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만권을 읽으면..

나이듦에 대하여/박혜란/웅진닷컴

다림영 2012. 4. 19.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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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들의 가장 가까운 친구는 TV이다. 만약 어느날 하루아침에 TV가 사라진다면 가장 타격을 받을 사람들은 아이들이 아니라 노인들일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일반적으로 TV를 가장 많이 시청하는 집단으로 주부들을 들지만 내 생각은 좀 다르다. 주부들은 살림하는 틈틈이 주로 드라마를 중심으로 보지만 노인들은 하루 종일 습관적으로 TV를 틀어 놓는다. 만약 TV가 없었다면 노인들의 하루는 지금보다 훨씬 길어졌을 테고 외로움도 그만큼 깊어졌을 것이다.

TV가 없었다면 노인들은 하루종일 사람 소리를 듣지 못할 수도 있다. 어떤 사람들은 TV때문에 가족관계가 소원해진다면서 'TV를 끄자'거나 혹은 'TV를 깨자'고 부르짖는다. 하지만 그렇게 한들 이미 자기만의 방을 갖고 그 안에자기만의 성을 쌓고 사는 젊은이들을 거실로 불러내기에는 역부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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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TV는 내 친구'라는 노래는 이제 아이들이 아니라 노인들의 주제가가 되어버렸다. TV가 없었다면 노인들은 적막강산 같은 집 안에서 외로움을 견디다 못해 자식들에게 말을 더 많이 걸었을 테고 자연히 자식들로부터 다정한 응대가 아니라 외면이나 짜증을 되받아야 했을 것이다.
외로울 때 위로받을 친구를 둔 노인은 행복하다. 노인들에게 운보선생처럼 '내 살을 떼어주고 싶은'친구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 까. 그러나 지금의 노년 세대는 친구가 없는 세대이다. 일생을 변화가 너무 심한 세상에서 보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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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몸을 움직일 수 있었을 때는 동네 노인정에 나가보기도 했지만 이내 그만 두었다. 얼굴만 마주쳤다 하면 자식자랑에 열을 올리거나 아니허구헌날 화투놀이를 하는 노인들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노인대학은 괜찮을 듯 싶기도 했지만 자식들한테 손 벌리는 일이 싫어서 입도 뻥끗 못해 봤다.

노인을 모시고 사는 사람들은 노인에게 친구가 없는 원인을 대부분 노인의 성격이 괴팍하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 같다.하지만 미운 마음을 접고 차분히 생각하면 노인에 친구를 허용하지 않는 우리 시대에 그 원인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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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적 교육을 받은 덕분에 학교 동창이 많으니 한창 감수성이 예민하던 시절에 '부모 형제 보다 좋은'친구를 사귈 기회가 활짝 열려 있었던 셈이다. 하지만 기회가 많다고 해서 친구가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친구 사귀는 능력도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우정은 길과 같아서 자주 다니지 않으면 잡초가 우거진다는말이 있다. 친구를 만드는 데는 각별한 품이든다.
 
내 또래 여성들의 친구 만들기는 과연 성공일까. 사실 우리 어렸을 때만 해도 우정이란 남자들에게나 해당되는이야기지 여자들 사이에 진정한 우정은 없다라는 말이 그럴싸하게 통했다. 여자의 우정은 남자가 생기기 전까지만유효하다는 거였다. 이 말의 진위를 따지기에 앞서 우리 스스로도 무조건 동의했다. 바보같으니라고.


아무튼 나이 들면서 느는 건 후회와 반성뿐인데 나에게 친구 만들기는 가장 반성하는 품목 중의 하나이다.어렸을 때부터 난 스스로 내가 다른 '보통여자'들하고 다르다는 터무니없는 자만심 같은 것이 있었다.따라서 당연히 우정에 있어서도 통념을 뛰어넘을 자신이 있었다. 다른 여자들처럼 친구를 얕게 사귀지 않고사귀었다 하면 마음속 깊이 사귈 것이며 적어도 남자 때문에 친구를 잊고 사는 우를 범하지는 않으리라고 결심했다.

그러나 나는 통념을 벗어나지 못했다. 천성적으로 친구 사귀를 좋아하는 성격은 변함이 없었지만 우정을 길게 가꾸어 나가는 데는 영 소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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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 옆에 남아 있는 몇 안되는 친구들에게도 내 살을 떼어주기는 커녕 내 기분 내키는 대로 투정을 부리고 산다.기분이 좋을 때는 몰라라 하다가 기분이 궂은 날엔 안부도 묻지 않는다며 원망이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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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삶이란 진정한 친구가 몇 있는 사람들이겠다. 그야말로 친구하나 없는 나는 실패한 인생이다. 원인은 내게 있다. 내가 마음을 열지 않기 때문이 그 첫번째이고, 두번째는 경제력과 대단히 깊은 관계가 있는 것이다.  어떠한 수준의 경제력이 없으면 친구를 만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동안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그런데로 삶을 영위하여 제법 친구가 있는듯 보였다.

언젠가부터 주변 친구들과 거리가 있음을 느꼈다.살펴보고 돌아보니 난 어디에도 어울리기 쉽지 않은  삶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유를 만들어 어떤 모임이든 사절하게 되었는데  친구를 만나 웃을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많은 식구 입에 풀칠을 해야 하고 아이들 셋모두 학교를 보내려면 등이 휘어도 모자랄 판인 것이다.

내게도 좋았던 때가 있었다. 그때는 자주 찾아주던 친구들이 많았다. 생각해 보면 모든 사람들이마찬가지 일 것 같다. 나 살기도 바쁘고 힘든데 일부러 형편 기운 친구 찾아가 친구가 되어준다는 일은 가히 가벼운 일은 아닐것이다.

형편이 조금이라도 피면 나는 언제그랬느냐는 듯 친구에게 전화를 자주 하고 웃으며 다가가리라. 누군가에게 밥 한 끼를 얻어먹으면최소한 차 한잔 넉넉하게 사는 여유가 있어야 하므로 나는 한동안 친구라는 존재를 잊고 살 것이다. 그 누구에게도 좋은친구가 되지 못할 것이므로.

 

요즘 나의 친구는 텔레비젼과 책이다. 텔레비젼을 보며 웃고 울으며 위안과 위로를 받고 생각을 하고 나를 돌아본다. 또한 책을 들여다보며 나의 성숙을 도모하며 마음근력을 만들고 있다. 점차 나이가 들 수록 어떤 고독을 견뎌야 할 것이므로.
이렇게 지내다 보니 이런생활이 좋기도 하다. 혼자 지내는 것이 체질인듯 보이기도 한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가벼워만 보이고 여기 저기 어울리며 다니는 그들이 이상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어느날 내게도 각별한 친구가 생긴다면 나는 무엇이든 다 들어주고자 노력할터이지만 지금은 앞만보고 내게만 집중하며 살 것이다.그어느 누구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친구 타령은 사실 내겐 사치인 것이다. 그저 이러한 생활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며  나의 특별한친구들과 지낼 수 있는 그 하나만으로도 감사한 마음을 잊지 않아야 할 것이다. 깊고 넉넉한내가 되기 위해 오늘도 나의 친구 텔레비젼과 책 속에서 저녁을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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