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에서 배우다

사람은 배우기를 원한다 고통없는 배움은 없다 깨우치려면 모든 걸 의심하라

다림영 2012. 12. 1.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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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10~11

김형철교수의 '서양 인문 오딧세이'

 

사람은 배우기를 원한다.”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형이상학11장 첫 문장에서 한 말이다. 인간 본성을 한마디로 줄이면 끊임없이 배우려는 존재라는 말이다. 권력, 명예, 부를 모두 가진 사람이 허무감을 느낀 끝에 현자()에게 물었다. “인생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그의 대답은 이랬다.

한평생 배우러 왔다가 갑니다.”

 

철학자 몽테뉴는 철학은 죽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했다. 죽음은 모든 이에게 공포의 대상이다. 하지만 우리는 왜 있는 게 없어지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는가? 반대로 세상에 태어나기 전 오랫동안 존재하지 않앗던 것에 대해서는 공허함이나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가? 죽고 난 뒤 무존재가 됐을 때, 우리는 내가 무존재한 것에 대해 아무 감정을 가지지 못할 것이다. 과거는 이미 지나갔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에 둘 다 모두 내 것이 아니다. 내가 가질 수 있는 것은 현재뿐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명상록에서 현재를 즐기라고 말한다. 이것이 죽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고통 없는 배움은 없다 했다. 배우는 과정에서 우리는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부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태 알고 있는 것을 부정하지 않고 새로 배울 수 있는 것은 없다. 그것이 경험으로 전해지는 암묵지(暗默知)’, 지식으로 전달되는 형식지(形式知)든 마찬가지다.

 

이미 알고 있는 것만 계속 반복하는 존재는 이미 죽은 존재다. 사람은 자신을 부정해나가면서 학습하며 성장한다. 마치 내 몸 안의 세포가 일정 시간이 지나면 죽어야 새로워지는 것처럼, 자아실현을 하려면 부단히 자기를 부인하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2500년 아테네 델포이 신전에는 이런 글귀가 쓰여 있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자기가 모른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그러나 단 한 사람, 소크라테스는 자기가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다.”

자기가 모른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배우려 하지 않는다. 자기가 모른다는 것을 아는 사람만이 배우려 한다. 배우는 방법은 질문이다. 모르는 것은 죄가 아니지만, 모르면서도 질문하지 않는 것은 죄다.

 

크고 깨우치려면 모든 것을 의심하라!” 고 데카르트는 설파했다. 그는 감각적으로 지각하는 모든 것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명백한 사실마저 의심했다. 내가 앉아 있는 의자, 글 쓰고 있는 컴퓨터, 밖에 보이는 나무, 모든 것이 존재하지 않는데도 악마가 나로 하여금 존재한다고 믿게 만드는 것이라고 가정해 본 것이다. 그랬더니 그것을 반박할 근거를 찾지 못햇다.

 

‘1+1=2’라는 수학적 진리도 마찬가지로 근거가 불확실하다. 그러나, 이 세상 모든 것을 의심하더라도 내가 현재 의심하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의심할 수가 없다. 여기서 그가 터득한 명제가 서양철학의 역사를 바꾸어 놓은 코키토 에르고 숨(Cogito, ergo sum.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이라는깨달음이다.

 

공자는 세사람이 걸어가면 그중에 내 스승이 있다(三人行 必有我師) ”고 했다. 참 학습은 책뿐만 아니라 사람과 만나는 일, 교류에서 이뤄진다는 얘기이다.

리더는 부하를 가르치는사람이 아니라 부하가 배우도록 도와주는 멘토이다. 부하가 배우도록 돕는 방법은 학습 분위기와 여건을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을 자극하는 질문을 계속 던지는 것이다.

 

그들이 질문하도록 도우려면 먼저 질문하는 자세를 보일 수 있어야 한다. 부하들과 진정 소통하는 리더는 자기가 모른다는 것을 부하들 앞에서 솔직하게 인정한다. 가장 창의적인 리더가 되는 것 역시 모두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의문을 품을 때 가능하다.

 

리더 가운데 최악의 리더는 부하와 경쟁하는 리더이다. 반대로 최고의 리더는 부하를 리더로 키워주는 리더이다. 반대로 최고의 리더는 부하를 리더로 키워주는 리더이다. 그 최상의 방법은 배울 기회를 주는 것이며, 구체적으로 더 큰 임무와 역할을 맡기는 것이다. “사람은 배우기를 원한다.”아리스토텔레스가 한 이말의 유효기간은 우리가 죽는  날까지다.

 

연세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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