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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동파 선禪을 말하다/스야후이/김영사

다림영 2012. 6. 15.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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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가치는 길고 짧은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동안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 소동파는 인생 초기부터 이 세상 모든 것은 아무리 찬란하더라도 영원할 수가 없다는 점을 , 하지만 어떤 것은 아주 어렵지만 노력할 가치가 있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


불법은 바로 이러한 얻음과 버림의 일이다. 말하자면 세속의 욕망을 버리고 내면의 밝고 청정함을 얻는 것이다. 버림이 있은 후에야 얻음이 있다. 그리고 크게 버려야 크게 얻는다. 사람 사는 세상의 일은 대체로 이러하다. 비록 갈 길이 멀다 해도 이러한 얻음과 버림의 신념은 우리들로 하여금 방향을 분별할수 있게 한다.

 

 

티끌세상의 도도한 번뇌의 파도는 너무나 뜨거워서 어떤 경우에는사람을 태워 버린다. 마음이 초조하고 견딜 수 없을 때, 산과 계곡으로 들어가 한 걸음 한 걸음 거닐어 보고 조용하고 편안한 장소를 찾아서 앉아 보라.


세속의 일을 벗어난 마음속에 대나무 길의 그윽함과 차가운 연못의 푸르디푸름, 그리고 새의 노래와 꽃의 향기가 있다.

 

소동파는 자신의 시에서 "번뇌는 본래 뿌리가 없지만, 은애가 그 씨앗이 된다."고 하였다.그는 이 도리를 깊이 알고 있었지만, 여전히 "너와 더불어 세세생생 형제로 지내리니, 다음 생애에 끝내지 못한 인연을 다시 맺으리라"고 말하였다.


세상의 인연은 끝내기 어렵다. 그래서 소동파는 엄격한 의미의 불제자가 될 수 없었다. 하지만 이처럼 견고하고 참되고 성실하고 이해타산이 없는 깊은 정은 자비롭고 광명정대한 인간의 기본이다. 마음속에 이러한 깊은 정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소동파는 풍부하면서도 따스한 인생을 누릴 수 있었다.

 

 

"사대는 실체가 있지 않고 오온은 모두 공이다."
이것은 불교의 기본 이념 중 하나로서 사물에 대한 집착을 없애기 위한 말이다.
그렇다면 이 말은 결국 "선이란 무엇인가?' 라는 문제로 돌아온다.
<육조단경><좌선품坐禪品>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좌선坐禪이란 무엇인가? 이 법문 안에서는 막힘도 없고 걸림도 없다. 밖으로 온갖 선악의 경계에 대해 생각이 일어나지 않는 것을 좌라하고, 안으로 자성自性을 보아 움직이지 않는 것을 선이라 한다.

 

...
선정禪定이란 무엇인가? 밖으로 모습<相>을 여의는 것이 선이고, 안으로 흐트러지지 않는 것이 정定이다. 밖으로 모습에 집착하면 안의 마음도 흩러지고, 밖으로 모습을 여의면 마음도 흐트러지지 않는다."

 

마음의 생각이 외물에 대한 애착, 원망, 욕망에서 벗어나면, 내면의 마음도 고요해서 맑게 사무친 호수와 같아진다. 그렇게 되면 새가 지나가도 파문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며 , 밝은 거울이 세상일을 밝게 비추는 것과 같아서 성냄도 없고 기쁨도 없이 평안해진다.

 


..
"어찌하여 온 적이 있는 사람에게도 차나 마시라 하고, 온 적이 없는 사람에게도 차나 마시라고 하십니까?"
그러자 조주 스님이 원주를 불렀다. 원주가 '네' 하고 대답하자. 조주가 말했다.
"차나 마시게!"
어떤 사람에게나 차나 마시라고 한다. 이 말에는 나와 남의 분별, 전前과 후後의 분별, 옴과 오지 않음의 분별을 중요하게 보지 말라는 뜻이 있다. 이것이 바로 모습을 여의는 이상離相으로서 어던 사물에도 집착하지 않는 것이다.

 

 


초산의 윤 장로 벽에다 쓰다/소동파

 

법사는 초산에 머물면서
실제로는 머문 적이 없으니
내가 와서 맨번 법을 물어도
법사는 긑내 말이 없다네
법사께서 말이 없는 것이 아니라
답해야 할 이유를 모른 것이니
그대는 머리와 발을 보라
쓰고 밟는 것이 본래 스스로 편안한 것을.
비유컨대 긴 수염을 기른 사람이
수염이 긴 것을 불편해 하지 않았는데
어떤 사람이 질문하기를
"밤에 잘 때는 수염을 어디에 놓지요?"해서
그날 밤 수염을 안 으로 놓았다
밖으로 놓았다 했지만
밤새도록 놓을 자리가 마땅치 않았으며,
이리저리 뒤척이다 아침가지 잠을 못 자서
아예 수염을 모두 뽑고 실었다고 한다네.
이 말은 비록 비천하긴 하지만
이때문에 스스로 깊은 흥취가 있으니
이것을 가지고 법사께 물어보면
법사님도 한 번쯤은 웃으실 것이다.


