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만권을 읽으면..

플라토닉 러브/조무남/럭스미디어

다림영 2012. 9. 13. 19:34
728x90
반응형

 

기원전 518년 어느 날 피타고라스가 올림픽경기를 관전하고 있었다. 그의 옆에 앉아 있던 필로스Pyios의 왕자가 그에게 물었다. “피타고라스여! 당신은 아는 것이 많은데 당신이 하는 일은 무엇이며,그런 사람을 무엇이라고 불러야 합니까?” 이렇게 묻자 피타고라스는 잠시도 지체하지 낳고 나는 철학자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철학자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한 왕자는 철학자가 무슨 뜻이냐고 다시 물었고, 피타고라스는 이렇게 대답했다.

 

왕자님, 인생이란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운동경기와 비슷합니다. 여기에는 재물을 구하는 일에 몰두하는 사람도 있고, 또 어떤 이는 명예와 영광을 얻으려고 야망에 빠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에는 많지는 않지만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것을 주의 깊게 관찰하면서 이해하려고 애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인생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어떤이는 재물을 탐하고, 어떤 이는 권력과 권세를 향한 맹목적 정열에 휩싸여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 가운데 가장 현명한 이는 삶 자체의 의미와 목적을 탐구하는 일에 헌신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자연에 숨겨진 비밀을 찾으려고 애씁니다. 이들이 바로 철학자들입니다. 그들은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피타고라스가 왕자에게 가르친 철학의 의미였다.

 

 

 

소크라테스는 정치인과 시인과 장인과의 대화에서 자기와 그들 사이에 현격한 차이가 있음을 깨달았다. 그것은 그 정치인이나 시인이나 장인은 알지못하면서도 무엇인가를 안다자만을 부리는 반면, 자신은 안다의 의미를 충족하지 못할 때 그저 겸손하게 모른다고 말하는 그차이였다. 소크라테스의 모른다에는 그의 지적 정직성과 겸손이 깃들어 있었다. 이에 대하여 소크라테스는 <변명>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첫 번째로 만난 정치인은 그가 알지 못하는 것을 안다고 생각했습니다. 반면에 나는 나의 무지를 정말 확실히 의식하고 있었습니다. 하여간 이런 조그만 일에 맞추어 보아 그 정치인보다 내가 더 현명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는 적어도 내가 알지 못하면서도 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플라토닉 러브는 플라톤이 정의한 사랑을 뜻한다. 그가 쓴 <향연>의 주제는 사랑이다. 그리고 이 사랑을 상징하는 신은 에로스Eros. 에로스는 사랑의 신이다. 그러나 에로스는 사랑으로 충만한 신, 즉 이데아로서 사랑을 상징하는 신이 아니라,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신이다. 이런 뜻에서 에로스사랑은 동의어가 되어 있다. 영어의 Platonic Love플라토닉러브와 Platonic Eros플라토닉 에로스는 같이 쓰는 말이다.

 

철학자도 에로스처럼 무엇인가를 사랑하는 존재다. 교육자도 매한가지다. 소크라테스가 그랬듯이 말이다. 플라토닉 러브는 아름다움의 사랑을 의미한다. 소크라테스에게 있어서 아름다움의 사랑은 결국 신성 divinity에 관한 사랑이었다. 신이 가지고 있는 속성으로서 신성은 이성과 아름다움과 참됨과 바름과 선함과 불멸과 같은 것들이었다.

 

<향연>에서 에로스는 사랑의 중간자다. 그런데 중간자란 무엇인가? 그것은 좋은 쪽으로 향하고자 하는 소여성 . 곧 선을 지향하는 자연스런 힘을 가진 존재를 뜻한다. ‘자연스런 힘을 가진 존재라기보다 신의 성질을 가진 존재라고 하는 편이 더 올바른 표현일 것이다.

 

 

사랑은 하나가 되어union서로가 가진 것을 나눈다는 생각은 이 책의 주제일 뿐만 아니라, 플라톤의 철학의 핵심이기도하다. 그러나 이 사랑은 육신적 물질적 사랑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정신적이라는 뜻이다. 플라토닉 러브는 고귀한 감정과 정서를 바탕으로 하되, 궁극적으로는 정신적인 것을 추구한다. 지혜와 정의와 아름다움과 선함과 용기와 같은 것들이 정신적인 사랑의 대상이다.

 

그리고 이 사랑은 이와 같은 정신적인 것을 나누어 갖는 일이고, 궁극적으로는 그것들과 정신적으로 한 몸이 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에로스가 추구하는 사랑도 육신적 아름다움이 아니라,아름다움을 사랑하여 절대적 정신적 아름다움과 하나가 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러나 아름다움과 한 몸이 된다고 하더라도 아름다움 자체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다만 아름다움 자체와 비슷하게 될 뿐이다. 이데아로서 아름다움의 현실적 그림자가 된다는 뜻이다.

 

 

 

정화 는 마음과 몸을 깨끗이 함을 뜻한다. 성스러운 일을 수행하기 전에 사람들은 몸과 마음을 깨끗이 했다. 델포이에 있는 아폴로 성전에 가서 신탁을 받거나 의식을 치를 경우에, 참석자들은 성전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우물에서 몸을 닦았다. 몸을 닦는 것은 마음을 닦는 것을 상징한다.

