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11월 28일
정민의 세설신어
각곡류목(刻鵠類鶩)
후한의 명장 마원(馬援)에게 형이 남긴 조카 둘이 있었다. 이들은 남 비방하기를 즐기고, 경박한 협객들과 어울려 지내기를 좋아했다. 멀리 교지국(交址國)에 나가있던 그가 걱정이 되어 편지를 보냈다. 간추린 내용은 이렇다.
“나는 너희가 남의 과실 듣기를 부모의 이름 듣듯 했으면 좋겠다. 귀로 듣더라도 입으로 옮겨서는 안 된다. 남의 잘잘못을 따지기 좋아하고, 바른 법에 대해 망령되이 시비하는 것은 내가 가장 미워하는 일이다. 죽더라도 내 자손이 이런 행실이 있다는 말은 듣고 싶지가 않다. 용백고(龍伯高)는 돈후하고 신중해서 가려낼 말이 없다. 겸손하고 검소하며 청렴해서 위엄이 있다.
그래서 내가 그를 아끼고 무겁게 여긴다. 너희는 그를 본받거라. 두계량(杜季良)은 호걸로 의리를 좋아한다. 남의 근심을 함께 근심하고 남의 기쁨을 같이 기뻐한다. 맑고 흐림에 잃음이 없다. 부친의 장례 때 그가 손님을 청하자 몇 고을에서 일제히 왔다. 내가 그를 애지중지한다. 하지만 너희는 그를 본받아서는 안 된다.
백고는 본받으면 그렇게 되지 못하더라도 삼가고 조심하는 사람은 될 수 있다. 이른바 고니를 새기려다 안 되어도 오리와는 비슷하다(刻鵠類鶩)는 것이다. 하지만 계량을 배우다가 잘못되면 천하에 경박한 사람이 되고 말 것이다. 이른바 범이라고 그랬는데 안 되고 보니 도리어 개와 비슷하게 되었다(畵虎成狗)는 격이 되고 만다.“‘후한서’ 마원전(馬援傳)에 나온다.
각곡류목(刻鵠類鶩))과 화호성구(畵虎成狗)의 성어가 여기서 나왔다. 똑같이 배워 본떴는데 결과가 판이하다. 고니(鵠)와 오리(鶩)는 다르지만 겉모양은 큰 차이가 없다. 같은 기러기목 오리과에 속하는 종류다. 저는 애써 범이라고 그렸는데 남이 줄무늬 있는 똥개로 본다면 피차에 민망하다. 목표를 잘 잡아야지 실패해도 건질 것이 있다. 잘못 따라하면 범 아닌 개, 호걸 아닌 양아치가 된다.
유협(劉협)이 ‘문심조룡(文心雕龍)’비흥(比興)편에서 말했다. “비슷한 것끼리 견주는 것이 비록 많지만 꼭 맞는 것을 귀하게 친다. 만약 범을 그려 개가 되면 건질 것이 없다.” 좋은 것을 본뜨면 실패해도 얻는 것이 있다. 폼나고 멋있다고 잘못 흉내 내면 그것으로 몸을 망친다. 열심히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무엇을 보고 어떻게 배우느냐가 더 중요하다.
한양대 교수. 고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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