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만권을 읽으면..

사람풍경/김형경/예담

다림영 2012. 12. 29.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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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제 우울증을 다스릴 줄 알게 되었다. 우울증이 찾아오면 틀림없이 이런 상황중 하나다. 일주일 이상 운동을 하지 않앗거나, 너무 오래 사람을 만나지 않은 채 틀어박혀 있었거나, 심하게 추위에 노출되거나 햇빛을 적게 쬐었을 경우이다. 우울증에서 빠져나오는 가장 좋은 방법은 운동이다.

 

운동복을 갈아입고 20분 정도만 걷거나 달리면 부정적인 생각들이 가라앉고 , 40분 정도 지나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한 시간쯤 지나면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솟아오른다. 이렇게 사소한 심리적 메커니즘을 깨닫는 데, 이처럼 손쉬운 대처법을 터득하는 데 그토록 많은 시간이 걸렸다는 게 가끔 약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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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산길을 혼자 걷고 있자니 점점 더 무서워졌다. 그렇다고 포기하고 돌아갈 수는 없었다. 지나가는 택시가 한 번 , 오토바이가 한 번 곁에서 멈춰 서서 태워주겠다는 의사를 보였지만 그런 것을 함부로 타기에는 너무 겁이 많았다.

 

내면에서 점점 커지는 두려움을 안은 채 걷다가 어느 순간, 고인 물이 흘러넘치듯 두려움이 제풀에 툭 터져나가는 지점을 만났다. 그 지점에서 어떤 심리적 기제가 발동하는지는 잘 알 수 없지만 두려움과 긴장으로 응축되어 있던 마음이 제풀에 풀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렇게 내면의 어려움을 넘어서고 나면 바로 그 두려움만한 크기의 해방감 같은 것, 긴장감만한 크기의 광활한 마음이 깃들곤 했다.

 

그런 것에 대한 기대나 확신이 있기 때문에 매번 두려움 속에서도 한 발씩 앞으로 내디딜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그 산길 끝에는 제법 큰 마을이 있었고 거기서는 로마를 오가는 시외버스가 20분 정도의 간격으로 있었다. 편한 교통수단, 또 다른 풍경을 만날 수 있었던 것도 산길을 걸어낸 용기 덕분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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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내 여행의 본질은 현실의 고통으로부터 도망치는 회피 방어기제에 더 가까웠다. 어리석음을 닮은 단순함, 현실 감각이 결여된 무모함, 둔감함에 더 가까워 보이는 초연함..... 그런 요소도 깃들어 있었다.그 여행을 일상 속에서 추진시킨 힘이 있다면 그것은 용기가 아니라 호기심이었을 것이다.

 

낯선 도시에 도착해 지도를 펼쳐들면 가보고 싶은 곳이 너무 많아 가슴이 두근거렸다. 지도를 몇 등분으로 분할해놓고 하루에 한 구역씩, 그곳에 있는 박물관이나 유적지를 관람할 때면 시간이 부족해 그냥 지나쳐야 하는 것들이 안타가웠다. 영어 속담에 호기심은 고양이도 죽인다는 말이 있는 데 나는 그 속담의 강렬함으로 몸으로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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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있다라는 말이 거느리는 이미지나 울림은 그 진폭이 상당히 크다. 고독을 잘 이겨내는 강인한 인성의 소유자라는 의미부터 외롭고 청승맞은 사람이라는 인상까지, 세속을 벗어난 독야청청한 수행자의 이미지부터 세상의 흐름에서 소외된 이물이라는 이미지까지. 아마 혼자 있다는 말에는 두 가지 측면이 다 존재 할 것이다.

 

혼자 있기의 병리적 측면은 세상으로부터 스스로를 격리시키는 극단적 방어의식, 또는 분노의 표현일 수 있다. 상처 입은 동물은 산의 가장 후미진 곳을 찾아가 조용히 웅크리고 있는다. ‘혼자 있기의 건강한 측면은 독립된 인격체로서 분리와 개별화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진 상태를 말한다.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은 채 충만함 속에서 혼자 있을 수 있는 능력, 그것은 정신건강의 중요한 척도라고 한다.

 

롤로 메이는 생의 각 국면에서 여러 종류의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홀로 존재하는 용기, 자신의 내면과 직면하는 용기, 선이나 도덕을 지키는 용기, 신체의 힘을 잘 사용하는 용기, 창조하는 용기, 그 결과에 대한 피드백을 감정의 동요없이 수용할 수 있는 용기. 그는 어떠한 용기든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은 모두 그 사람의 무의식적 공포를 감추기 위해 사용되는 단순한 허세라고 말한다. 용기가 없다면 사랑은 단순한 의존상태가 되고 용기가 없다면 충성심은 획일주의가 되고 만다. 용기는 일체의 정신적인 덕을 가능하게 하는 전제 조건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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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부터 내린 눈은 그칠 기색이 없다. 밤도 깊어가고 2012년도 저물어 가고 나는 따뜻한 난로 앞에서 음악을 들으며 가끔 텔레비전을 바라보며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고 있다. 가끔 들리는 단골손님들은 어찌 긴 시간을 혼자 있느냐며 나를 위로하고자 한참을 앉았다 가시곤 하지만 난 그렇게 떠도는 얘기를 나누는 시간보다 혼자 있는 것이 좋고 그 시간을 착실하게 규모있게 보내는 삶을 즐긴다. 그러나 어쩌다 한 번씩 참으로 고독에 휩싸인 이런 날 , 주말이고, 함박눈이 쏟아지고, 술 한 잔 이 간절한 시간이 찾아오기도 한다. 그것을 위해 냉장고엔 술이 마련되어 있지만 한 잔이면 충분하다. 피할 수 없어 즐기는 고독, 그리고 기타 삶의 애환... 살아 있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것임을 알기에 고스란히 달게 받으며 나를 다듬으며 홀로 있는 시간을 즐기니 행복한 사람은 아닌지.

 

너무 활동적인 사람은 어쩌면 나 같은 이보다 더 힘들고 외롭기 때문에 혼자와 마주앉아 있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고독을 참지 못해 밖의 떠들썩한 삶에 어울리며 외로움을 견뎌나가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어찌 보면 이런 이들이 더 위험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은 나만 하는 것인지....

우울증 없이 행복하게 늙는 비결은 대부분 친구를 첫 번째로 꼽는다. 하여 가끔 열심히 어울려보기도 하지만 즐겁고 신날 때도 있지만 간혹 쉽게 섞이지 못하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아마도 개인적인 차이가 있기도 할 것이다. 많은 친구보다 한 두 명이라도 소통이 되고 코드가 맞는 편한 사람이 곁에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는 생각을 한다.

 

수많은 사람들 , 저마다 다른 얼굴이듯 생각도 다르고 똑같은 일에서도 행동도 가지가지이다. 그런 사람들의 풍경 속에서 그래도 마음이 가고 따뜻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고독에 휩싸이며 나날을 보내지만 차갑지 않고 뜨거운 커피가 생각날 때 떠오르고 긴 얘기를 나누고 싶은 사람이 되는데 부족함이 없도록 새해에도 좋은 글을 접하는데 노력을 좀 더 기울여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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