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만권을 읽으면..

회복탄력성/김주환/위즈덤하우스

다림영 2011. 9. 13.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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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중에서

 

일상생활에서 원만한 대인관계를 원한다면 우선 마음의 문을 열고 상대방의 말을 잘 들어야 한다. 우선 상대방의 말을 들을 때에는 말하는 사람의 표정을 그대로 따라하는 습관을 들이도록 한다.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인간의 얼굴 근육은 감정에 관여하는 뇌와 직접 연결되어 있다.

 

얼굴은 사람의 감정 상태를 나타내는 거울이다. 말하는 사람의 표정을 따라하면서 들으면 말하는 사람의 감정 상태를 훨씬 더 잘 느길 수 있게 된다. 이를 공감적 경청이라 한다. 물론 공감적 경청의 훈련은 공감적 능력이 태어날 때부터 부족한 남자에게 더욱더 필요하다.

 

성공적인 소통의 핵심은 말을 잘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잘 듣는 데 있다. 공감적 경청은 보다 높은 수준의 공감능력과 소통능력을 얻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다. 표정 따라하기가 어렵다면 긍정적이고 환한 표정이라도 짓도록 해야 한다. 억지로라도 웃어야 한다. 밝은 표정을 짓는 것만으로도 공감능력이 상당 부분 향상될 수 있기 때문이다.

 

 

 

친구를 얻는 가장 쉬운 방법은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다. 관심을 끌려고 애쓰는 2년보다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보이는 2개월동안 더 많은 친구를 얻을 수 있다. 배려하고 관심을 표명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나이들수록 친구는 더욱 더 중요하다. 친척이나 아이들과 가까이 지내는 노인들보다 친구와 가까이 지내는 노인들이 더 건강하고 오래 산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오래 살기 위해서는 보험에 드는 것보다 친구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친구관계에 관한 뇌 연구에 따르면 친한 친구를 봤을 때 활성화되는 뇌 부위는 3개월쯤된다. 그런데 이 부위들은 알코올 중독자가 술병을 눈으로 봤을 때-얼마나 반갑겠는가!-활성화되는 부위와 같다. 그만큼 친한 친구는 우리에게 특별한 존재다. 친한 친구만큼 우리의 뇌를 긍정적인 상태로 즐겁게 흥분시키는 것도 없다.

 

친한 친구와 함께 있으면 사람들은 평균 30배 이상 더 많이 웃는다고 한다.친한 친구들을 만나면 우리는 다시 건강한 어린 아이로 돌아간다.

 

자기조절 능력과 대인관계 능력이 높은 사람은 친밀한 관계를 잘 만들고 유지시킨다. 친구는 인생의 어려움이 있을 때 감정적 지지를 얻을 수 있는 좋은 버팀목이다. 어려서부터 좋은 친구를 많이 만들어 놓는 것은 우리를 더욱 행복하게, 강하게 해준다. 좋은 친구는 우리의 소통능력, 공감능력, 자아확장능력을 높여줄 것이며, 이렇게 높아진 대인관계능력을 통해 우리는 좋은 친구를 많이 얻게 될 것이다. 이러한 선순환은 회복탄력성을 더욱 높여줄 것이다.

 

 

 

도이지에 따르면 "나는 이미 나이가 많이 들어서 머리가 굳어졌는데 ..."라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우리의 머리는 평생 굳어지지 않는다. 늙어 죽을 때까지 우리의 뇌는 계속 변화한다. 뇌소포는 새로 생겨나지 않는다는 것도 잘못된 속설이다. 뇌세포는 80세가 넘어서도 계속 만들어진다. 뇌에 관한 한 "변화시키기엔 나이가 너무 들었다"는 것은 모두 잘못된 생각이다.

 

예컨데 ,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는 아흔살에 구겐하임 미술관을 설계했다. 벤자민 프랭클린은 일흔여덟 살에 이중초점 안경을 발명했다. 창의력이 절정을 이루는 때는 서른다섯에서 쉰다섯까지의 연령대이고, 60대와 70대의 사람들은 일하는 속도는 느려도 20대 때만큼 생산성이 높다는 것을 발견했다. 첼리스트인 파블로 카잘스의 일화는 유명하다. 그가 아흔한 살이었을 때, 그에게 한 학생이 다가와서 물었다.

"선생님은 왜 연습을 계속 하시나요?" 카잘스는 대답했다. "나의 연주 실력이 아직도 계속 늘고 있기 때문이라네."

