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에서 배우다

포기(抛棄 )도 전략이다

다림영 2012. 11. 3.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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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112일 금요일

아침논단

 

고영섭

오리콤 사장

 

 

얼마 전 런던올림픽이 끝났을 때 올림픽 영웅들의 성공 스토리가 넘쳐흘렀다. 불황의 탓일까?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데 성공스토리는 훌륭한 소재다. 많은 언론이 그들의 성공을 이야기했고, 예능 프로그램도 그들을 초대해 시청자들에게 감동을 전달했다.

 

헌신적인 부모의 뒷바라지, 눈물겨운 아내의 내조, 수많은 좌절과 고마운 은인들의 이야기, 부상과 재활, 다시 좌절, 재도전 그리고 금메달.... 그들이 전하고 싶은 결론은 대체로 한 가지였다. ‘끝가지 포기하지 말고 도전 하세요!’

 

우리는 어려서부터 포기는 곧 실패라고 배워왔다. 포기하는 사람은 인생 낙오자로 간주했다. “포기? 포기는 배추 셀 때나 쓰는 말이지!”

하지만 세상은 어찌보면 참 불공평하다. 골프를 시작한지 6개월만에 싱글이 되는 친구가 있는 반면 죽어라 연습해도 10년동안 보기 플레이어를 맴도는 친구도 있다.

 

똑 같은 이야기라도 참 재미나게 말하는 사람이 있고 유머집 몇 권을 달달 외우며 노력해도 분위기만 썰렁하게 만드는 사람도 있다. 어려서부터 같은 학교에 다니고 같은 과외를 받아도 사람에 따라 결과는 확연히 달라진다. 무조건 열심히 한다고, 끝가지 포기하지 않고 도전한다고 똑같이 좋은 결과를 얻는 건 아니란 얘기다.

 

광고회사에는 재주꾼이 많다. 글을 잘쓰거나, 노래를 잘하거나, 그림을 잘 그리거나, 말을 잘하거나, 사람을 잘 웃기거나 하다못해 옷을 잘 입는 직원등 가지각색이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들의 재능은 사실 타고난 부분이 많다. 어렸을때부터 그런 성향을 보이고 그런 재능으로 주목받아 왔다. 후천적인 노력으로 역전하는 경우도 물론 있지만 처음부터 타고난 재능 쪽으로 방향을 잡는 전략이 긴요하다. 안되고 어려운 일에 굳이 매달려 노력으로 극복하겠다는 게 꼭 현명한 건 아니라는 얘기다.

 

가수 싸이는 어려서부터 이성(異性)의 관심을 얻고 싶었다고 한다. 그는 외모나 스펙이 아니라 자신이 남들보다 잘할 수 있는 춤과 음악으로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됐다. 그는 가수가 됐고, 결국 월드 가수 반열에 오르게 됐다. 동네 이성들의 관심을 훌쩍 넘어 세계인의 사랑까지 얻게 된 것이다. 사람마다 각각의 능력이 있고 싸이는 그만의 길을 제대로 연 것이다. 이처럼 올바른 길을 선택하는 것이 먼저고, 열심히 하는 건 그다음이다.

 

전략과 전술이라는 용어가 있다. 자기에게 맞는 올바른 길을 선택하는 것이 상위 개념인 전략이라면, 그 올바른 길 위에서 효과적으로 목표에 이르는 다양한 계획과 아이디어가 하위 개념인 전술이다. 바꿔말하면 전략이 잘못되면 뛰어난 전술도 별 의미가 없다. 길을 잘못 잡으면 아무리 노력하고 포기하지 않아도 결국 목표에 다다를 수 없기 때문이다.

 

많은 기업이 전술적인 수준의 계획을 전략으로 착각하고 무조건 바삐 움직인다. 그런 미련한 근성은 조직원을 힘들게 만들 뿐이고 전략이 제대로 선 현명한 근성을 이기기 어렵다.

 

나는 성공 사례보다는 실패 사례를 즐겨 연구한다. 성공 사례는 꿈을 꾸게 해주지만 실패 사례는 꿈을 이루는 길을 가르쳐 주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생활용품 브랜드 알레시(Aleesi)에는 실패박물관이 있다. 그곳에는 시장에서 외면당한 제품들을 모아서 전시해 놓았다. 직원들은 수시로 실패박물관을 찾아가 그 물건들을 살펴보며 미팅을 한다. 잘못된 접근에 대한 빠른 포기와 대안을 찾을 수 있는 현명한 방법을 거기서 배우는 것이다.

 

일본의 세계적 기업 혼다의 창업자인 혼다 소이치로 회장은 성공은 실패라고 불리는 99%에서 나온 1%의 결과를 대표하는 것’이라고 했다. 실패 사례를 통해 더 좋은 방법과 솔루션을 얻을 수 있다는 뜻이다.

 

물론 성공 사례도, 실패 사례도 모두 훌륭한 교훈임은 틀림없다. 다만 중요한 차이는 성공 스토리의 결론은 끝까지 도전하라이고, 실패 사례에 많이 나오는 얘기는 그때 포기했더라면....’이다.

 

기업은 전략적 판단이 잘못됐다고 생각되면 전술적 미봉책으로 밀어붙일 생각을 접고 포기를 통해 과감히 새로운 전략을 고민해 봐야 한다. 지금까지 투자한 돈이 아까워서 앞이 보이지 않는데도 끝없는 도전이라는 멋진 말의 유혹에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는 많은 기업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개인도 지금 하는 일이 자기의 길이 아니다 싶으면 과감히 포기하고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것이 더 현명할 수도 있다.

수많은 영웅의 끝까지 도전하세요라는 말이 불편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주위의 수많은 실패 사례가 내게 가르쳐 준 교훈이 자꾸 떠오르기 때문이다. ‘포기도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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