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만권을 읽으면..

우연한 풍경은 없다/글 김연금 그림 유다희/나무도시

다림영 2012. 12. 27.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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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지어진 짐은 남향과 대로로 향한 입구를 확보하는데 유리했지만, 나중에 지어진 집은 요리조리 다른 집을 피하면서 남쪽으로 방향을 잡고 큰 길 쪽으로 입구를 내었다.

 

당연히 뒷집을 가리지 않을 눈눞이를 유지하면서 말이다. 서로의 삶에 대한 존중과 배려다. 덕분에 멀리서 바라다보면 들어가는 입구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집들이 교묘하게 층층으로 쌓여있다 . 또 집밖의 계단과 집안의 계단은 서로 어우러져 하늘로 향한 미로가 되었다.

 

 

이렇게 자연에의 순응과 타인에 대한 배려, 이름없는 건축가들의 지혜로 옥수동의 풍경은 완성되었다. 그런데 다시 변화를 눈앞에 두고 있다. 이제 곧 고층 아파트 단지가 들어설 예정이라 옥수동 계단을 볼 수 없단다. 슬픈 일이다.

 

어떤가? 풍경의 이야기를 듣고나니 옥수동 계단이 다시 보이는가? 친구의 속내를 듣고 나서 생기는 친밀감 같은 건 생기지 않았는가? 계단이 왜 그리 삐뚤삐뚤하고 성급한지 이해할 수 있겠는가? 그럼 다시 차근차근 계단을 오르내려보자. 이들의 미덕을 어루만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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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전히 사람의 힘으로만 집을 짓던 시절, 커다란 기둥이며 서까래까지 일일이 다 사람의 힘으로만 하던 시절, 상량을 올리는 날 상량제를 올리고 공사를 마치면 고사를 지냈던 것처럼. 오늘날에도 풍경이 새롭게 변함을 알리고, 그 과정에서 모두가 무사하기를 기원하고, 또 새로운 풍경과 천천히 친해질 기회를 갖는 의식과 절차의 과정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탈이 난다.

 

우리의 몸과 마음이 그러하듯이, 청계천의 고가를 없애고 하천으로 복개하면서 나타났던 여러 호소의 목소리들, 4대강 진행에 대한 여러 불만들, 종로의 사라지는 피맛골에 대한 아쉬움이 증거가 아니겠는지. 이 외에도 어떠한 준비도 없이 맞이해야 했던 풍경의 변화로 마음이 헛헛해지는 일, 우리의 진심을 담아 내지 못하면서 겉만 번지르르해지는 풍경으로 소외감을 느끼는 일은 너무 많았다.

 

물론 그 과정은 오늘날에 맞아야 하며, 거기에 문제는 있을 수 있다. 어떠한 과정이든지, 우리가 주인이 되지 못하고 끌려 다닌다면 문제가 되는 건 당연한 일이니까. 그러나 건강한 우리 삶을 위해서는 미친 속도를 일단 막고, 풍경을 함께 즐기는 시간이 필요하다. 우주를 품은 작은 씨앗의 싹을 틔우는 것도 궁극에는 시간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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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나는 서울의 골목 기행에 나서곤 했다. 정말 재미있고 신나던 시간들이었다. 오래된 골목길과 집 그리고 계단들... 서울 한 복판에 오래된 풍경들이 건재다고 있다는 사실들이 믿기지 않았다. 그림 같은 길을 걸으며 그 소박한 풍경에 마음이 물들어 순한 사람이 된 듯 했다.

개미마을, 이화동 , 성북동, 부암동 북촌 그리고 서촌.삼청...

책에 나온 옥수동은 가보지 않았지만 아기 때 살던 곳이어서 유심히 살펴보았다. 층층이 계단으로 연결된 조그맣고 한 층 한 층 높은 집들....

 

그때 아버지는 서울에 직장이 있으셨고 우리는 부엌을 주인과 같이 쓰는 아주 작은 방에 세 들어 살았다. 세 살 때라는데 난 약을 대로 약아서 굉장했다고 한다. 설거지를 한다고 조막만한 것이 손을 걷어 부치기가 일수였고, 떡장수가 주인집을 방문할 때면 쪼르르 달려가 냉큼 제일 큰 것 하나를 집어 어디론가 달아나 숨었고 엄마는 그 돈을 갚기 위해 애를 써야 했다.

 

또한 너무나 큰 사고가 있었는데 내가 펄펄 끓는 물솥에 빠졌다는 사실이다. 문을 밀면 바로 부뚜막이 있었고 항시 그곳에는 물솥을 올려놓았고 너무 지대가 높아 물이 잘 나오지 않았으며 아랫동네까지 물을 길으러 가야했다. 그날따라 엄마는 꿈이 좋지 않아 원래 가던 곳으로 가지 않고 중간에 있는 어느 집으로 갔다. 아이는 잠이 들었고 분명 문은 잠갔는데 소스라치게 놀라는 울음소리에 달려왔더니 내가 끓는 물 솥에 빠졌다는 것이다....

생각 만해도 끔찍하다. 젊은 우리 엄마는 얼마나 놀랐을까? 지금도 지워지지 않은 큰 상처가 아직도 살아 있는데 명절마다 식구들에게 친정엄마는 내 얘기를 하곤 한다. 구사일생으로 나는 죽을 뻔 하다가 살아난 곳이 그 곳 옥수동이다.

 

책속의 사진으로 보니 높은 언덕이며 계단이며 빼곡히 들어선 집들이며 각별한 풍경이다. 곧 그곳은 없어진다고 한다는데 몇 년 전만 해도 휴일 하루 잡아 달려가 카메라를 들었을 터인데 책만 눈이 빠지게 들여다보고 만다.

 

언젠가 우리나라사람이 된 서양인이 그가 살고 있는 동네가 재개발 되는 것을 막기 위해 갖은 애를 쓰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사는 이들의 불편함이 지극하기도 하겠으나 옛 풍경들을 간직하고 어떤 다른 묘책은 없는 것인지 ....모든 것을 다 없애고 높은 아파트만 짓는 다는 것은 옳은 일은 아닌 것 같다. 아마도 그렇게 새집을 지어도 그곳으로 들어갈 수 있는 그 지역의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결국 내몰리게 되고 살집을 찾아 헤매게 될 것이다.

 

유럽의 도시풍경에는 백년이 넘은 집이나 오래된 도로들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다.

곳곳이 재개발이 행해지고 시간이 흐르면 옛이야기가 숨어 있는 도시의 풍경을 어디서 찾아볼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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