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에서 배우다

‘자기’ 빠진 자기소개서

다림영 2013. 3. 14. 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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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313일 수.

一事一言

 

이십대 시인의 시선

 

 자기빠진 자기소개서

 

 

내가 글을 쓰는 사람이란 사실이 물질적인 효용을 가질 때는 거의 없다. 그러나 가금은 누군가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때가 있다. 친구들의 자기 소개서<자소서>를 고쳐줄 때다.

 

내가 시를 쓰고 있다는 사실이 친구들에겐 자소서도 잘 쓸 거라는 얘기처럼 들리나 보다. 웬만하면 거절하고 싶지만, 늘 우정을 들먹거리는 까닭에 이걸 거절하는 게 쉽지가 않다. 그래서 항상 자소서 청탁에 치이지만, 막상 친구가 보내준 글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착잡해진다. 문장이나 글이 나빠서가 아니다. 거기엔, 내가 아는 친구의 모습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거기엔 오직 스펠<자격>’커리어<경력>’뿐이다. 옷만 얘기하고, 그걸 걸칠 몸은 없는 것과 같다. ‘자기 자신을 이토록 모르는 건가하는 생각도 든다.

이런 현상을 단순히 좁은 취업문 때문이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근본적으로 자존감이 부족하기 때문 아닐가, 물질, 혹은 경력을 개인의 정체성과 동일시하는 잘못된 시선이 우리 세대에 더욱 심해진 취업난과 결합해 내부에 단단하게 자리 잡은 듯해 서글프다.

 

요즘 뭐해?”라고 물으면 대부분 스펙쌓지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토익점수 800900사이에서 아등바등, 자신의 가치를 높이려는 친구들에게 나는 말해주고 싶다. 내가 아는 너희는, 경력 한 줄로 더 아름다워지거나 덜 아름다워지는 놈들이 아니라고 너라는 이유만으로 아름다운 까닭이 있으며, 그것이 바로 너의 진짜 스펙이라고.

 

김재현.2013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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