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만권을 읽으면..

데카르트가 사랑한 사팔뜨기 소녀/앙리 페나-퀴즈/이마주

다림영 2012. 8. 3.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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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을 다해 뛰고 있는 선수들을 봅시다. 땀에 흥건히 젖은 운동복이 피부에 달라붙어 있습니다. 무대에서 최고의 연기를 펼치는 배우를 봅시다. 감정에 완전히 몰입하여 마치 자기가 연기하는 실제 인물이 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기 행동에 생각하는 순간, 우리가 하고 있는 역할과 본연의 자신을 구분하게 됩니다.

 

자신의 역할로부터 거리를 유지하는 것, 자신이 하고 있는 역할과 결코 동일한 인물이 될 수 없음을 분명히 자각하고, 한 걸음 물러서는 것, 디드로는 그것을 배우의 모순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모순은 과연 어떤 것일까요? 그것은 배우가 자기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하면서도, 자신의 연기를 제어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자기는 감정을 100퍼센트 느끼지 않으면서도 남들은그렇게 느끼게 하는 능력말입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역할을 수행하고, 역사에 참여하는 방법에 대해 사유한 몽테뉴는 내면적인 거리감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상기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 세계를 거대한 연극에 비유하면서, 우리 각자가 맡은 배역이 있지만 그 역할로부터 항상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고 충고했습니다. 아무리 꼭 끼는 셔츠도 피부와의 사이에는 틈이 있게 마련인 것처럼 말이지요.

 

 

우리가 이 세상에서 하는 일은 광대노릇과 같은 것이다. 세상 모든 사람이 연기를 하는 셈이다. 우리는 각자 맡은 역할을 충실히 해야하지만, 그것은 배역일 뿐이다. 가면과 의상을 실제적이거나 핵심적인 것으로 생각하거나, 이질적인 것을 본질적인 것으로 여겨서는 안된다. 그런데도 우리는 피부를 셔츠와 구분하지 못한다. 마음에 분칠을 하지 못하면서 얼굴에 분을 바르는 것은 지겨운 일이다.

 

나는 역할이 주어질 때마다 새로운 인물과 새로운 존재로 변신하고 변질하는 사람들을 숱하게 보아왔다. 그들은 오장육부가 자기 지위가 만든 인물이 되어서, 집에서도 그 인물로 행세하려든다. 나는 그들이 직무를 돌보든, 부하를 돌보든, 당나귀를 돌보든, 자신이 맡은 임무를 다른 훌륭한 임무와 구분하라고 가르칠 수는 없다. 그들은 자기 임무에 너무 몰입해 있기에 본질을 잊고 있다. 그들은 권세와 지위에 어울리는 언변을 늘어놓는다. 그러나 시장과 몽테뉴는 늘 분명하게 분리된 서로 다른 두 존재였다.

 

 

 

헤어날 수 없는 습관의 포로가 되면, 특히 그 습관이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의 습관이라면,그것은 파스칼이 말했듯,“2의 본성이 되기 쉽습니다. 남을 부리는데 익숙한 사람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명령조의 말투가 몸에 배게 마련이지요. 그래서 업무외의 관계에 있는 사람에게도 종종 그런말투를 사용합니다.

 

 

그의 존재방식 자체가 몽테뉴가 말했던 유익한 거리감을 상실한 사람으로 변하게 하는 겁니다. 자아를 잊고 사는 사람의 모습은 남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자기 삶을 구려가는 사람의 모습과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 권력이 있는 사람은 남을 지배하는 권세를 누리고 싶어합니다.그처럼 남의 시선에 연연하는 사람은 본연의 자신과 역할에 대한 집착이 만들어 낸 인물 사이의 경계를 허물어 버립니다. 그와 단순한 존재의 기쁨도 무시해 버리는 거지요.

 

 

장자크루소는 인간이 고독을 통해서 본연의 자신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하면서 이 존재의 기쁨에 대해서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 다섯 번째 산책에서는 그는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이런상황에서 인간은 무엇을 향유할 것인가? 자아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자기 자신, 자기 존재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이런 상태가 유지되는 한, 인간은 신이 그러하듯이 오로지 자기 자신만으로 충분하다. 다른 모든 감정으로부터 벗어난 존재감은 그 자체만으로도 인간에게 만족을 준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이 땅에서 느끼는 평온을 끊임없이 동요시키고 방해하는 모든 감각적이고 세속적인 인상들을 멀리해 주어서 우리 존재를 소중하고 안락한 것으로 만들어 주는 유일하고도 평화로운 감정이다.

 

 

내적인 거리는 회피가 아닙니다. 역할과 권력의 명암이 상대적으로 교차하는 인간조건의 지평에 모든 것을 내놓고 위치를 다시 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몽테뉴 역시 인간에게 주어진 특권을 상대적인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던가요? 역설적으로 상대적 사고는 고통과 불운을 겪는 사람들에게도 적용될 겁니다.

 

인간의 행복은 타고난 좋은정신이 유지하는 평정과 만족, 절제된 영혼에 깃든 견고함과 안정감에 달렸다고 말한다. 그러나 인생의 가장 어려운 마지막 장이 어떻게 전개되는지 보기 전에는 결코 행복을 누렸다고 말할 수 없다.

 

 

로마의 황제였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역시 황제로서 섬김을 받을 때, 끊임없이 자신에게 주었던 경고를 떠올립니다. “황제가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황제가 네 안으로 돌어오지 않도록 조심하라

 

 

수많은 현자가 그랫듯 우리는 내적인 거리라는 이 어려운 자유를 인간성과 정의의 가장 근본적인 바탕으로 삼아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지혜로운 삶의 첫걸음이자 우리가 도달해야 할 목표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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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이를 알고 있다. 그의 행동거지가 언제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자신의 지위가 자신인줄 알고 주변관계에 있어서 예의를 다하지 않는 것이다. 가까울수록 지켜야 하는 것인데 말이다.

결국 그는 그가 가까이 지낸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따돌림을 당한 일이 생긴 것 같다. 그러나 그는 모른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친구이므로 얘기를 건네고 싶기도 하지만 귀담아 듣지 않는 태도가 일반적이어서 거리를 두고 지켜볼 뿐이다.

 

자리가 올라갈수록 스스로를 낮추며 자신을 끊임없이 가꾸어 나가야 사람이 빛날 것이다. 높은자리의 옷이 자신인 줄 착각하고 함부로 행동하는 이들이 사실 많다. 겉보다 스스로의 마음을 살피며 격이 있는 자신을 만들어 나가는 자세를 가지려는 태도가 없으면 성공한 사람이라 보기 어려울 것이다.

 

어쩌면 나도 어떤 포장으로 사람들을 대할지 모르겠다. 가끔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을 때가 있는 것 같다.

날마다 좋은 글 을 읽고 스며들게 하며 세상사 욕심을 거두고 순한 빛의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밖의 기운에 흔들리지 않으며 평화로운 내가 되는것에 생의 목표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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