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과 한 줄의 문장 속에 얼마나 깊은 의미가 깃들여 있는지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그 진수를 이해하려 하지 않고 단순히 해석만 하려 해서는 모처럼 주어진 기회를 의미 없이 버리는 것과 같다.
역사에 남을 명저가 있다면 문자로 표현되어 있지 않은, 보다 깊이 있는 메시지가 반드시 감추어져 있을 것이다. 행간에 흐르는 그 메시지를 이해할 수 있을 때, 그것은 평생 잊을 수 없는 독서 경험이 된다.
그런 메시지를 이해하게 되었을 때 느끼는 감동이야말로 명저를 읽는 진정한 즐거움이다.
이런 격언이 있다.
"책 한 권을 백 번을 읽으면 그 뜻을 저절로 이해할 수 있다."
이 격언이야말로, 바로 그런 부분을 이야기해주는 것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무리해서 이해한 척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문자만을 중요시하여 표면적으로 이해했다는 생각에 만족해서는 명문장을 충분히 이해했다고 말하기 어렵다.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은 그 상태로 내버려두면 된다.
그리고 필사적으로 생각해 본다.
단 한 줄의 의미를 일주일이든 한 달이든 집중적으로 생각하는 태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해하는 것만이 목적은 아니다. 이해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진지하게 생각하는 태도도 중요한 목적이다.
진지하게 생각하다보면 어느 순간에 의식이 새하얗게 변하면서 무심의 상태가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런 식으로 그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순수한 마음으로 문장을 읽을 수 있게 되었을 때 , 저자의 발상의 근원이라고 말할 수 있는 책 그 자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물론 절대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그렇게 간단한 일은 아니니까 당연하다. 그 순간을 맛볼 수 있는 사람은 독서가 무엇인지 진정한 경험을 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내가 보기에, 읽는 것과 듣는 것은 같은 회로다. 더 나아가서, 보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사과를 그린 그림이 한 장 잇다고 하자. 그 그림을 통해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읽고, 무엇을 들을 수 있을까?
그 그림에는 사과라는 실체를 초월한 존재, 사과를 사과로 느끼게 하는 존재가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끌린다. 예술가도 사과의 내부에 있는 어떤 존재, 진짜 사과를 보지 않고는 결코 발견할 수 없는 어떤 존재를 그리고 싶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자신의 모든 능력을 걸고 작품을 만든 것이다.
사람의 정신은 그런 결과물에 자기도 모르게 이끌리도록 만들어져 있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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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조건 많이 빠르게 읽는 것이 대수가 아님을 알고 있었지만 다시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도서관에서는 2주동안 5권까지 빌릴 수 있다. 얼마전까지 3권이었는데 바뀌어서 너무 신났는데 살펴보니 난 그것을 다 소화하기가 쉽지 않았고 눈에 쥐가 나도록 애를 쓰곤 했다. 그러고 보니 겉모습에 치중한 것이었다. 진정한 나의 성숙을 위해 두번 정도는 읽어야 하겠다. 서너번 읽은 책은 있지만 언감생신 백번을 어찌 생각할까 싶다.
쉰을 넘어도 이렇듯 깨닫고 실천해야 할 것들이 수없이 생겨난다. 인생은 죽음을 눈앞에 두고서도 깨닫지 못한다고 한다. 그 어떤 경지를 위해 심오한 책읽기에 도전해야 하리라.
어느새 또 한 날이 저물고 날은 더없이 좋은 5월의 자연이다. 5월처럼 참 좋은 내가 되고 싶은데 사람이 왜 자꾸만 조그만해져가는 느낌이 하염없이 드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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