..
무심일 때는 매우 즐거웠으나 유심일 때는 번뇌가 끝이없었다. 선 수행자는 바로 유심을 버리고 무심에 도달해서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내는 사람이다.
오는 것도 없고 가는 것도 없으니,온 누리 어느 곳이나 수행자의 안온한 집이다.

 

 

 

세상을 살면서 우리는 인연을 벗어날 수 없다. 선 수행자와 보통 사람의 차이는 인연을 대하는 태도에 있다. 인연을 중시해서 인연에 집착하는 것은 보통사람이고, 인연을 담백하게 보고서 인연이 오면 편안히 받아들이고 가면 웃으면서 배웅하는 것이 선 수행자이다. 선 수행자의 태도는 이른바 인연에 따르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다음과 같은 이치를 깊이 알고 있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도 있고, 이것이 없으므로 저것도 없다. 이것이 생기기 때문에 저것도 생기고, 이것이 소멸하기 때문에 저것도 소멸한다."
연緣은 와도 말이 없고 가도 들리지 않는다. 마치 거울 속의 꽃과 같고 물속의 달과 같아서 그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는 있지만 영원히 소유할 수는 없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깃발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바람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다. 바로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다."는 육조혜능의 말이다. 하지만 선 수행자는 궁극적으로'마음',즉 자기의 의식과의식을 낳는 능력도 모두 타파하고 소멸시켜야 한다. 왜냐하면 의식을 낳는 능력이 존재하면 끊임없이 갖가지 심념과 분별이 생겨서 여전히 마음속에 번죄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오로지 의식을 완전히 소멸해야만 진정으로 마음이 물처럼 고요해져서 어떤 사물을 대하든 편안하고 태연할 수 있다. 육조 혜능은 제자들을 이렇게 교육했다.

 

생각없는 생각이 바른 것이고 생각있는 생각은 삿됨을 이룬다.
있고 없음을 모두 헤아리지 않으면 영원히 흰 소 수레를 부릴 수 있다.


'흰 소 수레'는 부처님이 타는 수레이다. '있고 없음을 모두 헤아리지 않는다.' 즉 신념이 있든 없든 전혀 상관하지 않는 것이 바로 흥취가 도도하여 기틀을 잊은 경지이니, 자아와 천지가 하나로 융합한 안락하고 기쁜 경지이다.

 


당나라의 유원有源 율사律師가 대주 혜해大珠慧海에게 물었다.


"스님이 참선할 때 비밀스럽게 공功을 들이는 법문이 있습니까?"
"있다. 배고프면 밥을 먹고 졸리면 잠을 자는 것이다."
유원 율사가 이해하지 못하고 다시 물었다.
"보통사람도 다 그렇게 하지 않습니까?"
"보통사람은 밥을 먹을 대 여러모로 가리는 게 많고, 잠을 잘 때도 이런저런 온갖 생각을 한다."

 

 

 

사물에 집착하다 보면 소유하고 싶어져서 아무리 평범한 것이라도 번뇌를 초래할 수 있다. 하지만 사물에 뜻을 잠시 의탁하여 그냥 감상 할 뿐이라면 아무리 진귀한 물건이라도 화를 초래하지는 않는다.
"비유하자면 구름이 눈앞을 지나고 온갖 새 소리가 귀에 들리는 것과 같으니, 기꺼이 그것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만 떠나고 나면 다시 생각하지 않는다."

 

 

 

하늘의 구름과 새의 울음소리는 올 때는 지극히 아름답지만 가고나면 찾을 곳이 없다. 이 때문에 오면 기꺼이 받아들이고, 가고 나면 더 이상 생각하지 않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사물을 사물로서 대할 뿐 사물의 노예가 되지 않는 것이며 몸 밖의 물건에 얽매이지 않는 것이다.

 


<유마힐경>에서 유마힐 거사는 "음식을 먹지만 선의 기쁨을 맛으로 삼는다." 고 하였다. 선의 기쁨은 깨달음 이후의 심경이다. 의식주는 가장 일상적인 생활이지만, 선 수행자의 안목은 이런 평범한 일에서도 기쁨을 발견할 뿐만 아니라 평화롭고 안정된 선의 경지를 체험한다.

 

 

"거대한 변화 속을 방랑하면서 기뻐하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이것은 소동파가 가장 좋아하는 시인 도연명의 시구이다. 소동파의 심정이 바로 이러했다. 삶과 죽음이 모두 세간의 공상空相에 지나지 않지만, 선의 마음은 천지간에 영원히 존재할 수 있다. 따라서 인연에 따라 오고 가는 것이니 걱정하거나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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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시간 책을 잡고 있었다.

수십번 읽어도 깨닫기 어려움을 안다.

피로감이 몰려온다.

어느새 저녁이 오고 있다.

코스모스 작은 꽃을 보러 나가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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