사는 데 익숙해져 버렸습니다. 그런 나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침묵의 시간이었습니다. 실상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말은 몇 마디가 되지 않습니다. 대부분은 삶에 불필요한 말들이지요. 불필요할 뿐만 아니라 삶에 해가 되는 말들입니다. 사람의 말이란 대개 평화보다는 갈등과 분열을 가져옵니다.
싸움과 저주의 씨앗을 잉태합니다. 오죽했으면 성서에도 ‘실언하는 것보다 길바닥에 넘어지는 것이 낫다’고 했겠습니까. 술이 많아지면 취핮 않을 도리가 없듯이 말이 많아지면 실언하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 침묵의 날들이 오래 계속되기를 바랄뿐입니다."-본문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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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하며 가난해지는 요즘이다. 앞도 옆도 보지 않으려 하나 눈에 보이는 주변의 이들과 나를 대어보며 가난 속에서 헤어나질 못하고 있다. 언제쯤 이러한 것에서 자유로워지며 그야말로 자발적 가난으로 나는 행복해 질 수 있는 것일까?
노력하면 될 수 있으리라 믿어본다. 지은이께서 말씀하신 ‘서로 다른 삶’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겠다.
침묵으로 깊은 내가 되어야 하는데 컴퓨터 창이지만 여기 저기 쏘다니고 한마디씩 거들었다.
이것도 분명 말을 한 것이 맞으리라. 쓸모없는 말을 많이 늘어놓은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거들 말이 있다면 한마디 해도 괜찮지만 쓸데없는 농담이나 가벼운 글로 시간을 낭비하는 일은 없도록 해야 하겠다. 또한 어떠한 것에도 연연해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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