 

 

산에 오르는데, 정상에 오르는 것만이 목적인 사람은  정상에 오르기까지 한걸음 한걸음이 모두 고통으로 다가온다. 모든 발걸음이-사실 이러한 발걸음 하나가, 한순간 한순간, 하루하루 모인 것이 바로 우리의 인생인데도-참아야 할 괴로움으로 여겨진다. 즉 인생 자체가 하나의 커다란 괴로움이 되고 만다.

 

그러나 나의 삶은 어디 먼 미래에 있는 것이 아니다. 하루하루, 한순간 한순간의 적분이 곧 나의 삶이다. 정상에 오르는 것을 '목표'로 두기는 하되, 내딛는 발걸음 하나하나를 즐기면, 즉 과정을 즐기면 힘들지 않고 정상을 향해 갈 수 있다. 이것이 칙센트미하이가 말하는 몰입 혹은 최적의 경험이다. 그렇기 때문에 행복은 '성공의 결과'라기 보다는 '성공에 이르는 길'이라 할 수 있다. 성공한 사람이 행복하다기보다는 행복한 사람이 성공하는 것이다. 회복 탄력성이 높은 사람이 행복해진다기보다 행복해져야 회복탄력성이 높아진다는 뜻이다.

 

 

 

행복의 기본 수준이 높은 사람을 우리는 낙관적인 사람이라 부른다. 낙관성이 높은 사람들은 주어진 상황은 언젠가 좋아지리라는 믿음을 지닌 사람들이다. 신체적으로도 더 건강하고 우울증에더 덜 걸린다. 성취도도 더 높고 업무 생산성도 높다. 그러나 낙관성은 객관적인 위험성을 과도하게 평가절하하는 비현실적인 낙천주의와는 다르다.

 

낙관성을 지닌 사람은 무엇인가를 해낼 수 있다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있으며, 자신의 한계밖으로, 일상 너머로 뻗어나가려는 적극적인 자세를 지닌다. 낙관성은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게 하며, 익숙한 현실과 반복적인 일상에 안주하기를 거부하고 새로운 영역으로 스스로를 확대시켜 나가려는 자세를 유지시켜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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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을 잘 보냈다. 이 즈음이면 언제나 무거운 마음이었다. 모든 것들이 마음에 들지않았고 싫고 답답했고 내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큰 산처럼 날 에워쌌다. 그러나 이제는 그러한 답답함을 떨칠 수 있게 되었다. 어쩔 수 없는 것에 대해 전전긍긍하지 않고 마음을 많이 쏟지 않으며 받아들이고 묵묵히  내 의무를 지키고 다른 것들에 관해선 풍경처럼 바라볼 뿐이다. 나이가 들어가니 이제사 세상을 관망하며 나를 채우는 것에 급급해하지 않게되었다.   행복은 모든 것을 가졌다고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아는 까닭이다. 강물이  흐르듯 나 또한 흘러야  환한 얼굴을 지닐 수 있음을 숙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진것이 많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는 자세를 지니기에 최선을 다하는 날들이다.  이제사 인생사를 깨닫고 있다. 내가 이러한데 어찌 아이들이 인생의 진리를  알 수 있을까. 스스로 얻는 경험에서  지혜를 배우며 나아갈 길을 찾게 될 것이다. 그러나 뒤늦은 깨달음은 이미 늦게 될 수도 있기에 나는 아이들에게 나의 경험속에 얻은 이야기들을 종종 전한다. 아이들은 이해를 못할수도 있다. 그러나 사람이 잘 살아갈 수 있는 길은 젊으나 나이가 드나 모두가 같다.

 

속이 단단히 탈이 난 큰 녀석에 짧은 편지를 놓아두고 왔다. 먹는 것에 욕심이 많고 건강을 생각지 않고 먹어대는 녀석이다. 어떤 욕심이든 그것이 지나치면 화를 불러옴을 이제서야 깨달았을 것이다.  백날 옆에서 걱정하며 당부를 해도 자신이 경험한 것만큼 크게 깨우침을 얻게 되지 않는다.

더 늦기전에 건강한 것이 얼마나 행복한것인지, 맛있는 것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녀석은 알았을 것이다. 아주 작은 일에서도 사람은 행복과 불행을 경험할 수 있다. 사소한 일들을 귀히 여겨야할 것이다.

오늘도 이렇게 일터에 앉아 손님을 기다리고 거리의 풍경을 관망하고 있는 나는 참으로 행복한 사람임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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