 

소크라테스는 죽음에 들기전에 마음을 정화했다. 모든 욕망을 버리고 미움도 버렸다. 타인에게 빚을 진 것이 있는지 살폈다. 소크라테스는 죽음의 문턱에서뿐만 아니라, 평생을 통해서 몸과 마음을 정화시켜왔다고 보아야 한다. 사실 마음의 정화는 죽음을 위한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지금 우리들이 글을 쓰거나 책을 읽을 때도, 제례를 치르거나 재판을 할 때도 취해야 할 선행조건일 것이다. 그렇지 않고는 마음이 어두워 참된 것과 올바른 것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열반 은 니르바나nirvana의 음역 이다. 바람 등이 불길을 불어서 끄다는 뜻을 갖는다. 불교에서는 이 말을 욕정과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 등과 같은 인간의 마음을 더럽히는 번뇌의 불길을 끔으로서 평정의 상태 또는 적멸 의 상태에 듦을 뜻하는 단어로 사용한다. 불교에서는 수행자들이 이런 상태에 듦으로서 비로소 참된 인식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고타마 싯다르타 당시에는 열반의 세계가 단순히 죽음의 뒤에만 가능한 것으로 여겨왔다. 그러나 싯다르타가 추구한 적멸의 세계는 이제 올바른 수행과 지혜에 의해서, 현세에서도 충분히 실현될 수 있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

 

 

 

-----------

 

 

 

 

 

남편과의 깊은 대화를 하지 않은지 오래 되었다는 잘 아는 이가 있다. 그녀는 남편과 남남이라고 전했고 아마도 밖에서 정신적인 대화를 나누는 여자들이 많은 것 같다며 이것은 육체적인 것보다 더 나쁜 일이라고 울분을 토했다. 어쩌면 그녀는 이혼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녀는 단호했고 남남이 된지 오래라고 했다. 그녀의 남편은 육체적인 사랑을 나누지 않은 것이니 문제가 될 것이 없고 자신은 가정에 충실하다고 했다.

무엇이 문제일까? 가정에 충실하고 .... 양쪽의 이야기를 들어보지 않았으니 나는 알 수가 없다. 두 사람 모두 무언가 잘못을 하고 있는 것이리라.

 

결혼을 하여 서로에게 충실하고 모든 것을 주고 받으며 환한 일상을 유지하면 그보다 더 행복한 일은 없을 것이다. 살다보면 현실에 부딪치는 이런저런 일들로 부부관계는 소흘해지고 깊은 대화가 사라지면 운명은 아무도 보장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기도 할 것이다. 처음 사랑을 나누고 결혼을 결심할 무렵의 초심이 평생 이어지는 부부가 세상에는 얼마나 있을까 싶다. 나또한 환한 결혼생활을 이어가고 있지는 않다. 그저 어떤 책임의식으로 엄마로서 아내로서 그냥 그런 듯이 살고 있는 것이다. 그에게 실망한지는 오래되었고 그 실망을 일으켜 세울 어떤 힘도 남아있지도 않다. 다만 그저 자신의 건강을 지키고 최소한의 책임과 의무를 다해주는 것외에 바라는 것이 없다.

 

 

사랑 이란 것이 어디 나이에 국한 된 것일까, 아름다운 사랑영화나 드라마에 정신을 잃고 빠져드는 것을 보면 할머니가 되어도 마음속엔 어떤 정신적인 사랑을 꿈을 꾸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내 아는 이가 정신적인 것이 앞선다는 것이 왜 중요한지 그것이 얼마나 지극한 것인지 모르는 남자들이 많은 듯 하다. 밖으로 보이는 것 , 육체적인 것... 그것에 사랑을 가져다 부치지 않기를...

 

 

엊그제 결혼을 하려고 하는 젊은 청춘들이 내게 다녀갔다. 서로 바라보는 눈빛에 사랑이 끊임이 없다. 시간이 흐르며 그 빛이 조금씩 흐려질 것이다. 결혼은 현실이다. 조용하고 애틋하기만 하지 않는 것, 인생이 다할 때가지 서로에 대한 배려를 잃지 않으며 스스로를 안과 밖으로 끊임없이 가꾸며 나아간다면, 책임과 의무를 잊지 않으며 꽃밭을 가꾸듯 풀을 뽑으며 정성으로 가정을 지키기를 노력한다면, 더 이상의 가정은 없을 것이다. 사랑은 안개처럼 그들을 감싸기도 할 것이다.

 

가정에 충실하고 아이들과 따뜻한 대화를 나누는 동반자임에도 최고지식층의 그녀는 정신적인 사랑을 나누지 못해 흔들린다. 나처럼 먹고 살기 어려운 사람은 머나먼 쏭바강의 이야기....

 

문을 열어놓았다. 밤이드니 서늘한 기운이 엄습한다. 모든 것은 나에게 사치, 어떠한 수행으로 오늘도 시간의 배를 타고 나는 흐른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